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8
사람 18
자꾸만 눈이 간다. 자꾸만 만져진다. 플라스틱 커피 잔에 담긴 세 그루의 키 작은 개운죽!
대나무처럼 보이는 줄기가 어느새 또 한 개의 마디를 늘였다. 그새 또 물은 절반이 줄었다. 물을 담으러 세면대 쪽으로 가는데 빛바랜 구석 하나도 없이 푸른 이파리들이 손등을 스친다. 습관이 된 말이 나온다. 그래, 습관이 됐다. 어느새!
“지호 씨, 잘 있죠? 거기... 지낼 만 하나요?”
윤지호 씨! 초등학교 앞에서 이십여 년 문방구를 했다는 쉰여덟의 남자, 수년간 심한 변비로 고생하다가 변볼 때 시작된 하혈이 한 달 이상 계속되어 동네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급하게 큰 병원으로 가라는 의사 권유로 대학병원 행. 거기서 또 대장 내시경과 여러 부수적인 검사로 대장암 판정. 이미 폐까지 전이. 미혼이며 보호자로는 역시 위암을 앓고 있는 남동생 하나.
쉰여덟! 나랑 동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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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있으면서 가장 마음이 아리고 그래서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게 되는 환자들이 있다. 나랑 비슷한 연배이거나 나보다 아래인 나이를 가진 아직은 늙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피붙이 하나 없거나 있더라도 형제자매 없는 외딸, 외아들을 가진 노인들, 즉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지호 씨는 나와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입원할 때부터 안타까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중병을 가졌으나 인지기능에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니어서 명료한 정신을 갖고 있었다.
명료한 정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내가 불에 덴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울었던 것은 돌아가실 때까지 어머니가 갖고 계셨던 ‘명료한 정신’때문이었다. 뇌출혈로 쓰러질 때 정신까지 놓아버렸다면 어쩌면 어머니가 덜 가여웠을 것이다.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지호 씨는 내게 어머니를 연상시켰다. 저 사람 지금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얼마나 억울할까? 그리고 얼마나 견뎌야 하는 시간이 막막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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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불편한 데 없어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침대 옆에 달아 놓은 콜벨 누르세요.”
타인의 연민도 환자들에겐 때론 독이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며 설명하는데 담담한 그의 대답이 결국 가슴에 또 하나의 울음 풍선을 만든다.
“괜찮아요. 선생님, 있잖아요. 이 나이까지 살았으면 더 살면 좋고 그만 살아도 아까울 것 없지 않아요? 선생님은 나보다 나이가 아래니까 아직 모르시겠죠? 나으면 좋고 죽게 된대도 그리 억울하지 않다 이 말이에요.”
내가 당신과 동갑이라고 말하려는데 그의 말이 이어졌다.
“발가벗은 몸으로 태어나 육십 년 가까이 먹고, 입고, 좋은 데 구경도 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했으면 됐지요. 그래서 항암이다 방사선이다 하는 치료를 거부하고 순리적으로 떠나려고 여기에 왔어요. 나 갈 때 혹시 입이 벌어지거나 눈을 뜨고 있으면 꼭 다물어주고 감겨 주세요. 위암 투병 중인 내 동생한테 험한 꼴 보여주기는 정말 싫네요.”
나는 아무 대답도 못한 채 누구에겐 지 분간이 안 되는 분노로 지호 씨를 노려보다가 병실을 나왔다. 병실을 나오는데 숨이 찼다. 눈물을 참으려고 숨을 몰아쉰 탓이었다.
‘뭐? 더 살면 좋고 그만 살아도 아까울 것 없다고? 나으면 좋고 죽게 된대도 그리 억울하지 않다고? 쉰여덟, 당신과 내 나이가 그런 나이라고? 그래서 치료도 거부하고 오는 죽음 맞으려고 요양병원으로 왔다고?’
병원만 아니고, 내가 병원 직원만 아니라면 아마 나는 그렇게 소리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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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까워서였다. 불쌍해서였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한다면 그의 생각과 오래 품고 있었던 내 생각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떠나시고 삼 년째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동안 죽음보다 무서웠던 건, 어느 날 갑자기 잃게 될지도 모르는 ‘정신’과 ‘몸’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잊은 채 짐승의 형상을 닮아가는 치매 환자들과, 하루아침에 수족처럼 부리던 몸이 마비되어 돌아눕는 것조차 스스로 못해 온몸이 웅덩이처럼 파여 썩는 욕창 환자들, 기저귀가 오물로 질퍽거려도 요양보호사들의 기저귀 케어 시간까지 속수무책 기다려야 하는 의식상실 환자들... 내게는 그런 요양병원 환자들이 죽은 사람들보다 더 불쌍했다. 더 끔찍했다.
그것이 자극이 되고 반성이 되어 열심히 운동하며 보약을 달고 사는 직원들 사이에서, 언제부턴가 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건강을 지켜서 저런 병에 걸리지 말아야지! 가 아니었다. 저런 병에 걸리기 전에 죽어야지! 분명 비난과 원성을 들을 생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그만큼 요양병원의 실상은 무서웠다. 공포는 당연하게 오는 감정이었다.
지호 씨는 조용한 환자였다. 그는 신음 한번 내지 않았다. 콜벨도 눌러본 적 없었다. 하루 세 번 정해진 시간에 독한 마약성 진통제인 패치를 붙여주며 바라보는 지호 씨의 얼굴은 신기할 만큼 평화로웠다.
“아프지 않아요?”
내가 묻는다.
“아프대요. 많이 아플 거라고 했어요.”
지호 씨가 대답한다.
“... 대요,... 했어요, 이런 거 말고 환자 분이 지금 어떤 지 묻는 거예요.”
거의 윽박지르듯이 내가 말한다.
“그러려니 해요. 이런 게 암이라니까요.”
한번 더 속을 뒤집는 지호 씨의 대답에 나는 또 병실을 화가 난 채로 나오고야 만다.
어느 날 위암 투병 중이라는 지호 씨의 동생이 왔다. 허리는 꼿꼿했지만 회색이 자욱한 동공은 이미 저 세상으로 건너가고 있는 사람의 것처럼 텅 비어 있었다. 동생은 형의 증세에 대해서 한 마디도 묻지 않았다. 대신 신문에 싼 개운죽 세 그루를 내밀었다.
“형 침대 옆에 놓아주세요. 잘 안 죽는대요. 물에만 담가놓으면 키도 쑥쑥 자란대요. 하루를 일 년처럼 그렇게 산대요. 우리처럼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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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레기통을 뒤져 마침 누가 마시고 버린 플라스틱 커피 용기를 찾아냈다. 그리고 깨끗이 씻어 물을 담은 뒤 개운죽을 꽂았다.
“예쁘죠? 동생이 형 보라고 사 왔네요.”
잘 안 죽는 식물이라고, 그러니 당신들도 힘내라는 말이 잠깐 입안에 머물렀지만, 나는 하지 못했다. 내가 저 형제들 입장이라면 누가 개운죽 하나 갖다 주면서 힘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까? 그 생각이 들자 정말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이틀 뒤 동생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지만 지호 씨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입원 팔 개월 만에 지호 씨도 떠났다. 간호부에서는 번갈아가며 개운죽 물을 갈아주고 있다.
오늘은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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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호 씨, 당신의 개운죽은 오늘도 잘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