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39
사람 39
아침부터 병동이 술렁거렸다. 퇴원 수속의 진행은 행정적인 면은 물론 그 사람이 있었던 시간과 공간을 치우는 일이다.
중환자 병동은 사망하지 않는 한 퇴원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일반 병동에선 드물게나마 퇴원하는 환자를 보는 일이 생겼다. 그러나 그건 완치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의미는 아니었다.
병원비를 감당 못한 가족들이 환자에게 장애 등급을 받게 해, 등급을 받게 되면 요양원으로 옮겨가는 게 일반적이었다.
요양원은 요양병원의 30프로도 채 안 되는 비용으로 환자를 모실 수 있다. 이미 어떤 치료도 무의미한 말기의 환자나, 노령의 환자를 둔 가족 입장에선 그 또한 최선의 자구책일 수도 있다는 거 모르지 않는다. 자식들이 여럿이고, 형편이 그리 열악하진 않다고 해도, 아무 효과도 기대할 수 없는 환자에게 매달 들어가는 병원비는 분명 녹녹한 것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요양원은 병원이 아니기 때문에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의료진이 없다. 간호조무사가 있을 뿐이다. 사회복지사와 함께 간호조무사는 요양원 설립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진의 감독 없이는 어떤 의료행위도 할 수 없는 간호조무사가 요양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요양병원과는 확연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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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이 있든 없든 환자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요양원으로 옮겨가는 현장은 볼 때마다 나는 가슴이 무너졌다. 이십사 시간 의료진의 보호를 받으며, 작든 크든 신체에 일어나는 모든 상황에 의료적 혜택을 받아오던 사람과의 마지막 인사가, 그래서 나는 힘들었다.
적게는 수개월부터 많게는 수년 동안 익숙해진 공간과 자신을 보살펴준 사람들의 손길을 떠날 수밖에 없는 환자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또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이 맡겨지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무감각한 눈빛으로 떠나가는 환자들.
중환자실에서 사망으로 병원을 떠나는 환자에게 했던 마지막 인사는 차라리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이제는 아프지 않으리라, 이제는 더 외롭지 않아도 되리라, 이제는 편히 쉬실 수 있으리라... 하는 생각이 위로로 따라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요양원으로 떠나가는 환자들과의 마지막 인사는 그 어떤 위로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공연한 미안함, 공연한 죄스러움, 결국 끝엔 알 수 없는 분노가 몇 날 며칠은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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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 재옥 어르신, 오늘 집으로 퇴원하세요. 딸네 집으로 모셔간대요.”
출근해서 인계 시간에 김 간호사로부터 들은 말이었다. 요양원이 아니고 딸네 집이라는 이동지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쓸어내려졌다.
며칠 전 방문했던 사위 얼굴이 떠올랐다. 할머니를 안아 휠체어에 태우고 병동을 왔다 갔다 하던 사위는 그때 내게 물었었다.
“우리 장모님, 여명 삼 개월이라고 판정받았는데 이렇게 지나간 걸 보면 어쩌면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실 수도 있겠죠?”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던 것 같다. 그가 말하고 있는 한 문장에서 유독 크게 두드러져 내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은 단어들이 아팠다.
여명, 삼 개월, 판정, 오래, 우리 곁에...
“못 견뎌하시는 것 같아요. 제 처와 다른 형제들은 여기 계신 다른 분들도 다 그렇다고들 하는데... 제가 보기에 우리 장모님은 특히 이 상황을 더 힘들어하시는 것 같아요.”
아들도 아니고 사위가 눈자위가 붉어지며 그렇게 깊은 한숨을 쉬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아프시기 전부터 늘 하신 말씀이 자꾸 기억나요. 우리 장모님, 그러셨거든요. 당신이 병들고 정신 줄 놔도 절대 요양시설 같은 데는 보내지 말아 달라고... 그러셨던 분인데 지금 다 표현을 못 하셔서 그렇지, 가족 하나 없이 이렇게 병원에 계신 게 얼마나 힘들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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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위가 모셔간다는 것이다.
맨 처음 든 생각은 구십 노령에 대장암 말기, 중증 치매를 앓고 있는 재옥 어르신 상태였다. 삼 개월 전 여명 삼 개월을 판정받고 편안한 임종을 위해 입원한 환자였다. 중증 치매였지만 가끔 정신이 돌아올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슬피 울던 할머니. 혈압 등 생체 사인은 언제라도 임종을 준비해야 할 만큼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어쨌든 진단 여명 삼 개월을 넘기고 있는 분. 하지만 오늘 밤에라도 떠날 수 있는 분.
요양병원에서 일하며 느낀 건, 환자가 정신이 있든 없든 한 달 정도면 자신이 있는 공간과 자신이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적응을 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싫든 좋든 환자들은 여기가 자신이 있어야 되는 곳이고,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들이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의탁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재옥 할머니는 석 달이 지났지만 그게 불가능한 분이었다. 따뜻한 성품에 교양도 있으셔서 모두가 좋아하는 분이었지만, 자신이 처해진 모든 상황에 안타까울 만큼 괴로워했다.
차라리 다른 치매 어르신들처럼 난폭한 행동을 하며 욕을 퍼붓거나, 울더라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모두를 질리게 했다면 어르신의 고통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가까이 귀를 바싹 대고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는 작은 목소리, 사연을 듣지 않아도 너무 잘 알 것 같은 숨죽인 울음, 내가 병실을 들고 날 때마다 잠시라도 할머니의 손이나 발가락을 두 손으로 감싸고 가만가만 만지곤 했던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공감과 위로의 표시였다.
그렇게라도 당신의 아픔과 외로움에 나도 아프고 외롭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내가 당신과 동행하고 있다는 것을 무언으로 느끼시게 해 드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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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재옥 할머니가 ‘퇴원’을 하신다고 한다. 요양원이 아니고 집으로!
재옥 할머니는 들것에 실려 병동을 나가면서도 사위 손을 놓지 않았다. 모두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가 인사를 하자 할머니가 웃었다. 아무 걱정 없는 맑은 웃음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데 사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이제 집에 가자. 응? 아유, 그렇게 좋아? 우리 엄마 오늘 많이 웃네? 이제 진짜 오래 살아줘야 해. 알았죠?”
잠깐이지만 병동엔 정적이 감돌았다. 정적을 깬 건 재옥 할머니 침상을 정리하고 나오던 요양보호사가 던진 한 마디였다.
“저런 사위도 있네요. 재옥 할머니 일 년이라도 더 사시면 좋겠어요. 뭘 아시는지 옷을 입혀 드리는데 얼마나 환하게 웃으시던지...”
그때 모두가 짜 맞춘 듯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말이 우리 모두의 입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