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6
사람 16
질문하는 사람 앞에서 이렇게 당황해본 적 없었다.
예상치 못한 기습적 질문에도 답은 했었다. 정확하게, 아니면 엉터리라도, 그것도 아니면 침묵으로라도! 침묵도 답이 될 수 있음을 나는 내가 질문을 던져보고 알았다.
내가 뭘 물었을 때 보여주던 상대의 ‘침묵’으로 나는 내 눈에 전자 현미경이 달린 건 아닌가 두려울 만큼 그의 대답을 읽을 수 있었다. 침묵은 묻는 질문에 대한 긍정이었다. ‘예쓰’보다 더 정확하고 정직한 ‘대답’이었다. 침묵은 그 의미의 반경이 넓은 듯했으나 가장 좁고, 따라서 가장 빠르며 정확한 대답이었다.
그렇다. 모든 질문엔 답이 있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침묵이든 답변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질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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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 할머니가 묻는다. 오늘만 해도 벌써 서른 번도 넘는다. 반복해서 일까? 섬망과 환청, 자아분열까지 겪고 있는 중증 치매인 문희 할머니가 토씨와 말의 속도, 느낌까지 일관되게 자꾸 묻고 있다.
“혹시... 우리 영감, 새 장가갔어?”
나는 대답을 할 수 없다. 침묵은 더더욱 할 수 없다. 이미 죽어 저 세상 사람이 된 사람을 무슨 말로 대답할 수 있는가. 중증 치매에다 척추 수술 후유증으로 허리 아래부터 쓰지를 못해 요양병원에 누워 있는 그 아내에게! 웃지도 울지도 그냥 있지도 못해 급한 일이 생각난 사람처럼 휙 돌아서 뛰어나온다.
문희 할머니 남편이 돌아가셨다! 입원 사흘 만에, 아내가 있는 병원 다른 입원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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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두 번 꼭 아내를 만나러 오시던 분이었다. 아침엔 요구르트 두 개, 저녁엔 우유 한 팩이 담긴 검정 비닐봉지가 지팡이를 짚은 반대 손에서 심하게 떨렸다. 빨아 입지 못한 것이 분명한 온갖 얼룩으로 구겨진 바지 속 두 다리는 나무젓가락만큼이나 가늘고 휘청거렸다.
할아버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병실까지, 그 짧은 거리도 두 번은 선 채로 숨을 몰아쉬며 쉬었다 들어가곤 하셨다. 얼굴은 뼈에다 검은 막 하나 겨우 덮어놓은 것처럼 말랐고 인사를 하시지만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삼십 년 넘게 당뇨를 앓고 계신 할아버지는 병원에 누워 있는 할머니보다 더 환자 같았다. 더 수척했고 더 불안했으며 그래서 보면 더 마음 아팠다.
“어르신, 힘드신데 이렇게 하루에 두 번씩이나 오시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가 할머니 안전하게 잘 모실게요.”
간호사들도, 간호조무사인 우리들도, 요양보호사들도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만류했지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야. 평생 쌀가게를 했어. 새벽에 집에서 나와 가게 문을 열고 밤 열 시에 문을 닫았지. 그때 우리 마누라 하루도 놓치지 않고 꼭 두 번씩 찬합에 밥해서 가게로 나 보러 왔어. 비올 때 쓰고 오던 비닐우산이 뒤집어져 철철 비를 맞으면서도 밥이 식을까 봐 두 손으로 찬합만 싸안고 오던 사람이었다 말이야. 마누라는 평생도 그랬는데 이깟 몇 년 내가 못 할까?”
그즈음 문희 할머니의 아들이 아버지께 입원을 권유했다. 최근에 할아버지의 혈당이 전혀 조절되지 않고 있는 데다 위태할 만큼 기력이 떨어져, 의사들이 할아버지가 먼저 가실 수도 있다고 조언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문희 할머니가 계신 바로 아래층 병동에 할아버지는 입원했다. 입원하던 날 아들이 할머니를 휠체어에 태워 할아버지가 계신 병실로 갔을 때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알아보지 못했다.
“이 놈의 마누라, 남편도 몰라보네. 이젠 내가 없어도 안 찾겠네. 할망구야, 다행이야. 정신 줄 놓아줘서 정말 다행이야.”
그것이 문희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할머니가 정신 줄 놓아줘서 정말, 다행이라는 말이 할아버지가 이승에서 한 마지막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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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만 사흘을 못 채우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아들이 문희 할머니를 보러 왔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르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아들의 쓸쓸한 눈이 붉어졌다.
“엄마, 아버지 몰라? 생각 안 나?”
말이라고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처럼 평소에 말이 없던 문희 할머니에게 아들이 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 몰라? 알지.”
할머니의 즉답에 아들이 놀라고 곁에 있던 우리들도 놀랐다.
“그런데 왜 안 오냐고 안 물어? 벌써 며칠 못 봤잖아?”
“......”
“아버지 좋은 데 갔어.”
“......”
“어디 갔는지 안 궁금해? 엄마 두고 혼자 갔는데?”
누워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는 문희 할머니가 오른손으로 왼손을 가만가만 주무르며 말이 없다. 또 생각이 어디로 떠돌고 있는 표정이다. 감았다 떴다를 반복하는 눈에 눈물이 고인다.
“아버지, 진짜 좋은 데 갔어. 엄마 이제 어쩔래? 아버지 다시는 안 오면.”
아들은 그렇게라도 정신이 흐린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아무리 흐린 정신이고 날개 꺾인 새처럼 누워 있는 어머니지만, 그래서 받아놓은 날짜처럼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어머니지만, 남편의 죽음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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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네 아버지 새 장가갔냐? 잘 갔다. 잘했어. 네 아버지 불쌍해 내가 여태 있는 거야. 이젠 내가 가도 되겠네. 네가 장가보냈니? 너도 네 아버지 불쌍해서?”
아들이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 울었다.
문희 할머니가 오늘도 묻는다.
“혹시... 우리 영감, 새 장가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