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남자의 오도바이에 오른 얌전한 고양이

이젠 연애도 다 귀찮은 유교걸이 발리에서 저지른 일탈과 연보랏빛 꽃그림

by 논이

그날도 우붓 단골 비건식당 사유리에서 라이브 공연을 즐기고 혼밥을 하다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한 1분쯤 발걸음을 옮겼을 때 웬 바이크 한대가 옆에 멈춰 쳐다보니 운전자가 말을 걸어왔다. 사유리에서 나를 보고 따라왔다며 시간이 되면 잠깐이라도 좋으니 같이 바에 가서 뭐라도 마시며 얘기하자던 남자는 갓 끓여낸 라면처럼 꼬들꼬들한 빠글 머리(양배추인형 머리와 비슷)에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턱수염이 얼굴의 반을 뒤덮어 몹시 덥수룩한 모습이었다. 고딩때 팬이었던 김종국 목소리는 좋아해도 모기처럼 앵앵대는 가느다란 목소리까지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게다가 정상인이라면 밤 9시에 길거리에서 그런 짓을 시도하지 않는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난 무모하게도 일말의 고민도 없이

"Ok, why not?"

하며 냉큼 그의 바이크 뒷좌석에 앉아버렸다.


나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남자였고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이대로 집에 가기 조금 아쉽기도 했다.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우붓은 유흥시설을 받아들이지 않아 나이트클럽 하나 없고 비건식당에선 술도 팔지 않는데 이런 잔잔하고 평화로운 우붓에서 납치소동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았고 술도 안 파는 비건식당에서 밥을 먹다 온 사람이니 나쁜 사람은 아닐 거라는 나만의 순진한 편견으로 판단해 일탈을 저지른 것이다. 나도 내가 그럴 줄 몰랐다.


거짓말 살짝 보태 정숙한 유교걸인 나는 삼십 년 동안 모태솔로였고 그 여파로 삼십 대에 연애를 쉬지 않고 하며 에드워드(미래의 남편 이름)를 찾아 헤맸지만 인연이 안 닿았는지 아니면 눈이 높아서인지 결혼운이 없었다. 어쩌다 남자가 접근해도 내 스타일이 아니면 철벽을 쳐 주제 모르는 노처녀로 늙어가던 중 연애세포가 바짝 메마른 초식녀로 변해버렸고 제주도에서 독수공방 하며 허벅지를 찌르고 살다 더 이상 이렇게 아줌마 비구니스님(채식에 명상, 백팔배를 매일 함)으로 삶을 마감하기는 싫어 모든 걸 정리하고 발리로 갔다. 그리고 멋진 라이브 콘서트가 매일 있는 우붓 비건식당 덕분에 집순이에서 탈피해 야타족이 꼬시면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도바이에 올라타는 정신 홀랑 나간 여자가 되어버린 거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고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그게 나였다. 오랜만에 아는 이 하나 없는 외국에 나오니 눌려있던 심리적 억압이 풀려 별짓을 다하는 앙큼한 고양이가 된 것이다.


그는 바이크를 몰며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자기를 소개하고(특유의 영어억양과 목소리가 앵앵대서 그럴 줄 알았음) 내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도 일 때문에 이태원에서 2개월 있었다며 반가워했다. 3분 정도 달려 우붓 센터 어느 골목에 다다르자 바이크를 세운 그는 바와 레스토랑이 즐비한 거리 한편에 뚫려있는 작은 골목을 가리키며 그곳에 자신이 지내는 홈스테이가 있다고 했다.

'혹시 나더러 자기네 집에 가자는 거 아냐? 미친놈. 절대 안 돼.'

이미 낯선 아저씨 오토바이에 겁도 없이 올라타고 왔으면서 뭘 새삼 두려워하는거냥 이 나이에.


다행히 그는 건물입구가 연보랏빛 꽃으로 흐드러지게 핀 꽃덩굴이 낭만적으로 뒤덮인 어느 바 앞에서 여기 어떠냐고 물었다. 도심이라 아직 사람도 많이 걸어 다니고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활기찬 분위기에 OK 하고 빈땅 맥주를 마시며 얘기해 보니 그는 밀라노 출신 디자이너이고 발리에 산지 8개월쯤 됐으며 우붓을 치유의 약 같은 도시 Medicine City라며 극찬했다. 매일 아침 요가를 한다면서 애연가인, 건강에 신경 쓰는 듯 안 쓰는 그는 묻지도 않았는데 미국여자와 결혼했던 이혼남임을 밝히고 자기 나이를 알려줬다. 보기보다 어렸던 그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오빠라 역시 백인은 노화가 빠르다고 생각하며 그의 미간에 푹 패인 세로줄을 바라봤다. 어지간히 예민한 성격이군. 마흔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명언이 떠오르며 내 미간에 은근슬쩍 자리 잡으려는 내 川 천 자도 생각났다.


그는 요즘 하는 일 때문에(사업에 필요한 영화를 찍는다나) 어쩔 수없이 수염을 기르고 있다며 폰에 담긴 자신의 사진을 보여줬는데 사진 속의 그는 안경을 벗고 수염이 없는 말끔한 얼굴의 미남이었다.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잘생겨 뽀샵하고 필터를 썼거나 보정앱을 썼겠거니 했다. 아니면 20년 전 사진이거나. 시작이 좀 비정상적이고 가볍게 만나서인지 자꾸 그에 대한 모든 걸 삐딱하게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당황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맥주를 마시던 그 야외 바와 밤거리 분위기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 이 아저씨 오도바일 타고 따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골목에 위치한, 연보랏빛 벵갈시계 덩굴꽃 Bengal clockvine이 입구에 흐드러져 자연친화적인 인테리어가 사랑스러운 바에 앉아서 지나가는 한국인 신혼부부 구경도 하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 보는 재미도 있었다. 발리에 와서 한 달 동안은 늦어도 밤 9-10시면 귀가했기 때문에 익숙하지 않았던 우붓의 밤문화와 신선한 밤공기가 그저 좋았다.


디자이너인 그와 그림 그리는 나는 서로의 인스타그램을 맞팔하고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머리 위에 피어있던 벵갈시계 덩굴꽃이 툭하고 우리의 테이블 위에 떨어졌다. 이태리아저씨는 꽃을 내 연보랏빛 치마 위에 올려놓더니 웃으며 말했다.

"오, 이 꽃 너의 옷과 같은 색깔이잖아."

정말 그랬다. 신기할 정도로 내 원피스와 꼭 같은 색의 주먹만 한 커다란 꽃이 예뻤다.

"너처럼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해서 좋은 밤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이탈리아 남자의 느끼한 플러팅인가. 어떻게 좀 해보려고 수작 부리는 게 빤히 보여 웃음이 났다(썩소). 그가 덧붙였다.

"우리 집에 그림 보러 가지 않을래?"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더욱 징그러웠다. 내가 지금 차은우가 집에 가자고 해도 안 갈 판에 너네 집엘 왜 가?

"미안하지만 못가. 배가 조금 아파서."

핑계를 댔지만 사실이었다. 아까부터 장에서 내보내야 할 공기방울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느라 뱃속이 계속 부글거려 얼굴이 노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가 멀쩡했어도 그의 집엔 절대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처음 만난, 게다가 내 스타일도 아닌 양배추머리 집을 미쳤다고 쫓아가리? 오도바이엔 냉큼 탔어도 집은 안 간다! 그는 굉장히 실망한 얼굴이었지만 맥주를 다 마시고 계산을 하려는데 한사코 자기가 낸다고 했다. 공짜로 술을 얻어먹을 생각은 없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모든 일에는 대가를 치러야 하니까. 나는 내 맥주값은 내가 내겠다며 고집을 부렸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바를 나서는데 그가 바이크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헬맷을 썼다. 아니라고 해도 굳이 데려다준다는 그가 고마워 운전하는 아저씨의 어깨를 안마해 줬다. 심각한 하녀근성이 있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외할머니와 부모님 어깨를 주무르던 실력에 도자기 공예를 전공하며 단련된 손아귀힘으로 열심히 안마하자 그가 특이한 리액션을 펼치기 시작했다. 석쇠 위에서 오그라드는 한 마리 오징어가 된 그는 어깨를 가만두지 못하고 상체를 부르르 떨며 난리가 난 거다. 아파서 그러냐고 묻자 좋아서 그런 거란다.

‘아 이 아저씨 이상해!’

아무래도 예술가라 오감이 너무 예민해서 지혼자 흥분하고 짜릿함을 느낀 것 같았다. 그의 구운 오징어 같은 반응에 웃음이 났지만 안전운행을 해야 하니 마사질 자제하고 깔깔대며 웃고 떠드는 사이 어느새 집에 도착해 바이크에서 내려 인사를 하자 그는 두 팔을 활짝 벌려 나를 안으려고 했다. 외국에선 서로 안고 뽀뽀하는 게 평범한 인사지만 난 성질이 예민해서 종종 난감할 때가 많다. 멋있는 남자는 백번이고 으스러지도록 껴안을 수 있는데 마음에 안 드는 남자와 포옹하고 나면 기분이 더러워진다. 생각해 보면 꼭 별 볼 일 없는 남자들 대다수가 인사한다는 명목으로 징그럽게 껴안으려고 했다. 그래도 이 이태리 아조씨는 야타족이면서 뭔가 순수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아 작별인사로 흔쾌히 안아주고 나서도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같이 예술하는 처지라 그런지 동지처럼 편하게 느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 이후로 다신 그를 만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날 밤 그 연보랏빛 덩굴꽃이 핀 바에 우산을 두고 왔기 때문이다. 그 바의 이름도 모르고 완전 길치라 어디에 있는지 구글맵으로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 인스타그램으로 디엠을 보내 바 이름을 묻자 그는 자기가 가서 우산을 가지고 오겠다고 하더니 잠시 후 우산 사진을 첨부한 디엠이 도착했다.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자 그는 우산 찾으러 오면 자기네 집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자며 또다시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려고 우산을 냉큼 가지러 간 거였군, 이런 흑심 품은 아저씨!


그를 다시 만나기 부담스러워 아침을 함께 먹고 그림도 그리자는 그에게 완곡히 거절하고 우산을 찾으러 그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놀랍게도 그는 180도 변신해 있었다. 면도를 말끔히 하고 안경을 벗은 이태리남자가 아침햇살 아래에서 반짝거려 동일인물인가 의심이 갈 정도로 달라져있었다. 밤엔 어두워서 몰랐던 그의 눈동자는 발리의 푸른 바다처럼 빛났고 수염에 가려져 있던 절반의 얼굴이 드러나니 베일을 벗은 새 신부 같았다. 그가 그날밤 보여준 그 사진 속 미남 그 모습 그대로였다. 미간의 세로 주름과 양배추 머리가 눈에 보이지도 않았다. 놀랐지만 태연한 듯 인사하고 그의 예술작품으로 꾸며진 야외 거실을 구경했다. 그의 그림으로 가득한 코티지는 하늘색으로 페인트칠된 예술적 감각이 돋보이는 멋진 오두막집이었다. 우붓 도심지에 보석처럼 숨어있던 정글 속 집에서 우산을 가지고 나오며 그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서둘러 발리어 수업을 들으러 갔다.


그 이후로 우연히 한번 더 만나 와인바에 함께 가서 얘기를 나누며 서로에 관해 더 알아갈 시간을 잠시 가졌는데 그가 잘 나가는 디자인 회사의 대표이자 일본 사이비 종교로 알려진 남묘호렌게쿄에 빠져있고 자기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는 특이한 사람이란 걸 알아차리게 되었다. 말도 재미있게 하고 둘 다 예술을 해 대화가 통하는 데다 외모도 근사하고 키도 커서 호감이 가긴 했지만 평화를 갈망하는 내 영혼에 분란을 일으킬만한 요소를 충분히 가진 그와 가까워지긴 싫었다. 그렇게 멀리하며 데면데면 지내던 중 그는 밀라노로 돌아갔고 나는 발리를 떠나 호주로 왔다. 낯선 남자의 오도바이에 올라탈 일은 이제 다신 없겠지만 추억으로 남겨진 발리에서의 일탈에 웃음 짓는다.

(2025년 7-8월에 발리에서 생긴 일)



인류는 외모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는 어떤 것을 얻으려고 어떤 노력을 하는가에 따라서 평가되어야 한다. -존 시알티


너무 소심하고 까다롭게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지 말라. 모든 인생은 실험이다. 실험은 많이 할수록 더 나아진다. - 랄프 왈도 에머슨


그 밤, 야외 바에 흐드러지게 피었던 뱅갈 시계 덩굴꽃. 발리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꽃으로 주먹만큼 큼지막하다.



그 보랏빛 뱅갈시계꽃을 그리다 말았다. 종이 위에 수채
귀찮아서 더이상 그리고 싶지 않아졌다. 연애도 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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