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21
사람 21
영교 할머니의 남편이 벌써 한 시간째 병동 간호 데스크 앞에서 짐승처럼 날뛰고 있다. 벗어진 이마 위로 땀에 젖은 몇 올의 머리카락이 내려와 있었다. 의자를 내려치느라 휘두른 지팡이가 손잡이가 부러진 채 406호 병실 문 앞에 던져져 있지만, 아무도 그걸 치울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여보시오. 여기가 병원이요? 사람 죽여 내보내는 인간 도살장이요? 집사람, 늙고 병든 소처럼 눈 멀겋게 뜨고 저렇게 누워 있어도 산 사람이오. 숨 쉬고 오줌 똥 싸는 산 사람이란 말이오. 하품도 하고 재채기도 합디다. 디엔알? 그 살인 동의서에 지금 뭘 하라고?"
분노와 황망함으로 덜덜 떨리는 할아버지의 목소리에선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늙은 남자의 뼈아픈 울음이 섞여 있었다.
“어르신, 어르신...”
그날 근무 양 간호사가 할아버지를 계속 불렀다. 그러나 벌써 한 시간째 다음 말을 못 잇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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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거라면 저 사람 몸을 반으로 갈라 통째로 기계를 집어넣어야 한다고 해도 나는 할 것이오. 머릿속 골을 다 쏟아내고 거죽만 꿰매 놓아야 한다고 해도 나는 고맙다고 할 것이오. 그런데, 뭐요? 저렇게 살아 있는 사람을, 저렇게 살아 있는 사람에게 뭘 하라고?”
가쁜 숨이 오르내리는 어깨가 심하게 떨리는가 싶더니 드디어 할아버지 목에서 뜨거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이 너무 당연해서 우리 중 누구도 할아버지를 다독이거나 위로하지 못했다.
“어르신, 이건 만일을 위한 가족의 의향을 묻는 제도예요. 지금처럼 영교 어르신이 안정 상태일 때는 전혀 필요 없어요. 하지만 나중에, 정말 나중에요, 영교 어르신처럼 중한 환자들은 사실 시간이 흐를수록 상태가 더 나빠진다는 것은 아시잖아요? 그때, 나아질 가능성은 전혀 없고 환자의 고통만 심해질 때, 그때 병원에서 억지로 인공호흡기나 다른 약물을 투여해서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을 하지 않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걸 여쭈는 거예요. 그런 걸 한다고 상태가 좋아지진 않아요. 생명이 연장된다고는 해도 환자에겐 치명적인 고통이거든요.”
울음이 터져서 말이 끊긴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양 간호사는 그의 손을 잡고 차근차근 차분하게 설명을 했다.
“의식 있는 환자들 중에는 본인이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많아요. 심폐소생술, 시피알(CPR)이라고 하는데요, 중병으로 마를 대로 마른 환자들이 그거 받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거나 다른 장기까지 상하는 경우도 많아요. 또 기도로 기계를 삽관해서 인공적으로 숨을 쉬게 하는 방법도 있는데, 환자가 의식이 없어서 그렇지 그 고통이 말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말씀드린 디엔알(DNR)은 오래 병환으로 고통받아온 환자에게 죽음 앞에서조차 더 이상의 고통은 주지 말아야겠다는 의도로 채택된 ‘연명의료법’ 상의 제도예요.”
“어떻게 설명해도, 어차피, 죽을 사람,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게, 두자, 이 말 아니오?”
울음은 잦아들었지만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강경했다. 노여움으로 단어와 단어 사이에 차가운 공백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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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죠. 충분히 보존치료와 생명 유지를 위한 모든 처치를 다 하다가 환자의 심장이나 호흡이 멈추는 어떤 상황이 오면, 그때 억지로 살아 있게 하려고 환자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지말자는 거죠. 환자를 위한 제도예요. 가족들이야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가 살아만 있어주길 바라는 게 당연하지만, 사실 환자들은 그걸 원하지 않아요. 충분히 아프고 고통받았는데 소생 가망이 전혀 없는 지경에 또다시 갈비뼈가 부러지고 목안으로 기계를 집어넣어 숨만 쉬게 해 주는 걸 바라는 사람, 아니 어르신이라면, 어르신이 여기 누워 계신 환자라면 어떠시겠어요?”
한참 동안 할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눈에선 가늘어진 눈물이 얼굴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르신, 이건 동의서예요. 동의하시고 거부하시고는 전적으로 어르신 의향이에요. 다만 이런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드려야 하는 저희 입장이라 말씀드린 거니 노여움 푸세요. 그리고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양 간호사는 부러진 채 뒹굴고 있는 지팡이를 집어 손잡이를 테이프로 여물게 감아 할아버지 손에 들려주었다.
“우리 아들은 이런 걸 압니까? 그놈은 뭐라 합디까? 아들도 길길이 날뛰었겠지요? 지 어머니라면 끔찍이 아끼는 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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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진정된 듯 보여 물이라도 드리려고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고 있던 내 귀에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뭔가 자신에게 동조하는 큰 세력을 갖고 있는 뿌듯함과 든든함, 그것을 힘없이 늙어버린 자신과 세월에 대한 일말의 보답이라 믿고 싶은 마음이 읽히는 목소리였다.
“네, 아드님은 동의하셨습니다. 하지만 최종 결정은 아버님이 하셔야 한다며 사인은 하지 않으셨어요. 미리 알고 계시더라고요. 저희에게 먼저 물으셔서 설명드렸습니다.”
“뭐라고요? 이미 동의를 했다? 그것도 지가 먼저 나서서?”
할아버지를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화내며 욕하고 의자를 던질 때도, 그냥 그럴 수 있다고만 느꼈다. 이미 수차례 봐 온 풍경의 반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들이 동의했다는 양 간호사의 대답을 들은 할아버지는 무너졌다. 그 마음의 무너짐이 너무도 확실하게 보여 내가 무너질 것 같았다.
“그거 주시오. 내 이름만 거기 적으면 우리 집사람 저 세상 편히 가게 해 준다며?”
김관식. 자신의 이름을 적던 할아버지가 중요한 무엇이 갑자기 생각난 듯 고개를 들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깨물었다가 침을 발랐다가 헛기침을 했다가 할아버지의 입술은 지금 중요한 말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만약에, 내가 저 지경이 되면 우리 아들이 해야 하는 거지? 이 사인이라는 거! 나 그런 부담 아들한테 주기 싫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오?”
“아, 그건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라는 게 있어요. 의향서를 본인이 직접 작성해서 국립 연명의료관리기관에 등록하면 되고요. 존엄사와 동일한 의미로 보시면 이해가 쉬우실 거예요. 후일에 혹시 자신에게 발생될지도 모르는 위급 상황에 자신의 연명치료 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해 해당 기관에 보관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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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변해도 너무 변했네. 인권 어쩌고 하며 시끄럽게들 떠들어대지만, 결국은 죽을 사람은 빨리 죽어라... 덜 아프게 해 줄 테니 그냥 가라... 그러면서도 존엄사니 뭐니 잔칫상처럼 번쩍하게 꾸며 대니 참... 하여튼 이제 알았으니 나는 그거 해야겠네. 꼴사나운 모습 덜 보이고 죽으려면...”
그날 나는 퇴근 후 인터넷에서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를 샅샅이 검색했다. 한숨도 못 잔 날이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다 맞다. 그렇게 사람의 시간은 냉정하다.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사람이든, 이미 받아놓은 밥상처럼 죽음이 발등에 와 있는 사람이든, 시간 앞에서는 누구나 이기주의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타성은 평온할 때만 일어나는 잠깐의 순간일 뿐이다. 고통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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