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했다. 반갑고 들뜨고 호흡 수가 늘어나며, 처져 있던 맥박 수도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놀이가 있다니! 이렇게 모든 걸 갖춰주고, 모든 걸 가능하게 해 주는 이런 놀이가 있다니!
괄호 안에 무엇을 넣든 다 내 것이 되는 놀이!
방송에서 오랜만에 만난 조수미에게 나는 환호했다. 최근에 그녀는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음반을 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식도 몰라보는 지금, 그래도 노래는 기억하는 것을 보고 정성을 다해 기획한 음반이라고 했다.
“아시다시피 제가 어머니 곁에 늘 있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딸이 옆에 있는 ‘셈 치고’ 늘 들으실 수 있도록 어머니 살아계실 때 어머니에게 제 목소리를 헌정하고 싶었어요. <사모곡> 이죠. 지금의 저를 만들어 준 어머니에게 딸이 바치는. 저는 그렇게 ‘셈 치는 놀이’를 하며 여기까지 많은 걸 버텨내고 이겨냈던 것 같아요.”
“셈 치는 놀이? 그게 뭐죠?”
그녀는 말했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에게 배운 익숙한 놀이였어요. 뭘 조를 때 그것이 엄마 형편으로 불가능하면 ‘얘, 그거 있는 셈 치면 안 되겠니?’, 어디 가고 싶다고 칭얼대면 ‘얘, 거기 가본 셈 치면 안 될까?’, 그런데 희한하죠? 정말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거 먹어본 것 같고, 거기 가본 것 같고, 그 장난감 갖고 있는 것 같고... 정말 그랬어요.”
이 상쾌하고도 통쾌한 반전의 충격은 뭐지? 갑자기, 정말, 그래. 갑자기였다. 난데없이 환하게 열리는 하늘을 처음 본 사람처럼 나는 있는 힘껏 눈을 부릅뜨고 TV 속 조수미를 바라보았다.
©픽사베이
어느덧 나는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를 ‘직접 만난 셈 치고’ 저 말을 듣고 있는 내 모습에 완전히 몰입되어 있었다. 그 느낌은 정확했다. 바로 앞에 그녀가 있는 것처럼 경청하는 내 자세가 그랬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반응하고 있는 내 몸짓이나 내 눈빛이 그랬다.
“서울대를 중퇴하고 성악의 본고장인 이태리로 어머니에게 떠밀려 유학을 갔어요. 그땐 정말 어머니를 증오했죠. 이 무섭고 낯선 타국으로 딸을 보내다니, 그것도 달랑 혼자! 그래서 어쩌면 더 독하게 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오 년 제인 음악원을 이 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동양인으로선 처음으로 오페라 주인공을 맡았죠. 지휘자는 물론이고 스텝 어느 누구도 저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의외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은 불신의 눈빛, 동양인 주제에 자기들 영역인 오페라 무대에 서게 된 저를 얕잡아보는 몸짓, 대단했죠.”
당시의 상황이 충분히 그려진 MC가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도 어머니가 정말 흐뭇해하셨겠어요. 딸이 음악의 본고장인 이태리에서 오페라 무대에 선 모습을 보시는 마음, 아, 진짜 얼마나 좋으셨을까요? 스물두 살 어린 딸을 그 먼 나라에 유학을 보내 놓고, 어머니가 참고 겪으셨을 많은 시간이 그렇게 큰 보람으로 돌아왔으니까요.”
조수미는 오른손을 들어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고개까지 저었다.
“딸이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는 게 소망이셨던 어머니는 저의 데뷔 무대를 볼 수 없었어요. 당시 그곳까지 오실 경제적 여력이 안 됐던 거죠. 저는 그때 정말 어머니가 필요했어요. 그렇게 미웠던 어머니가... 어머니의 사랑과 인내를 그제야 알게 된 거죠. 그런 어머니니 제일 앞자리에서 바라만 봐주셔도 얼마나 제게 힘이 됐겠어요? 그래서 그때, 또, ‘셈 치고 놀이’를 했죠. 그래, ‘엄마가 저기 저 자리에 있는 셈 치고’ 노래하자! 그랬더니 정말, 어머니가 거기 계신 거예요. 딸이 자랑스러운 눈빛으로 두 손을 모으고요.”
“정말, 그게 되던가요?”
“못 믿겠죠? 하지만 돼요. ‘셈 치고’는 마음을 바꾸는 것이니까요. 그것도 남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잠시 이동시키는 거니까, 내가 그렇게 믿으면 세상은 따라 움직여 주는 거예요. 여러분도 한번 해 보세요.”
부족할 것도, 그리울 것도, 후회도 이 한 마디면 다 채워졌다.
작년에 결혼해서 분가한 아들에 대한 그리움도 십 년 전처럼 ‘군대 보낸 셈 치면’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안정감을 주었고, 집에서 먼 분당에 아들 살림집을 내준 후, 가까이에 자식들을 두고 사는 친구들에 대한 부러운 속내도, 한동네에 살면 신경 쓰고 챙겨줄 것이 많아 ‘일부러 뚝 떼 보낸 셈 치면’ 허전함이나 속상함 같은 마음의 균열은 많은 부분 메워졌다.
어디 그뿐인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불에 덴 것 같은 그리움도 어머니가 ‘친정인 대구에 멀리 계신 셈 치면’ 억지이긴 하지만 참아졌고,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도 사람들이 못 알아봐서 그렇지 ‘이미 써가고 있는 셈 치면’ 불안은 반으로 줄어들었다. 형제가 없어 늘 바람막이 없는 벌판에 서 있는 것 같던 외로움도 ‘서로 타지에 살고 있는 셈 치면’ 견딜 만했다.
날이 흐리다. 미세먼지가 유령처럼 온 세상을 탁하게 감싸고 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마음이 가팔라져 살아내고 있는 시간이 우울과 회의에 잠식당할 때가 많다. 아무리 번화한 거리를 걸어도 인기척 없는 좁은 골목길을 홀로 걸어가는 것처럼 시야도 마음도 적막하다. 하지만 괜찮다.
‘셈 친다’는 것은 마음자리를 어디에 두냐는 것이다. 마음의 출구를 새로 내는 일이다. 꽉 막힌 벽만 보고 걷다가 그저 우향우나 좌향좌를 한번 했을 뿐인데, 그곳에 이미 커다랗게 나 있는 창을 발견하는 일이다.
©픽사베이
그렇게 살 것이다. 아직 젊은 셈 치고, 예쁜 셈 치고, 부모 형제 남편 자식 따뜻한 식솔로 보듬고 챙겨야 하는 시간 아직도 많이 남은 셈 치고, 살 것이다.
정말 그렇게 살 것이다. 거의 매일 걸려오는 아들과 며느리의 안부전화도 차 몰고 한 시간 거리의 분당이 아니라, 슬리퍼 끌고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옆 동네에서 오는 셈 치고, 외로움이나 헛헛함 같은 정신적 공터도 작가인 나에게 신이 준 덕목이요 자격인 셈 치고, 그렇게 나이 들수록 광활한 이 세상을 죄다 내 영토인 셈 치고, 지금 이 나이를 살아가면 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