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아빠와 새어머니의 음력 생일이 같다. 모두가 운명인가 하고 호호 웃는다. 아빠의 첫사랑 이름과 새어머니의 이름도 같다. 그렇구나. 하면서도 그 과정을 다 겪었을 지금 나보다 어린 20대의 엄마를 생각하면 그건 고역이었으리라. 새어머니가 자신의 이름과 아빠의 첫사랑 이름이 같다는 것도 이사를 하다 아빠의 일기장을 보고 알았다 하니 더 어렸던 엄마는 아빠의 입에서, 주변인들의 입에서 전해 듣고 활자로 적혀 어디 도망가지도 않는 감정이 구구절절 담긴 일기장으로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재혼하는 이가 또 그 이름이라니. 그 때의 엄마가 콧방귀를 끼며 '넌 그 이름을 못 벗어나는구나' 웃었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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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고 아빠와 교류하며 강원도에 일 년에 몇 번씩 오갔다. 대학을 졸업하곤 시험을 준비한다, 유학을 준비한다며 횟수가 줄었으나 나누는 대화와 전해듣는 정보는 초반보다 깊이가 더 있었다. 몇 번 오가며 느낀 것은 딸을 낳은 아빠가 아들을 바랐던 것은 아닌가, 였다. 친구의 아들이 대학에 입학했다고 했을 때 사준 노트북에 그 감정이 새록 싹텄다. 바로 위에 있는 딸인 나와 동갑인 친구에겐 사주지 않았었기에. 주마다 식사를 하는 아빠 친구의 딸이 곧 결혼을 한다는 얘기에 임신과 결혼, 여자와 남자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도 마치 금기와 같을 나 임신했을 때 얘기가 나왔을 때도 그 싹은 무럭무럭 자랐다.
"쟤한텐 미안하지만 안 낳으려고 했어. 근데 주변 사람들이 다 아들 같다는 거야. 배 모양도, 뭣도."
아들이어서 낳고 싶었단 직접적인 말은 하지 않는다. 아빠는 나름 지성인이었고 성인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모든 게 함축되어 있었다. 그러려니, 알고 있었다는 듯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강원도 부모님의 생신이어서 강원도에 가서 고모네와 저녁을 먹었는데 또 자식 얘기가 나왔다. 대충 큰 아빠와 장남, 아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파생된 가지였다.
"아들을 바랐어. 이 사람한테 아이 하나만 낳자고도 해봤지. 아니면 양자를 들일까"
인터넷과 TV에 올라오는 아주 대범하고 직접적인 사연들만이 아들과 딸에 대한 얘기가 아니었다. 딸을 하나 둔 아빠의 입에서 '양자' 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렇게까지 '아들' 의 존재가 있었으면 했다고? 자신의 피가 섞이지 않았어도? 단순히 '아들' 을 바라서? 누가 보면 대를 잇거나 큰 사업을 이을 이가 필요한 줄 알겠다. 과해보였다. 그 열망이. 바람이.
감정이 빠르게 뒤섞였다. 의문들이 떠올랐다가 한심함으로 바뀌었다가 나는 이내 인정받지 못하는 거겠구나 싶었다가. 상념의 종착점은 발 끝 아래로 추락하듯 떨어져 아무 상태도 남지 않아버렸다. 아들을 바란 것과 양자의 문제는 별개였다. 저 지성인이고 똑똑한 아빠는 늘 한 입으로 두말하는 재주가 있었기에 이 얘기를 했다가 또 깊이 생각해보면 반대의 메시지를 담은 말들 속에서 나는 중심을 잡느라 긴 세월을 보냈다. 근데 그 식사 자리에서 왜 그러했는지 깨달았다. 나는 존재를 인정받고 싶었던 것이다.
떨어져 지낸 부친에게 존재를, 사랑을, 애정을, 자식임을 인정받고 싶었다. 경제적인 지원도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대화도 고민도 모두 보통의 부모자식간의 것임에도 어릴 적부터 채워지지 못했던 시간들을 채우고 싶기라도 하듯 인정을 바랐더라. 그런데 양자라는 단어에 그는 무의미했음을 깨닫고 만 것이다. 그러자 내 고민에, 선택에 떠올랐던 존재와 그 시간들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인 것을. 무엇을 그토록 두려워하고 걱정하였을까.
부모도, 나도 서로 자부하였다. 보통의 이혼가정과 다르게 애정을 주었고, 받았으며 성인이 되고난 후에도 교육비를 목적으로 경제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따라서 그 사이에 존재할 자식의 결핍에 대해선 아무도 인정하지 못했다. 어릴 적 장남에 치여 부모의 애정이 고팠던 아빠만이 비슷해보이는 자신의 딸에게 비슷한 안쓰러움을 느낀 게 다였다. 그 안쓰러움이 애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혹은 어릴 적, 영민해보이던 딸이 자신과 달리 이름을 떨치지 않을까 기대하는 것도 있었다. 글을 쓰는 와중에 눈에 보이는 텍스트들을 비관적인가, 하고 열심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어본다. 그러나 이는 몇 년에 걸쳐 무뚝뚝한 말들과 표현, 그답지 않은 행동들, 성격을 통해 그나마 내게 하는 것들이 사랑이구나, 애정이구나, 부모와 자식이구나 스스로 자각하며 쳐내고 남은 감정들만 가지고 적어보이는 것이었다.
강원도에 다녀오면 내가 자주 하는 말은 그와 닮았다였다. 외모가 닮았다. 새어머니가 아빠와 성격이 똑같다더라. 알레르기가 있는 아빠와 비슷한 반응을 하고, 약한 신체부위가 같고, 지독한 유전을 마치 내가 그의 자식임을 스스로 인정해보이듯, 나는 요즘 그런 말들을 자주하였다. 불과 1-2년 전만해도 아빠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성격인지 세밀한 부분은 몰랐는데 이제 조금씩 알아가며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조합하며 왜 내게 조심하라 하는지, 게으름을 멀리하라는지 알 것 같았다. 내게 하는 모든 말은 젊은 시절 자신이 행햇던 것들이었다. 유전이니 너는 그러지마.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그 말들이 좋았다. 무슨 이윤진 몰라도 아빠와 내가 닮았구나, 아빤 나에게 자신의 젊은 시절을 투영하며 그러지 말라고 하고 있는 거구나.
시간이 흘러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집중할 거만 하기에도 부족한 나이에 놓인 아빠는 열망들을 내려놓고 하나 남은 것에 집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자식이 하나 더 있는 엄마와 달리 나밖에 없는 아빠가 나는 늘 안쓰러웠다. 결혼도, 출산도, 아빠에게 보통의 사람이 통상적인 사회적 흐름에 맞추어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 더 그러했다. 그러나 조금, 아주 조금 그 안쓰러움이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