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 문학: 물결이 닿는 자리

by 신성규

카페 창가 자리에는 오후의 빛이 기울어 붙어 있었다. 유리잔 바깥으로 맺힌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그 아래에서 작은 물웅덩이가 번졌다. 그는 그걸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몇 시에 오겠다고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지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물방울이 잔 표면을 타고 흐르다 멈췄다. 그 멈춤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마치 시간이 그 지점에서 얇아진 것처럼. 그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다 말고, 시선을 조금 더 가까이 가져갔다. 투명한 물결이 유리를 왜곡시키며 바깥 풍경을 흔들었다.


물이 저렇게 얇게 떨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욕조 안이었다.


타일 벽에 등이 닿아 있었고, 물은 배꼽 위까지 차 있었다. 그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물 표면을 보고 있었다. 욕조 위 전등이 흔들리는 물결에 부서져, 천장에 일렁이는 빛을 만들었다. 숨을 크게 쉬면 물이 미세하게 출렁였고, 그 출렁임이 세상을 흔들었다. 세상은 물 위에 떠 있었다.


“물 튀기지 마.”


어머니 목소리는 욕실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정확히는, 벽 너머. 물속에서 들으면 모든 소리는 둥글게 말려 들어왔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으로 물을 살짝 밀었다. 작은 파문이 생겼다. 세상이 다시 흔들렸다.


카페 안에서 누군가 웃었다. 너무 가까이서 들린 소리였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유리잔이 다시 눈앞에 있었다. 물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가슴 안쪽 어딘가는 여전히 욕조 안이었다. 몸이 커졌다는 사실이 잠시 믿기지 않았다.


지금 여기 앉아 있는 사람은 누구지.


기다리는 나였다.


아니, 기억하는 나였다.


아니, 보고 있는 나였다.


테이블 위의 손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았다. 손은 가만히 있었지만, 그걸 바라보는 감각은 두 겹이었다. 하나는 카페의 소음 속에 앉아 있었고, 다른 하나는 욕조의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둘을 구분하려 애쓰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누구지.


그 질문은 목소리 없이 떠올랐다.


문 쪽을 한 번 봐야 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 쪽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다시 물잔으로 돌아갔다. 물방울 하나가 다시 흘러내렸다. 이번에는 끝까지 내려와 테이블 위 물자국에 합쳐졌다.


합쳐지는 순간, 그는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다.


무언가가 제자리로 돌아온 느낌.


아니, 무언가가 사라져서 조용해진 느낌.


어머니는 결국 욕실 문을 열고 들어왔었다. 수건을 들고 서서, 물 위에 손을 담그며 온도를 확인했다. 그 손이 물을 가르자 세상이 크게 흔들렸다. 그때 그는 웃었는지 울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물결이 커질수록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만 남아 있다.


“이제 나와.”


그 말은 지금도 유효한 명령처럼 느껴졌다.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들어왔다. 약속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사실 약속이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기다림은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 상태를 위한 것 같았다. 누군가 오면 끝나는 게 아니라, 무언가가 맞춰지면 끝나는.


지금 맞춰진 걸까.


현재의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고

과거의 나는 물속에 누워 있었고

관찰하는 나는 그 둘 사이의 간격을 재고 있었고

해석하는 나는 이 모든 장면이 하나의 구조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유리잔의 물은 이제 완전히 멈춰 있었다. 표면은 매끈했고, 카페 천장이 또렷하게 비쳤다. 그는 그 안에 비친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낯설지 않았지만, 정확히 지금의 얼굴도 아닌 것 같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아직 오지 않은 누군가가 아니라

아직 완전히 현재에 도착하지 못한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그 생각이 떠오른 순간, 어딘가에서 아주 작은 물소리가 났다. 실제였는지 기억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숨을 멈췄다.


누군가 맞은편 의자에 앉은 것 같았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물결이,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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