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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un 05. 2019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뜨지 않았어요

     

무심코 들은 말에 온몸이 부드러운 잔디밭처럼 평온해진다. 기를 쓰고 세웠던 가시가 빠지고, 숨이 내쉬어지지 않아 부풀대로 부풀었던 심장도 말랑말랑 제 온도를 찾는다.      


평생을 조연으로만 연기해 온 어느 배우의 말이었다. 더욱이 지난 삼 년은 어느 방송에서도 불러주지 않아 등산과 산책으로 소일해 온 천 일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절망스럽지는 않았어요. 가장 넓은 길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뜨지 않았다. 가장 높은 산은 아직 올라보지 못했다. 가장 예쁜 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더니, 걸음걸음이 희망이더라고요.”   


  ©픽사베이        



나이가 들면, 든 만큼 지혜와 경험이 더 뚜렷한 무언가로, 확실한 답을 줄 거라고 믿어 왔었다. 그런데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지혜와 경험은 운신의 폭을 넓혀주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두렵고 더 막막했다. 경험하고 안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은 좁고 얕고 사소하게 하는지, 그래서 나는 내가 겪고 그래서 알아지는 것을 증오했다.       


그런데 오늘 육십이 훨씬 넘은 그 배우의 말을 들었다. ‘아직’ 이라니! 아직 가장 넓은 길은 나타나지 않았고, 아직 가장 빛나는 별은 뜨지 않았고, 아직 가장 높은 산은 올라보지 못했고, 아직 가장 예쁜 꽃은 피지 않았다니! 그래서 걸음걸음이 희망이라니!      


아직! 이 짧은 음절의 부사가 몰고 온 건 ‘희망’이었다. ‘기대’였다. 살아야 할 ‘이유’였고, 실아야 되는 ‘당위성’이었다.     


생이 끝나지 않는 한 우리에겐 ‘아직’이 있다. 백 수 노인이라 해도 그가 숨 쉬는 한, 그는 아직 못 본, 못 느껴본, 못 가져본, 희망과 기대와 이유와 그가 존재하는 당위성이 있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만 가지고 온 세상을 다 본 것처럼, 사람살이를 다 아는 것처럼, 살아간다. 서른 살이면 삼십 년 동안, 마흔 살이면 사십 년 동안, 경험하고 안 것을 전부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많아질수록 반대편 저울에 있는 꿈이나 소망의 무게를 자꾸 줄인다. 대신 거기에 두려움과 막막함이란 살을 붙여 마침표만 자꾸 크게 그린다.   


   



내가 그랬다. 그런데 오늘 선물처럼 ‘아직’이 왔다.      


아직!

아직 열두 시간이나 남아 있는 오늘은 2019년 5월 28일이다! 아직 일몰은 오지 않았고, 아직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붉은 노을을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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