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은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4
사람 14
주 보호자도 아닌 사람이 간호부 데스크로 와서 소리 질렀다. 이준영 할아버지의 형이라고 했다. 어림으로 보아도 백 세 가까이 되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얼굴과 손에 겨울 커튼 같은 무거운 주름이 가득했다. 그를 붙잡고 있는 사람들도 칠십이 넘어 보이는 노인들이었다.
“아버지, 여기 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어떡해요? 작은 아버지 잘 계시는데 왜 그러세요. 수고하시는 선생님들께 감사인사는 못 드릴망정 이러시면 안 되죠.”
할아버지의 아들인가 보았다. 꼬장꼬장한 할아버지에 비해 목소리가 낮고 점잖았다. 난감해하는 표정이 자기 아버지의 무례에 당황해하고 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병원에 들어갔다고 해서 살만한 사람 치료하는 줄 알았지. 나도 늙고 기운이 빠져 오늘내일하다가 그래도 핏줄이라 맘에서 안 떠나 겨우 와 봤더니, 저게 사람 형상이요?”
“이준영 어르신께서 워낙 중환이시라 놀라셨죠? 네. 그래서 그래요. 놀라시는 거 당연하죠.”
차팅을 하고 있던 간호사가 데스크 밖으로 달려 나가 할아버지 팔을 붙들고 설명을 반복했다. 할아버지가 진저리 치듯이 간호사의 손을 털어냈다. 고함이 계속됐다.
“살 수 없는 사람이면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거 아니요? 코에 불알에 호스란 호스는 다 끼워 놓고 영양식이다 뭐다 하며 미숫가루보다 못한 멀건 물이나 밀어 넣고, 저렇게 날수만 늘이면 그게 될 일이요? 아무리 돈 버는 데는 선산도 팔아먹는 세상이지만, 죽을 사람을 죽지도 못하게 하는 게 이게 될 말이냐 말이오.”
“아버지, 그래도 작은 아버지를 병원에다 모셨으니 지금 저 정도라도 버티시는 거죠. 아니었으면 작은 아버지 벌써 저세상 사람이에요. 다 아시면서 왜 맘에 없는 화를 내세요?”
아들의 머리가 자꾸 숙여졌다.
“그래서 너도, 때 되면 나를 이런데 처넣을 거냐? 저렇게 뼈만 남은 몸 무거워 터지게 주렁주렁 호스 매달아? 그러고도 자식 도리 한다며 천지 사방에 자랑 질 할 거고?
죄인처럼 서 있던 준영 할아버지의 아들이 사촌 형을 밀치며 할아버지 앞으로 성큼 걸어왔다.
“큰 아버지, 여기 오면 진통제라도 주잖아요. 그래서 아버지가 덜 아프잖아요. 음식은 삼키지도 못 하시는데 그럼 집에서 굶겨 죽여요? 여기선 콧줄로라도 하루 세 끼 곡기는 들어가잖아요. 이미 열린 항문으론 밤낮으로 속에 게 흘러나오는데 누가 그걸 감당해요? 여기선 보호사님들이 시간 맞춰 닦이고, 씻기고... 다 해 주잖아요?”
“누가 그런 걸 말하는 거야? 사람을 쓰면 되잖아. 저런 사람들 집으로도 와서 해준다더라. 씻기고 기저귀 갈고 집에서 하면 될 거 아니야?”
“그럼 식사는요? 못 먹으니 그냥 돌아가시게 해요? 통증은요? 말 못 하시니 그냥 참으라고 해요? 여기 형한테 물어보세요. 형 같으면 큰아버지를 집에서 그렇게 돌아가시게 하겠냐고요. 병원에서 이만큼이라도 하고 있으니 아버지 아직 세상 사람이라고요.”
다른 병실에 있던 보호자들이 모두 문 앞으로 걸어와 귀를 기울였다. 몇 사람은 병실에서 나와 주변을 서성 거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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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게 하라고! 죽어야 될 사람은 죽게 둬야 그게 위하는 일이라고! 뭐? 아직도 세상 사람? 네놈 눈에는 네 아버지가 지금 산 사람으로 보이냐? 이놈아, 네 아버지는 지금 안 죽는 게 아니라 못 죽는 거야. 죽고 싶어 죽겠는데, 네놈 그 얼빠진 효심 때문에 못 죽고 있는 거라고. 얼마나 더 사람 꼴 상해야 네 아버지 보낼래? 집에 뒀으면 벌써 황천길 떠나 편해졌을 사람을, 저 사람이야 아프던 말든, 지가 못 느끼는 고통이라고 짐승 밥 주듯 남이 밀어 넣는 멀건 물 먹여 배 불리고, 시간 맞춰 진통젠가 뭔가 주사 찔러 죽어가면서도 고통도 모르는 바보 만들고...”
밖으로 나왔던 다른 병실 보호자들이 잠깐 동안에 핼쑥한 얼굴들이 되어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 제일 괴로운 형벌이 죽고 싶어도 안 죽어지는 거다. 아니지. 죽어 가는데도 자꾸 살려놓는 거다. 네 아버지, 퇴원시켜라. 절대 오래 안 갈 거다. 봐라, 내 말이 틀리면 열두 번이라도 손가락에 장을 지지마. 죽게 해. 못 죽게 그만 하고. 이런 불효는 없다. 옛날엔 다 그렇게들 세상 떠났어. 의사 한번 못 만나도 저렇게 짐승만도 못한 꼴은 안 보였어. 안 보이고도 죽을 수 있었단 말이다. 의사 간호사 있다고 다 병원이야? 병을 낫게도 못하면서 죽게도 못하는 이런 데가 그래 요즘 유행이란 요양병원이란 데야? 옛날 고려장도 이보단 나았어. 쌀 떨어지면 그대로 죽어졌으니까. 여긴, 뭐냐? 밥 주고 약 주고 숨만 붙여 놓는 여기는!”
할아버지와 그 아들들이 빠져나간 병동에서 뒤를 이어 다른 병실 보호자들도 서둘러 나갔다.
수고하시라는 그들의 인사도, 안녕히 가시라는 직원들의 대답도 그날은 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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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무렵 다음 근무에 들어온 간호사와 조무사가 병동의 무거운 공기에 대해 물었다.
“안 가시는 게 아니라, 못 가시게 해서... 어쩌면 그게 맞는 말 같아서...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무슨 말이에요?”
동료 조무사가 동그랗게 눈을 뜨며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준영 할아버지의 병실로 들어가며 떨어지도록 고개만 흔들었다. 뭉친 어깨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