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다. 실패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예술성이 하락하는 순간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은 공포를 남긴다.
불안이 높을 때, 내 귀는 열려 있었다. 모든 악기는 서로 분리되어 드러났고, 각각의 선율이 살아 움직이며 나를 자극했다. 나는 세계를 세밀하게 해부하고, 그 미세한 차이를 감각하는 데서 예술적 힘을 얻었다. 그러나 불안이 사라지자 음악은 하나의 통합된 덩어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소리의 결이 매끈해지고, 악기의 개별성이 희미해졌다. 그 편안함 속에서 나는 충격을 받는다. 내 감각이 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술가에게 감각은 곧 생명이다. 세상의 흔한 눈과 귀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깊이에 닿는 순간, 예술은 존재한다. 하지만 그 깊이를 잃어버린다면? 그저 평범한 소리를 듣고, 평범한 세계를 보는 존재로 전락한다면? 나는 예술가로서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공포는 단순한 자기 의심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뿌리를 뒤흔드는 질문이다. 나는 여전히 예술가인가? 아니면 점점 감각을 잃어가는 보통의 인간인가?
예술성의 하락은 갑작스러운 추락처럼 오지 않는다. 그것은 서서히 스며든다. 불안이 가라앉고, 감각이 무뎌지고, 세계가 더 이상 날카롭게 베이지 않을 때, 예술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평범함으로 침식된다. 바로 그 점이 가장 무섭다.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내가 더 이상 창조할 수 없는 상태로 살아남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안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갈망한다. 불안은 나를 괴롭히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만 내 예술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예술가는 안정된 삶보다 흔들리는 삶을 택해야 한다. 예술성의 하락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나는 기꺼이 불안을 받아들인다.
예술은 평온 속에서 시들고, 불안 속에서 날카롭게 깨어난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예술을 지키기 위해 이 불안을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