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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지령 Jun 05. 2023

어린시절의 매교동 집에게

*  이 글은  어릴 적 살았던 집에 대한 기록이자

    그 집에 바치는 헌사이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매교동 175-16번지.

내가 3살부터 결혼하기 전까지 30년을 살던 우리 집 주소이다.

 우리 집은 우리 동네에서 제일 바깥쪽에 있는 집이었다. 우리집 앞은 포장되지 않은 길이었다. 할아버지는 " 포장도로가 되 이 집은 도로와 가까워 집값이 제일 많이 오를게"라고 말씀하시며 우리 집을 사셨다고 한다.

 

우리 집은 적색 벽돌로 담을 쌓은 단독주택이었다. 짙은 초록색 철제 대문은  발로 뻥 차면 문이 열리기도 해서 가끔 문을 걷어차기도 했다. 걷어 차여서 인지  대문의 밑부분이 닳아 있었고, 초록색 페인트가 벗겨져 빨갛게 녹이 슬어 있었다. 철제 대문은 2개로 구분되어 있었다.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 역할을 하는 작은 문과 평상시에는 닫아 놓고, 연탄이 들어오는 날이나 집에 행사가 있는 날에만 개방되는  문이 있었다. 80년대 철제 대문에는 사자의 얼굴이 새겨진 손잡이형식의 문고리가 있었다. 사자의 얼굴은 뭘 상징하는 것이었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상징했던 궁궐의 해태처럼, 악한 기운을 집안에 못 들어오게 하려의미를 사자로 상징화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믿거나 말거나.

대문 안쪽에는 레버를 오른쪽으로 살짝 밀면 열리는 잠금장치가 있었는데, 엄마는 그 레버에 끈을 연결해 대문 밖으로 빼 놓았었다. 누구든지, 대문 밖에서 그 끈을 잡아당기면 대문이 열렸다. 어찌 보면 수동식 자동문이었던 셈이다. 엄마는 어쩌자고 그 끈을 달아놓았던 걸까? 서로 훔쳐 갈 것도 없던 시절이라서였을까? 요즘은 아파트 공동 현관에 조차 비밀번호가 있는데 누구든지 열고 들어 올 수 있는 우리 집 대문의 끈은 인간의 본성을 그저 신뢰하고, 낙관하는 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시멘트로 깔린 마당 한쪽에는 길게 화단이 있었다. 화단 끝에는 수국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화단 한 가운데에는 터줏대감마냥 자리한 커다란 단풍나무가 있었다. 단풍나무 밑에는 아빠가 짜 놓은  평상이 있었다. 우리는 여름이면, 평상에서 수박도 먹고, 가끔 저녁도 먹었다.

에어컨이 없던시절, 유년시절의 여름을 덥지않게 기억하는 건, 그 단풍나무 밑의 평상 덕분인것같다.

내 동생과 나는 마당에 있는, 나무에 고무줄을 걸어, 고무줄놀이를 하기도 하고, 마당에서 자전거도 탔다.

겨울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아빠는 단풍나무에  트리장식용 전구를 연결해 밤새도록 불을 밝혀 놨다. 거실창문으로 그 오색찬란한 불빛들을 보고 있으면, 어린아이 눈에 비친, 겨울밤은 어둠으로 아득하면서도, 작은 희망과 꿈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우리 삶도 언제까지나 그럴 것만 같았다.


집에는 지하실과, 연탄을 쌓아 놓거나 식재료를 보관하는 광도 있었으며 옥상, 장독대도 있었다. 장난감도, 놀꺼리도 많지 않던 시절이라, 그 시대는 공간이 상상의  무대가 되었다.

가끔 엄마를 따라 지하실에 가곤 했는,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앞에서부터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람에  덜컹대는 지하실 문앞에 서면  나는 엄마뒤에 숨어 엄마의 옷자락 끝을 꼬옥 움켜쥐었다. 막상 들어서면 묘한 긴장감은 안도감으로 바뀌었으면서도 지하실에서 나갈때면 우리는 항상 이 말을 외치며 헐레벌떡 뛰어나오곤 했다.

 "귀신 나온다!!"

엄마가 빨래를 널러 옥상에 올라갈 때도 따라 올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동네모습을 바라보곤했다. 높은 건물이 없던 때라, 옥상에서 맞는 바람은 부딪히는 것 없이 허공을 맴돌다, 내 얼굴에 닿아 흩어졌다. 탁트인 전경과 시원한 바람나는 새라도 된듯 자유로웠다.

 

거실은 적갈색의 마룻바닥에, 벽은 다란 판자모양의 나무가 줄을 맞추어 붙여져 있었고,  천장은 나무재질에 꽃문양 조각이 새겨져 있었다. 그 당시 마룻바닥에는 난방이 되지않아,  문양이 화려한 ** 터키식 카페트가 깔려 있었다. 방은 4개였는데, 어릴 때 할머니와 시집 안 간 막내 고모가 방을 하나씩 쓰고, 하나는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골방이었고, 안방에서 우리 다섯식구가 함께 생활하였다. 우리는 방 하나에서 요 두 개를 붙여 깔고, 동생, 엄마, 오빠, 아빠 그리고 나 배열로 잤다. 우리 삼 남매는 밤마다 엄마 옆을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는데, 엄마옆은 항상 오빠동생차지였다. 나는 줄곧 엄마를 양보하고는 아빠 옆에서 잤다. 그럴때면 아빠는 내 마음을 헤아려 주는 양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때, 아빠의 품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풍겨 아빠의 냄새가  엄마의  냄새와 많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품에서는 남자로션의 화학적인 냄새가 났지만, 엄마의 품에서는 들락말락,나른한 졸음이 몰려오는 얼굴을 파묻고 싶은 향이 났다.


내가 방을 얻게 된 것은 열 한살 무렵. 엄마는 골방을 정리하면서 그 방 동생과 내 방으로 내주었다. 덩그러니 놓인 우리의 책상아래로 둘이 누우면 꽉 찼던 방.  방에서 내 동생과 둘이 잤던 첫날 밤을 기억한다. 우리는 엄마아빠랑 떨어져 잔다는 것이 어쩐지 어른이 된 거마냥 설레면서도, 밤이 무서워 손을 꼭 잡고 잤다. 내 인생 최초의 독립.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렇게 설레면서도, 두려움을 감춘 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무서움을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그 방에서  어렴풋이 경험하며 자랐다. 그 집은 그렇게 나를 아이에서 어른으로 길러내었다.


집 터에서 30년을 살다 보니 우리집은 많이 고쳐졌다. 꼭, 시대의 변화를 고스란히 겪은 유적 같았다.  차가웠던 거실바닥이 따뜻해졌고, 나무판자 벽을 뜯어내고 도배를 했으며, 난방시스템이  연탄에서 기름보일러로 바뀌었다. 우리 방은 책상뿐 아니라 침대도 놓을 수 있게 넓어졌다. 제일 큰 변화는 우리 집 앞에 4차선 도로가 생긴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선견지명이 빛을 발했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바깥쪽에 있어 상가를 짓기 적합한 위치였다. 내가 스무 살을 넘겼을 즈음, 아빠는 단독주택을 부시고, 그 자리에 4층짜리 상가 주택을 지었다. 우리 집 앞에 걸어서 1분 거리로 지하철역이 생겼다. 그 지하철은 수원역에서 서울 왕십리까지 가는 노선이었다. 그 후로, 나는 결혼하기 전까지 상가주택의 4층에서 살았다. 상가주택을 지으면서 마당이 없어지고, 아빠의 분재, 난, 보리수나무, 꽃화분들로 가꾸어놓은 옥상정원이 있었는데, 나는 결혼하고 내 아이를 낳고, 친정에 오면, 옥상정원에서 아이사진을 참 많이도 찍어 주었다.


재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지금 그 집은 사라졌다.  집을 지키고자 했지만,  쫒겨나다시피 그 집을 나오면서 엄마, 아빠는 눈물을 흘리셨다. 노후까지 대비해 상가주택을 지었는데, 재개발을 한다 하니, 엄마아빠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일전에 차를 타고, 그 앞 도로를 지나면서 엄마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우리 집이 있던 자리를 보았다. 동네로 들어가던 입구에 있던 낮은 턱, 지하철 역 일분 컷, 우리 집 터를 우리만은 알아볼 수 있었다.


보금자리란 말은, 새가 알을 낳거나 깃들이는 곳, 지내기에 포근하고 아늑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한방에서 다섯 식구가 잤던 어린 시절의 날들은 풍족하지 않은 결핍 속에서도 왜 슬프거나 비루하지 않고 따뜻하게만 기억하는 걸까? 서로 느껴지는 온기 속에서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행복과 사랑이 깃들던 곳.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넣어 빵을 부풀리듯, 내 영혼이 사랑으로 부풀려지던 시간들.  그래서일까.

마흔이 넘은 이 나이까지도 내 꿈에 등장하는 집은 다른 집이 아닌 어릴 때 사는 집인가 보다.


나의 유년시절을 함께 했던 우리의 보금자리.

'나의 매교동 집 안녕.. 고마웠어.' 집에 인격을 부여한다면, 우리 가족을 품어주고, 우리 남매를 길러낸, 매교동 집은 넓은 품과 사랑을 가진 집이었다.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의 하재영 작가의 말처럼, 나도 집이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매교동 집은 내 영혼에 숨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 숨으로 지금 나는 글을 써내려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튀르키예지만 그당시 카펫의 이미지를 살리고자 터키라고 썼다.)




*  엄마의 그림책

책 뒤 표지에는 <집  그리고 가족의 진짜 의미를 알려 주는 그림책>이라는 한 줄 소개가 덧붙여 있어요. 밖에서 어떤 일을 겪든 집은 안식처라는 의미를 <집은 '어서 오렴 우리 아가.' 그러면서 나를 꼭 껴안아 주는 포옹이고요.>라고 말하면서 집을 <포옹>이라고 표현한 것이 참 좋았어요.^^

 이사 가는 소녀의 집에 대한 감성이 서정적으로 표현되어 있어요.  맛있는 냄새, 함께 둘러앉은 사람들, 햇살,  잠들기 전 읽는 그림책, 낯익은 노래... 이 모든 것이 집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집은 단지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삶과 시간을 의미하기도 하니까요. 집에서의 소중한 일상을 (스테파니 파슬리 레디어드)는  "변함없는 하루하루"라고 표현하고 있어요. 감성적이고 세심한 글이, 픽사의 애니메이터인 (크리스 사사키)의 그림과 잘 어우러져 있어요.  우리의 일상을 소중하게 지켜내는 독자님의 "변함없는 하루하루"는 어떤 모습인지 문득 궁금해지는데요. 책과 그림책을 좋아하는 저는 집구석구석 책이 자리하고 있어요.  책과 '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집이네요.^^


낡고 작은 집이 있어요. 처음에는 차를 고치는 정비사 아저씨의 집이었다가, 사진을 찍는 사진사 아저씨 집이었다가  모자를 만드는 모자가게 청년들의 집이기도 하였는데요. 낡고 작은 집은 꿈을 꾸며 살아가는 각자의 집이자 모두의 집이었어요. 어느 날 그림을 좋아하는 아가씨가 이 집에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 작은 집은 또  어떤 집으로 변하게 될까요?^^  꿈꾸는 모든 이를 위한 작은 집, 작지만, 꿈이 있어 희망으로 가득한  집의 변화를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림책 속 막내가 이불마다 발자국을 찍어놓는 바람에 온 가족이 한 이불을 덮고 자게 됐어요. 오빠가 걷어 찬 이불 엄마가 주워오고, 아빠가 걷어찬 이불 할머니가 주워오고.. 누군가 걷어찬 이불 또 누군가 주워오는 방식의 이야기 전개로 가족사랑의 모습을 따뜻하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어요.^^  

저는 어릴 때 저희가족이 한방에서 자던  추억이 떠올라 이 책을 망설임 없이 구매했었는데요. 그 시절엔  결핍 속에서도 슬프거나 비루하지 않고 왜 행복하기만 했던 걸까요? 가족의 온기 속에 사랑이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하수정 작가님은 폭신폭신한  이불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어 그림책 겉표지에 에폭시를 넣어 폭신한 느낌을 살렸다고 해요.

집의 부동산의 가치만이 강조되는  현실에서 독자님의 집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이었나요?


제가 좋아하는 <클라우디아 팔마루치>가 그림을 그렸어요. <클라우디아 팔마루치>의 그림은 솔직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체는 아니예요. 그렇지만 세밀함과 상상력이 굉장한 그림을 그려서 저는 감탄하며 감상하는 그림작가이지요.^^

저는 이 그림책의 마지막 글귀에 눈물 한줄기 떨구었어요.  제 마음속에 위로가 되어주었거든요.

우리가 어린 시절의 집을 떠난 적이 있을까?
어린 시절의 집은 우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다.
설령 집이 완전히 무너지거나 사라져 버렸다고 해도.
페르잔 오즈페텍 (이탈리아 영화감독)

이 책의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을  공개하겠습니다.

옛날이든 지금이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벽돌로 지었든 짚으로 지었든, 모든 집에는 비밀스러운 마음이 스며있다. 무엇보다 그 집에 사는 아이 꿈이 스며있다.<이 책 뒷면의 글중에서>


 권의 그림책과 함께 독자님의 집에 대한 추억이 방울방울 떠오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삶의 흔적과 아이 꿈이 스며있는" 저희 집의 "변함없는 하루하루"무엇인지 공개해 볼게요.^^


달마다 바꾸는 저희집 그림책 북큐레이션  책장이예요.6월은 초록초록. 그림책도 초록초록으로  전시해봤어요.^^


엽서 모으기를 참 좋아해요. 엽서도 기분대로 바꿔 붙이는데요. 엽서와, 저와 아이가 좋아하는패딩턴으로 그위를 장식했어요. 집은 "나"를 보여주는 작은 갤러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희집 욕실 앞, 작은 테이블이예요. 아이가 화장실갈때마다 편하게 읽을것을 찾아서 작게 만들어놓은 공간이예요. 포스터는 이수지작가님의 (굉징한독자들)이라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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