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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an 17. 2019

바람둥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 여보! 정순아!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19

사람 19          

              

                바람둥이 할아버지의 마지막 말여보정순아!          



왜 저렇게들 부르나, 했다. 자식들은 물론 신대철 할아버지의 형제들도, 함께 온 할아버지 친구도 모두들 그렇게 불렀다.      


바람둥이 아버지, 바람둥이 형, 어이 바람둥이... 자꾸 들어서 듣는 대로 기억에 저장된 걸까? 조심을 한다고는 하지만 어느새 우리들도 우리끼리 말할 때는 ‘바람둥이 할아버지’로 신대철 어르신을 불렀다.      


치매 외에 특별한 병은 없었다. 팔십사 세, 정신이 흐린 데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낙상 위험이 크다는 게 입원 이유였다. 임종 때까지 지내게 할 거라고 큰 아들은 말했다.      


©픽사베이



“아마 한 십 년 여기서 지내시지 않을까요? 저희 바람둥이 아버지 다른 병은 없거든요.”     

할아버지의 딸이라는 여자가 너무도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403호 병실 창가 침대에는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눈빛의 신대철 할아버지가 멀뚱한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고 계셨다.      


“아니 평생을 그 수많은 여자와 바람을 폈는데 그래 단 며칠도 데리고 있어 줄 여자가 없어? 뭐한 거야? 네 아버지란 저 양반 말이다.”     

할아버지의 동생인 듯 보이는 남자가 403호 병실을 바라보더니 한숨과 함께 툭 던진 말이다.     


“선생님, 그냥 먹여 주고, 재워 주고, 침대에서 안 떨어지게 묶든지, 지킬 수 있으면 풀어놓든지, 암튼 저희들 더 이상 신경 쓰는 일만 없게 해 주세요. 집에서도 방문 고리에 손을 묶어놨었는데 어찌나 힘이 센지 방문 나사가 빠져 넘어지는 바람에 식구들 죄다 압사할 뻔했다니까요?”     

할아버지의 딸이 그때의 기억이 나는지 호들갑스러운 몸짓으로 진저리를 쳤다.     


“그렇게 바람을 피워댔으면 힘이 빠질 만도 한데, 우리 바람둥이 아버지는 고래 체력인가 봐.” 

아들이 또 거든다. 식구들의 말잔치에 한참을 차트만 보고 있던 간호사가 말을 끊을 의도로 큰 목소리로 물었다.      



©픽사베이


“할머니는 안 계세요? 주 보호자를 어느 분으로 해야 할지...”     


“엄마는... 여기 안 오세요. 그렇게 평생 여자 문제로 속을 썩였는데, 뭐 이쁘다고 병원 드나드시겠어요? 우리야 자식이고 형제니 어쩔 도리가 없지만요. 주 보호자는 저로 하세요. 얼마나 사실지 모르지만 병원비도 제 이름으로 입금될 거고요.”     


아들의 얼굴에 갑자기 그늘이 졌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신 자책 같지는 않았다. 짜증과 역겨움이 뒤섞인 미간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건 걱정의 그늘이 아니었다. 오래 살면 어쩌나 하는 부담과 지겨움을 그는 숨기지 못했다.     


“자식들이 십시일반 보태서 병원비를 내지만 송금인은 오빠 이름이 될 거예요. 오빠가 모아서 보낼 거니까요.”     

그런 자리에서도 부모의 병원비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공헌도를 짚고 넘어가는 딸,  보고 있는 마음이 서늘해지는데 아들의 볼 멘 소리가 들렸다.     


“야, 너 참 산수 잘한다. 여기 선생님들 들으면 네가 절반, 아니 그건 너무 과분하고, 자식이 세 명이니 한 삼분의 일쯤이라도 내는 줄 아시겠다? 야, 너 십만 원 내겠다고 했어. 뭐? 십시일반 보태서 병원비를 낸다고?”     


“오빠, 그건 아니지. 딸은 출가외인이야. 사실은 십만 원도 안 내도 되는 거 아냐? 그래도 이 서방이니까 바람둥이 아버지도 장인이라고 그거라도 군말 안 하고 주는 거지.”     


“어이, 바람둥이! 너 일찍 죽어야겠다. 이러다 네 자식들 너 때문에 서로 호적 판다고 하겠어. 멍청한 사람, 평생을 그따위로 살았으니 자식들한테 이런 거지만도 못한 대접받지. 네 자식 놈들 지금 하는 짓들 봐라. 호로상놈도 이러진 않을 거다. 에잇, 자업자득이지.”     


그때까지 한 마디도 안 하고 병실 문 앞에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신대철 할아버지를 바라보고만 있던 한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연민과 분노가 절절이 읽히는 목소리였다.     


“우리 바람둥이 아버지한테 아직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친구 분이세요. 오늘 기어코 따라오시겠다고 하셔서... 또 우리만 상놈에 죄인 되네요.”     


이런 풍경을 처음 본 건 아니었다.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다 약간의 언쟁이 오가는 것도 이미 보았다. 그러나 신대철 할아버지의 경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가 있었다.      


사람들이 돌아가고 병동은 한동안 적막에 쌓였다. 누군가의 한숨과 누군가의 혀 차는 소리가 이따금 들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여보, 정순아!”     


똑똑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신대철 할아버지 병실에서 나는 목소리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르르 403호 병실로 뛰어갔다.     


“어르신, 저희 부르셨어요?”

“여보, 여보! 여보... 정순아, 정순아...”     


“바람둥이라는데 여보가 누굴 부르는 건지 알 수가 있나?”
“정순이라는데? 조강지처 이름인가? 아니면?”

누군가의 말에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각자 흘러나왔다.     




신대철 할아버지는 병원에 들어와서 일 년을 사셨다.


열 배로 부풀려 고민하고 싸우던 자식들은 보기 좋게 한방 먹었다.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나는 죽은 이에게 승리의 화관을 씌워주고 싶었다. 어쩌면 나는 일 년 동안 할아버지를 응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든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었다. 나는 그 자식들에게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입원 때 온 자식들과 동생, 단 하나뿐이라는 친구 할아버지를 우리는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 임종을 하고 장례를 위해 영안실로 옮길 때도 그들은 병동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일층 원무과에서 계산을 하고 바로 장례식장 앰뷸런스만 불러놓고 떠났다고 했다.      


다음날 담당 의사로부터 신대철 할아버지 사망진단서 일곱 부를 받아 병동으로 들어오던 수간호사가 핼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픽사베이


“할머니였네. 신대철 할아버지가 일 년 동안 수천 번도 더 불렀던 ‘여보’가... 이정순, 여기 등본에 배우자라고 되어 있어요.”     


순간 입안에 뜨거운 침이 가득 고였다. 신대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여보, 여보... 정순아, 정순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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