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더 나은 사회’를 외친다.
정교한 제도, 더 스마트한 기술, 더 고도화된 행정.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고도화 속에서 점점 인간은 ‘기능’으로 환원되고, 감정은 ‘비효율’로 여겨진다.
마치 우리가 인간이기를 멈추고, 성공이라는 목표만을 향한 계산기로 작동하는 듯하다.
이 글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가에 대해, 특히 교육과 제도, 권력과 감정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공부는 단지 개인의 노력이나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그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자본의 이양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부모의 재력과 시간
양질의 교육 환경
학군과 사교육 시스템
이는 곧, 이미 자본을 보유한 계층이 자녀를 통해 자본을 ‘이양’하는 과정이다.
즉, 공부는 능력주의의 옷을 입은 귀족적 자본 이전의 수단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자본 이양의 구조는 ‘학군’이라는 지역 격차로 더욱 견고해진다.
예컨대 대한민국에서 강남 8학군, 분당, 대치동 등은
이미 부동산과 교육, 계층이 중첩된 ‘현대 귀족 문화’의 축소판이다.
공부란 단지 머리를 쓰는 일이 아니라,
자본이 재생산되는 가장 조용한 시스템이다.
지금의 교육은 민주주의의 옷을 입은 귀족제도다.
인간은 공정을 외치지만, 공정이 자신에게 손해가 될 때는 회피한다.
우리는 이미 정답이 정해진 불평등의 경주에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노력’과 ‘능력’이라는 신화를 생산한다.
불편한 진실은 이것이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한다.
제도의 고도화는 ‘능력’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을 은폐한다.
그래서 인간은 더 정교한 제도를 요구하지만, 그 제도는 공정이 아니라 기득권의 재포장이 되곤 한다.
사회는 계속해서 지표화, 평가화, 자동화된다.
교육은 수치로 환원되고, 노동은 효율로 평가되며, 삶은 스펙으로 계산된다.
이런 세상에서 감정은 쓸모없는 것, 공감은 ‘비논리적 행위’로 치부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나은 점수,
더 높은 연봉,
더 강한 스펙을 위해,
스스로를 감정 없는 기능으로 길들인다.
이 과정에서 공감, 감정, 내면은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사람은 점점 기능, 결과, 이미지로만 존재하게 된다.
사이코패스는 흔히 병리적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오늘날, 그들이 가진 몇 가지 특성 —
공감의 결여, 감정 통제, 극단적 목표 지향성 — 은 오히려 ‘성공의 요건’으로 재해석된다.
냉혹하게 구조조정하는 CEO
시장을 심리전으로 다루는 금융가
이미지와 리스크만 관리하는 정치인
이들은 감정을 도구로 여기고,
인간을 ‘효율적 자원’으로 간주하며,
사회적 승리를 거머쥔다.
이런 사회에서는 오히려 감정이 없는 자들, 공감을 배제한 자들이 성공한다.
그들은 불편함 없이 구조조정하고, 사람을 숫자로 보고,
타인의 고통을 ‘리스크’로만 이해한다.
이제 우리는 냉혹함을 ‘능력’이라 부르는 사회에 살고 있다.
순수한 사람은 불리하다.
그들은 싸우기보다는 양보하고, 조작하기보다는 믿으며, 거래보다는 진심을 선택한다.
그러나 이런 성향은 비효율로 낙인찍히고, 시스템 안에서 배제된다.
그 결과, 순수한 인간은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체제에 적응하며 순수를 버리거나
체제 밖으로 밀려난다.
정제된 사회는 순수를 수용하지 않는다.
예민한 이들은 사회 구조의 불협을 먼저 감지한다.
표정 뒤에 숨은 위선
말 속에 묻힌 공허함
제도 이면의 불평등
하지만 그들은 침묵한다.
왜냐하면, 말할수록 ‘너무 비효율적인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회에서 예민함은 약점이다.
그러나 가장 먼저 사회의 이물감을 느끼는 것도, 이들이다.
그들은 감정의 지형, 권력의 냄새, 불평등의 방향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 감각은 말할수록 ‘비정상’으로 낙인찍힌다.
그래서 그들은 침묵하고, 침묵 속에서 병들어간다.
예민함은 죄가 되고, 감각은 부적응이 된다.
그들은 말하지 않지만, 알고 있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 어려운 구조가 도래했다는 것을.
고도화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묻는다.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진짜 성공인가?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잘 훈련된 알고리즘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비효율’이라 여겨지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점점 질문하는 능력 자체를 잃어간다.
그러나 진짜 인간다움은,
비효율적인 감정, 부조리한 의심, 공감 속에 숨어 있다.
우리는 다시 불편해져야 한다.
다시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효율을 넘어 공감을, 성공을 넘어 삶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에야 우리는
기능이 아닌 존재로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