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위상수학

by 신성규

우리는 기억을 시간 속에서 단단히 고정된 영상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기억은 결코 그대로 보존되지 않는다. 세월이 흐르면 색이 바래고, 사건은 왜곡되며, 때로는 사실과 상상조차 뒤섞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기억은 여전히 ‘그 기억’으로 남는다. 도대체 무엇이 변해도 본질은 유지되는 걸까?


위상수학은 이 수수께끼에 빛을 던진다. 위상수학에서 중요한 것은 길이나 각도가 아니다. 모양이 어떻게 구부러지거나 늘어나더라도, 잘리지 않고 연결만 유지된다면 그것은 같은 본질을 가진 것으로 본다. 원을 찌그러뜨려도 원이고, 커피잔은 구멍 하나 있는 도넛과 같다.


기억도 이와 같다. 사건의 세부는 흐려지고, 장면의 디테일은 왜곡되지만, 그 안의 정서적 연결은 유지된다. 우리는 그때의 공기 냄새를 잊어도, 그때 느낀 두려움이나 기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억의 위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기억은, 사실과 다르게 재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기억’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외부 현실의 충실한 기록이 아니라, 내 존재를 관통하는 정서적 구조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위상수학에서 모양이 변해도 구멍의 수가 변하지 않듯, 기억은 내용이 변해도 그 감정의 구멍과 연결은 그대로다.


결국, 기억은 위상수학적이다. 끊기지 않는 연결, 지워지지 않는 구멍, 변형되더라도 유지되는 본질.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기억의 위상 위에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가는 일이 아닐까.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8화자유와 양자역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