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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결심

by 매실 Mar 29. 2025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결심

-안나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결심



2021년 12월, 만 스물여섯에 태어나 처음 받았던 산부인과 진료에서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4년간 만남을 이어오던 애인과 본격적으로 결혼 이야기가 오갔던, 또 그보다 더 오래도록 계획했던 캐나다 유학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겨울이었다.


'어차피 출국을 위한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건강 검진을 해야 하는데, 이참에 자궁 경부암 국가 검진도 받아 볼까?' 만 20세 이후로 홀수 연마다 우체통에 꽂히던 ‘자궁 경부암 국가 검진 대상자’ 안내문을 애써 무시해 왔지만,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생각에 생애 첫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결심을 했다.


내가 처음 내 발로 산부인과를 방문했던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중학교 2학년 4교시 체육 시간에 처음 월경을 시작하고, 매달 월경 주기 28일을 딱 맞춰 꼬박 7일을 피를 쏟았다. 그중에서도 정말 양이 많던 날엔 기저귀와 다를 바 없는 오버나이트를 착용하고 잠에 들었지만, 어김없이 다음 날 아침이면 굳어 있는 핏자국으로 가득한 침대 시트를 벗기는 것으로 아침을 시작해야 했다.


그날도 나는 아랫배를 부여잡고 교과서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보건실에 가서 받아온 약도 영 소용이 없어 결국 학교를 조퇴하고 병원을 가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엄마가 문자로 찍어준 동네에서 가장 큰 산부인과로 앞에 도착해서 자동문 버튼을 누르니 기다란 노란색 의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대기실이 있었다. 대부분 배가 볼록한 임신부들과 그들의 보호자로 보였다. 교복을 입은 내게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꽂힌다. 어쩐지 오지 말아야 할 곳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접수대로 가니, 직원이 체크 박스가 가득한 종이를 보여주며 말했다.


"저희 병원 처음이면 여기 주소랑 전화번호 포함한 간단한 개인 정보 적어 주시고요, 성 경험 있으시면 질 초음파, 없으시면 복부 초음파로 진료 보실 거라 솔직하게 적어 주셔야 해요."


어쩐지 더 조용한 대기실에서 서걱서걱 내 볼펜 소리만 더 크게 나는 듯했다. 괜히 자꾸 주눅이 든다. '성 경험 없음' 네모 칸 안에 큰 체크 표시를 한다. 






2인분의 몸


그날을 이후로 꼬박 10년 만에 산부인과를 갔다. 그리고 받은 진단명이 자궁내막증이다. 처음 자궁내막증 진단을 받았던 동네 산부인과에서는 정밀한 진단을 받으려면 더 큰 병원을 방문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어쩌면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으니, 수술이 가능한 곳으로. 내가 수술이라니.


집에 돌아와서 멍한 기분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자궁내막증' 정보를 위해 블로그에서 수술 후기를 보다가 여성 질병 당사자들의 정보 공유를 위한 네이버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바로 가입 신청을 눌렀다. '자궁지키미 난소 살리미' 카페 대문이 인상적이었다. 가입하고 나니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의 질병들로 고생하는 여성들 천지였다. 그중에는 믿기 힘든 사례들도 있었다. 예를 들면 폐경기 여성에겐 너무나도 쉽게 '자궁을 떼라'고 한다거나, 가임기 여성은 수술하려고 배도 열어 놓고 난소 다칠까 봐 다시 배를 닫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뗄 혹은 안 떼고, 아이 가질 일 없어 쓸모 없어진 자궁은 그냥 떼어버리면 그만이라니. 자궁의 쓸모는 정말 생식(生殖)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말인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큰 병원에 가서 확인한 자궁내막종은 총 4개. 그동안의 증상으로 봐선 이미 다른 장기에 병변이 옮겨붙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병변이 난소나 기타 장기에 옮겨붙고 서로 다른 장기가 유착이 된 상태라면 수술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장기가 다칠 수도 있다. 그래서 나와 같은 가임기 여성의 경우, 바로 수술을 권하기보다는 임신 계획에 따라 다양한 치료 방향을 먼저 권해주기도 한다.


‘자궁을 가진 여성’이라는 사실. 모르는 아기와 함께하는 듯, 내 몸이 2인분으로 느껴졌다. 어쩐지 있지도 않은 아기를 죽이는 것 같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나는 “절대로 임신 계획이 없으니 제 몸 하나만 생각하고 진료해 주세요.”하고 말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뚫린 몸에 오줌줄을 달고,


내가 추천받은 방법은 ‘로봇 수술’이다. 배꼽과 배꼽 양옆에 하나씩, 총 세 개의 구멍을 뚫는 복강경과 수술 방법 자체는 비슷하다. 차이점이라면, 인간의 눈보다 더 자세히 볼 수 있고, 인간의 손보다 훨씬 정교한 움직임이 가능한 ‘로봇’으로 수술한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위해 이리저리 검사실을 다니다 보니 어느덧 수술 날이 되었다. 기다란 병원 복도를 지나, 수술실로 들어갔다. 수술실 앞 자동문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분홍색 삼선 쓰레빠 속에 오른발 먼저 넣어 본다. 조금 작았다.


간호사 선생님의 안내로 수술실 침대에 눕혀졌다. 선생님은 침대 끝에 달린 끈에 양팔을 고정하며 "마취하고 수술 시작하면 머리 쪽이 바닥을 향하게 거꾸로 매달려질 거예요. 그 과정에서 어깨가 많이 눌려서 수술 후 많이 뻐근하실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거꾸로 매달려 잘리는 내 몸을 상상해 봤다. 수술실은 조금 추웠고, 산소 호흡기같이 생긴 마스크에선 라면수프 냄새가 났다. 낯선 공간에서 익숙한 그 냄새를 맡으며 잠이 들었다.


수술 후 제대로 진단받은 병은 ‘자궁내막증 3~4기.’ 이미 골반과 장에도 자궁내막증 병변이 옮겨붙어 있었다. 어쩐지 언제부턴가 월경 때마다 왼쪽 골반이 찌르듯 아팠었는데. 나는 ‘처녀는 산부인과에 갈 필요 없다’는 잘못된 지식으로 몇 년이나 병을 키워 왔던 것일까.


코로나 때문에 병원은 방문객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도 남편은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병원 근처 카페에서 하루아침에 낯선 몸을 가지게 된 나의 불안을 함께해 주었다. 나는 조금씩 걸을 수 있게 되자마자 병원에서 가장 큰 창문 앞으로 걸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높은 병원 건물에서 바라본 그는 개미처럼 작아 보였다. 몇 번씩 병실 복도에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야간 간호사 선생님이 잠깐 그를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기뻐서 바로 튀어 나가려던 나를 붙잡고 간호사분이 "그래도 남편 만나러 가는데 옷 갈아입혀 줄게요." 했다.


순식간에 알몸이 된 내 모습을 그제야 확인해 보니 실로 처참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노란색 배엔 패치 세 개가 나란히 붙어있었고, 긴 치마 모양의 수술복 엉덩이 부분은 이미 굳어버린 검붉은 핏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아래로 길게 이어진 오줌줄을 발견하고는 정말로 슬퍼졌다..


거울 앞에 서서 변해버린 내 몸을 천천히 살핀다. 수술할 때 뱃속에 넣었던 가스 때문인지 그저 붓기 때문인지 여전히 내 배는 노란 풍선처럼 커다래져 있었다. 노란색 배가 볼록. 마치 심슨 캐릭터 같다. 나조차도 보기 싫은 내 몸을 보고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퇴원 후엔 2일에서 3일에 한 번 정도 수술 부위를 새로 소독하고 반창고를 갈아줬다. 오후 9시 알람이 울리면 매일 비잔이라는 호르몬 약을 챙겨 먹기도 했다. 여전히 수술 부위가 강하게 당겨서 일어나고 앉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일주일에 6일은 내리 누워만 있는 생활을 한 달 넘게 하다 보니 넷플릭스에도 흥미가 사라진 지 오래다.


어느 주말. 그가 나를 데리고 사람이 별로 없는 저수지 카페에 데려갔다. 양손으로 허리를 받치고 배를 내밀며 어기적어기적 걷는 나와, 그런 나를 과보호하는 남편을 보며 사람들은 나를 임산부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심 좋은 덕담을 건네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고 싶지 않아 그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배를 만지자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 무렵엔 누가 내 몸에 닿기라도 할까 봐, 무심코 나를 치고 가서 겨우 붙어있는 내 상처가 벌어질까 봐 무서워서 몸을 사렸다.





미레나 시술


상처가 회복될 즘엔 먹고 있던 비잔 약을 중지하고 미레나를 하겠다고 했다. 몇 년간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비잔을 먹을 자신도 없었고, 자궁내막증 질병 특성상 재발이 잦기에 반드시 호르몬 치료는 필수로 병행해야 했다. 팔에 삽입하는 임플라논의 유효 기한은 3년. 미레나는 5년. 캐나다 유학 기간엔 병원에 자주 갈 수 없을 것이다. 유효기간이 더 긴 미레나로 결정했다.


수술 때 느꼈던 첫 수면마취의 공포가 너무도 생생했기에 가능하다면 마취 없이 진행하겠다고 결정했는데, 시술을 시작하자마자 그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하의를 탈의한 채 양쪽 다리를 걸치고 누워있는 내게, 의사 선생님이 기다란 막대기를 보여주며 이 막대기 끝에 달린 집게로 자궁을 살짝 꼬집을 거라 했다.

그때의 통증을 어떤 사람은 심한 생리통 같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출산할 때의 진통과 비교하기도 한다. 내가 기억하는 통증은 상상했던 그 무엇보다도 최악으로 기억된다.


그것은 마치 내 귀로, 코로, 입과 눈으로 기차가 빠르게 달려 나오는 느낌이었다. 눈알이 빠지고 귀에서 자궁이 튀어나올 것 같던 고통. 태어나서 그런 고통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간단한 시술이라 남편과 엄마에게 데리러 올 필요가 없다고 말해두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 빨간색 광역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가야 했다. 주변 사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좌석에 가로로 누워 아랫배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 뒤로도 며칠을 내리 끙끙 앓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보고 무척 안쓰러워했다. 진통의 경험은 그보다 더 길고 아픈데, 우리 딸 아픈 거 싫으니 절대로 아기 낳지 말라고 했다.






아프면 병원에 가자


글을 쓰는 올해로 나는 만 서른 살이 되었다. 더 이상 20대는 아니지만, 여전히 젊은, 결혼 4년 차의 신혼부부이다. ‘절대 임신 계획이 없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남편과 나는 요즘들어 아이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올해 말엔 5년을 꽉 채울 미레나를 빼러 한국 방문할 계획이다. 이제는 주변에서 젊은 나이에도 난임으로 고생하는 부부들을 보다 보니 산부인과 진료에서 난임 여성에게 진료 계획을 달리하는 것이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다행히 너무 늦기 전에 병을 알았고, 자궁을 다치게 하지 않게 수술도 잘 마쳤다. 그러나 여전히 서 있는 시간이 조금만 길어지면, 어김없이 팬티에 피를 쏟는다. 월경하지 않은지는 1년이 넘었다. 모두 미레나 시술의 부작용이다. 수술과 회복 기간에 몸의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생긴 만성 알레르기도, 수면 시간이 조금만 짧아지면 다시 올라온다.


나는 여전히 몸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다. 죽을 만큼은 아프지만 아프고 번거롭고 불편한 몸을. 그래도 그전보다는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적어도 월경통이 심한 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자궁내막증 수술 후 첫 월경에서, 비정상적으로 밑이 빠질 것 같은 통증이 사라짐을 경험했다. 그래. 당연한 건 없는 거다. 조금 무섭고 굴욕적일지라도 내 또래 여성들이 산부인과에 갈 결심을 할 수 있길. 아프면 병원에 가자. 나는 이 단순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서 이렇게 말이 많다. 




-안나, 퇴고로 완성하는 글쓰기 캠프, 25.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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