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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 Jan 21. 2018

사물의 시선

사물을 통해 사람을 봅니다.


큰 창과 테이블, 나의 생활이 차곡차곡 쌓인 공간,

사물의 시선 첫 번째 인터뷰이, ‘가정책방’ 전종원



차분한 성격과, 담담한 어조. 친구의 첫 인상은 그랬다.


어느날, 우연찮게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매거진을 알게 되었고, 반갑게도 그 매거진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는데 발행인이 이 친구였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나는 왜인지 모르게 신이 나서 책 이외에도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을 집약적으로 막 쏟아냈던 것 같고, 이 친구는 그 때에도, “음. 그렇군요. 하하”로 피드백을 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렇다. 내가 하고 싶어하는 어떤 것들을 실행할 때 수반되는 불안한 상황들과 그로부터 파생되는 우울한 기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즈음부터, 그것들이 지나가기만 잘 바라다가 시간이 흘러 햇빛에 잘 말려진 건어물처럼 씹고 뜯기 좋아졌을 때 그것들을 들고 친구에게로 간다. 지금도 여전히, “음, 그랬구나. 하하”로 답해주고 있고, 결국 들고 간 건어물을 씹고 뜯는건 오로지 나 뿐이지만 그것을 조용히 지켜보는 친구에게서 이상한 마음의 평화를 느끼곤 한다. 말이 길고 장황한 행동으로 괜히 위하는 척 오버하는 언저리의 사람들과는 달리.


문화예술분야의 일을 하면서 재밌는 사례를 가진 젊은 기획자를 소개해야 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친구가 해 온 프로젝트를 마치 나의 표창인 듯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어른들은 가끔 어리니깐 그게 너희의 상황에서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일 거란 눈빛을 주기도(극히 주관), 자신만의 힘으로만 그렇게 성장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측의 의견을 내놓을 때도 있었는데 전자의 것은 그렇다 치지만 후자의 의견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 오롯이 자신만의 힘으로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 친구의 노력이 폄하되는 것 같아서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이 왜 다 그렇지 않은가. 어떤 사람들의 성공사례가 이슈가 되면 스크롤 내리기도 지겨운 저기 밑에 즈음엔 언제나 수저를 운운하며 깡깡대는 각설이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서두가 길었고, 나는 ‘사물의 시선’을 처음 기획했을 때부터 이 친구를 꼭 첫 번째 인터뷰이로 해야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 있었다. 젊은 친구의 치기어림이라기엔 지금껏 다져온 발자국 하나하나에, 소신이 매우 분명하고, 멋지니깐.


내가 이 친구로부터 느낀 이너피스와 소신을, 읽고 계신 분들께서도 담담하게 받아주시기를 희망하며.






안녕하세요.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31세의 프리랜서 디자이너 전종원입니다.

주중엔 서울에서, 주말엔 강화에서 디자인 스튜디오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조깅을 했었는데 미세먼지가 심해서 최근에 스트레칭과 타바타 운동으로 대체했습니다. 유튜브에서 ‘다노 스트레칭’을 보고 따라 합니다.

대개, 집 근처 카페에서 일합니다. 하루에 4시간 정도. 요즘엔 그렇습니다. 여유시간이 많죠. 이렇다보니 화도 잘 안내게 되었습니다. 느긋해졌습니다.



애정하고 있는 물건 혹은 장소를 소개해주세요. 이것에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취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큰 창과 큰 테이블을 마련했습니다. 오랜 로망이 실현된 곳이죠. 이곳에서 식물과 책,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저에게 무엇보다 소중한 곳이죠.



어떤 것을 상상하며 구현한건가요? 이를테면 가족, 나의 내면의 평화라던지. 마음이 참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인가봐요.


특별히 계획한 것은 없습니다. 작업실을 염두에 둔 공간이라 큰 테이블을 거실에 놓았습니다. 요가 매트나 책, 식물, 과자 상자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데, 모두 생활이 쌓인 것이죠.

2L 찻주전자 , 나무 접시 , 동양화와 포스터 등 감사하게도 선물 받은 물건이 많습니다. 쓰다 보니 친구들의 호의와 저의 생활이 ‘가정책방’을 만든 것 같네요.



혼자 오롯이 있기에도,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차를 마시기에도 좋을 만한 따뜻함이 있어요.

자신의 분위기가 살며시 녹아든 이 공간이 많이 부럽네요. 공간을 돋보이게 만들만한 소재를 몇 가지 꼽는다면?


모쪼록 여기까지 저를 찾아준 분들이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언제든 오세요. 저는 거의 항상 집, 근처 카페에 있으니깐요 ㅎㅎ


집에 아주 큰 식물이 있습니다. 야외용 식물인데 행사장에서 쓰다 버려진 것을 가져왔습니다. 아침마다 이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와 내음이 멋져요. 숲에 온 듯한 느낌입니다.



‘가정책방’이라는 이름은 스스로 붙인 이름인지? 그렇다면 이 책방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은?


스튜디오 이름을 고민하다, 작업공간인 ‘집’과 로망 중 하나인 ‘책방’을 결합해 가정책방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항상 선물하는 책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입니다. 가볍고 읽기 쉬운 책입니다. 만약 제가 이 책을 선물한다면 ‘당신 지금 위로가 필요해 보여요’라는 뜻입니다.



(거창하지만)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 구현계획을 이야기 해주세요.

키우고 있던 여인초가 죽었습니다. 저와 함께 이 집에 온 아이이기에 애착이 컸어요. 살려내고 싶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처음엔 잎이 노래졌습니다. 드문 일은 아니죠. 별스럽게 생각지 않고 평소처럼 1.5ℓ 생수병에 물을 받아 화분에 뿌렸습니다.


1주일 후, 흙에 손가락을 넣어보니 아직 젖어 있더군요, 2주일 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도 뿌리가 썩은 거겠죠. 생각해보니 2주 전 물을 줄 때 손가락을 찔러보지 않았습니다. 추워서 환기도 잘 안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분무기로 잎에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걸리는 게 많더군요.


생활에 여유가 없었습니다. 일은 많아 여기저기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여인초를 통해 제 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일을 줄였습니다. 나를 위하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물을 주기 전 화분에 손가락을 찔러 보고 상대방에게 귀 기울이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가능한 여유를 계속해서 만들고 지속해 나가기 위해 우선 저를 챙기고 있습니다. 요즘엔 그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사물의 시선 첫 번째 인터뷰이 : 전종원

디자인 스튜디오 ‘가정책방'과 게스트하우스 ‘화도공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인, 스튜디오 인스타계정 : @owner_gajung

화도공간 인스타계정 : @spacehw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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