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20
사람 20
그가 도착한 날, 우리의 모든 시선은 보호자로 따라온 한 여인에게로 집중됐다. 오십 대 후반쯤 됐을까?
“김귀희라고 합니다.”
그 여인은 자신의 이름을 한 자 한 자 정말, 성의를 다해 말했다. 환자에 대한 정보 외에 보호자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사실 병원 측으로서는 알 필요도 없는 일이어서 아무도 새겨듣지 않았다. 그런 분위기가 느껴졌을까? 그녀가 다시 말했다.
“저... 매일, 종일, 제가 병원에 있어도 될까요? 취침시간엔 돌아갈게요.”
이전 병원에서 보내온 기록지를 살펴보던 수간호사의 눈이 그녀를 향했다.
“환자와 관계가 어떻게 되시는지요?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받은 전 병원 기록지의 보호자 성함이 아니라서요.”
“보호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저 사람 옆에 있어야 합니다.”
©픽사베이
“무슨 말씀이신지... 여기는 병원이고 저흰 환자를 보호하고 주변을 통제할 의무가 있는 이곳의 직원들입니다. 보호자 동의 없이 ‘아무나’ 환자 곁에, 그것도 하루 종일, 머물게 할 수는 없어요. 죄송합니다.”
말투가 조리 있기로 유명한 수간호사였다. 그러나 수간호사는 자신이 말한 ‘아무나’에 마음이 걸리는지 김귀희 씨와 눈을 맞추지는 못했다. 대신 한 마디를 덧붙였다.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오시면 그렇게 하셔도 돼요. 사실 종일 계신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긴 합니다. 병원엔 나름 규칙이 있어서요. 하지만 보호자 동의를 받으시면 제가 병원 측에 허락을 얻어 드릴게요.”
그때 김귀희 씨의 눈에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는 냉기가 피어올랐다. 차갑고 섬뜩하며 단호한 기운이었다.
“보호자 동의요? 그런 거 받아올 수 없는데요? 아니, 보호자요? 그게 뭐지요? 도대체 어떤 사람을 보호자라고 합니까? 보호하는 사람이 보호자 아닌가요? 호적에 기재된, 그래요. 그 잘난 법적 인물들을 말하는 겁니까? 이것 보세요. 그런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인척이라고 부릅니다. 보호자는, 병원마다 지겹도록 따지고 묻는 보호자라는 그것은, 누가 뭐래도 저 사람에겐 접니다. ”
어쩔 수 없이 간호부 데스크 쪽으로 병동의 모든 시선이 몰렸다. 각자 업무를 하면서도 두 귀가 데스크 쪽으로 열리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 한 번씩 김귀희 씨를 훑었다.
“저기...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환자와 어떻게 되시는데요? 하루 종일 환자 곁에 있겠다고 하시려면 ‘관계’ 정도는 저희가 알아야 해요. 가족이나 친인척은 아니신 것 같은데 그럼 친구나 지인 되시나요?”
©픽사베이
“아닙니다. 저는 저 사람의 ‘애인’입니다. 왜, 안 되나요?"
나는 수간호사의 허락을 얻어 환자의 차트를 봤다. 차트를 펼치는 손이 떨렸다. 신비한 전설을 처음 읽게 되는 희열마저 느껴졌다. 왠지 모를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
강성규. 육십팔 세, 전립선 암, 방광과 척추까지 전이, 가족으로는 두 딸이 있으나 십오 년 전 이혼한 전처를 따라 뉴질랜드 거주, 주보호자는 큰 딸, 비상 연락은 전처. 그리고 열 개의 각기 다른 이름과 전화번호가 보호자란에 죽 나열돼 적혀 있었다. 특이사항은 그 아래 쓰여 있는 글이었다.
[강성규 환자에겐 위의 사람들만 방문, 간병, 보호가 가능합니다. 위 번호를 가진 사람 외에는 환자가 위급 상황이 온대도 불가합니다.]
“어쩌죠? 전 병원에 입원할 때부터 작성된 것 같은데... 우리가 오는 사람들 이름을 일일이 물어볼 수도 없고, 전화번호는 더더욱 어떻게 물어? 더구나 오늘 입원하는 날 따라온 저 여자분을 여기에 적히지 않은 사람이라 해서 어떻게 가라고 해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수간호사의 입가에 선한 미소가 흘렀다.
“병원에 이런 걸 해 달라는 사람들이 문제죠. 여기가 동네 파출소도 아니고 무슨 수로 접근 금지를 시켜요? 아니 보호자들이 참 이상한 사람이네. 자기들은 삼 개월밖에 남지 않은 사람 입원하는 날 코배기도 안 보이면서... 보호자라고 총 열세 사람이 적혀 있는데 환자 혼자 보내면 뭐 오다가 죽으란 말이야? 저 여자라도 같이 왔으니까 다행이지 않아요? 애인도 정도면 부인이나 자식보다 낫지. 당당하게 말하는 것 봐요. 자기가 강성규의 애인이라고요.”
입원 수속을 도와주러 3층에서 올라온 송 간호사가 숨도 안 쉬고 말을 하곤 내려갔다. 다시 어색한 정적이 흘렀다. 조마조마해진 마음으로 석션 카를 정리하는데 수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귀에 들리는 목소리만으로도 꽉 막혀 있던 숨이 터졌다. 수간호사의 목소리는 낮았고 다정했다.
“그렇게 하세요. 오셔서 계시고 싶은 만큼 강성규 환자 곁에 계시다 가세요. 단, 이건 저희로서도 힘든 결정입니다. 다른 환자들이나 면회 온 보호자들께 부담이나 불편은 주지 마시고요. 아, 개인 간병인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드물게 개인 간병인을 두는 환자도 있거든요. 병원 측엔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픽사베이
왜 내가 고마웠을까? 왜 내가 다행이다, 다행이다, 를 쉴 새 없이 말하며 가슴을 쓸어내렸을까? 사람의 진심을 본다는 것은 그래서 무서운 일이다. 사람의 사랑을 인정한다는 건 그래서 신비한 일이다.
강성규 씨는 예상했던 삼 개월보다 육 개월을 더 살고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애인’ 김귀희 씨가 보여준 구 개월 간의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사랑’이란 화두를 남겼다. 통통한 얼굴에 웃는 모습이 유난히 예뻤던 김귀희 씨는 어떤 부인, 어떤 가족보다도 귀한 ‘보호자’ 상을 남겼다.
강성규 씨가 임종하던 날, 김귀희 씨는 겨울인데도 시폰으로 된 하얀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언제든지 서든데스(돌발적인 죽음)가 가능하다는 담당의사의 말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성규 씨는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정신을 놓지 않았다. 우리는 그날 김귀희 씨의 울음을 처음으로 봤다. 구 개월 동안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울음이었다.
“예쁘다. 우리 귀희... 웨딩드레스 입은 것 같네?”
맥박이 사십 이하로 떨어지고 산소포화도가 육십 대에서 미동도 안 하던 상태에서 강성규 씨의 잦아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잘 아네요. 웨딩드레스,... 맞아요. 나 자기한테 시집가려고요.”
아마 또 내가 먼저 울었을 것이다. 수간호사한테 질책을 받을 것이 뻔했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김귀희 씨가 울고 있었다. 그녀의 시폰 원피스 가슴으로 비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나는 보았다.
“울지 마, 나... 당신 잠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니...”
©픽사베이
강성규 씨의 마지막 말이었다. 잠시 온 세상이 잠에 든 것처럼 조용했다.
나는 세상 떠나는 날, 그의 잠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누군가를 갖고 있는가... 내 잠 속에 들어와 살고 있는 누군가가 내겐 있는가... 가난해진 마음에 강성규, 김귀희 씨의 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서로에게 ‘애인’입니다! 애인, ‘사랑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