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0
사람 40
그 사람 앞에만 가면 온몸에 냉풍이 분다. 내 손에 피의 흐름이 끊긴 듯 그를 만지는 손끝에 아무런 느낌도 닿지 않는다. 정서적 교감이 불가능한 기계와 기계처럼 나는 차가운 눈빛과 마음으로 그에게 계획된 처치를 할 뿐이다. 돌아서 병실을 나올 때는 등을 뚫고 나오는 싸늘한 바람을 일부러 그 앞에 부려놓는 일이 갈수록 늘어난다.
김문환 씨. 육십오 세, 공기업에 입사해 승승장구했으나 이십 년 전 쉰도 되지 않은 마흔여섯에 뇌경색이 왔다. 왼쪽 다리와 팔에 편마비, 그러나 치매나 그 밖의 다른 질환은 동반되지 않은 사람. 따라서 몸만 불편하지 정신은 일반인과 동일한 사람, 십여 년을 집에서 요양하다가 아내가 척추관 협착증으로 몸이 불편해지자 가족회의 끝에 석 달 전 입원했다.
“정말, 저분 제발 좀 퇴원해 다른 병원에 갔으면 좋겠어요.”
기저귀 케어 시간에 그 병실에서 케어를 끝내고 나오는 요양보호사들이 오늘도 역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인상을 쓴다. 신기한 건 여기서부터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요양보호사들과 함께 간호부에 있던 간호사와 나도, 맞춘 듯이 같은 모양으로 고재를 젓고 같은 표정의 인상이 되는 것이다.
그만큼 김문환 씨는 이미 공공의 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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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치매 환자들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시도 때도 없이 울지도,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다. 집에 간다고 우격다짐으로 조르는 일도 없었다. 단식을 고집해 우리를 긴장시키지도 않았고, 가족들이 왔다가 돌아간 후 극심한 우울에 빠지지도 않았다. 환자로는 별로 손 갈 일 없는 무난한 환자라는 게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린 그가 싫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받는 모멸감이야말로 몸에 돋은 소름이 더 길고 더 넓게 뻗치게 한다는 걸, 우린 그로 인해 알았다.
그는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사람이었다. 자기 판단으로 사람에게 서열을 매기고 그 서열에 따라 자기가 무시할 사람, 호령할 사람, 하인 부리듯 지시할 사람을 구분하고 거기에 충실했다.
의사나 수간호사에게는 고분고분하고 예의와 경우를 차렸다. 담당 의사 회진 때나 수간호사의 수시 라운딩 때는 웃으며 반겼고 말투도 정중했다. 그러나 일반 간호사들과 간호조무사들을 비롯해 요양보호사들과 청소하러 매일 드나드는 요양부 여사님들에게는 경멸과 얕봄의 눈길과 말투를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어이, 너 이리 와봐.”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내가 잘못 들었나 하고 내 귀를 의심했다.
“어르신, 부르셨어요?”
옆 침대 환자에게 석션을 하던 중이라 나는 우선 대답했다. 그러나 그때 그가 나를 향해 던진 것이 분명한 베개가 석션을 하고 있던 내 앞으로 툭 떨어졌다.
“야, 부르면 사람을 봐야지. 이리 오란 말 안 들려?”
살이 떨린다는 게 아마 그런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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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치매 환자였다면, 그래서 사리분별을 기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오히려 그런 그의 말투에 연민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더 다정하게 더 따뜻하게 그를 바라보고 그를 만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몸만 불편할 뿐인 사람이었다. 머리는 전혀 이상 없는 정상적이고도 성숙한 인간의 입에서 나온 그런 저급한 언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정말 온몸의 털이란 털은 다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나는 겨우 석션을 끝내고 벌벌 떨리는 가슴으로 그 앞에 갔다.
“어르신, 석션 중이라 그랬어요. 왜요? 어디 불편하세요?”
“핸드폰 충전 좀 시켜. 그리고, 머리에 뭐가 난 것 같으니 연고 좀 발라. 발이 시리니 이불 하나 더 갖다 덮어주고. 부르면 재깍재깍 와야지.”
“죄송합니다. 도중에 석션을 멈출 수 없어서 지체됐네요.”
그때였다. 그의 인간성에 쐐기를 박는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죽거리는 웃음이 깔려 있는 질펀한 말이었다.
“야, 사람 봐가며 일의 순서를 정해야지. 저런 정신도 없는 늙은이 가래 뽑는 게 중하냐, 정신 멀쩡한 내가 부르는 게 급하냐? 그것도 판단 못해? 그런 판단을 먼저 배웠어야지. 조무사라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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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을 나오는 내 표정이 불안했는지 마침 기저귀 케어를 끝낸 요양보호사 미순 씨가 다가왔다.
“샘, 그래도 샘에겐 욕은 안 했죠? 우리는 기저귀 갈 때마다 절말 똥 싼 기저귀로 얼굴을 덮어버리고 싶다니까요? 야, 자, 해가며 여기 닦아라, 저기 닦아라, 귀 처먹었냐, 너네는 이런 일 해 주고 돈 버는 것들 아니냐, 휴... 말로 다 못해요. 정신도 멀쩡한 양반이 입이 왜 저렇게 더러운지 모르겠어요. 저분은 우리를 병원 직원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기 치다꺼리를 해 주는 시녀나 노예로 알아요.”
나이 칠십 여섯, 요양보호사 중에서 최고령인 미순 보호사가 정수기에서 냉수를 거푸 들이켜더니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숨을 몰아쉰다.
“아니, 보면 모르나? 자기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반말은 기본이고, 자기 맘에 조금만 안 들면 야, 자, 하며 애들한테도 못할 있는 신경질 없는 신경질을 자기 분 풀릴 때까지 부려대니, 요양보호사 생활 오래 했지만 정신도 멀쩡한 사람이 저러는 건 첨 봤다니까요?”
그때 같이 근무를 하던 이 간호사가 안쓰러운 눈빛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쉬며 거들었다.
“머리는 정상이라도 수족을 못 쓰니 마음에 병이 들어 그러려니 하지만, 진짜 화가 나요. 나이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어떻게 아무한테나 저런 반말이 예사인지 모르겠어요. 요양병원은 자기 시중 들어주는 곳이고, 여기 있는 우리들은 자기 수족처럼 부려도 되는 사람들인 줄 아니까, 저런 사람을 무슨 수로 당하겠어요? 야, 간호원 하며 부를 때는 정말 그만두고 싶어요. 간호원이 간호사로 명칭 바뀐 지가 언젠데, 아니 다 좋아요. 사람한테 야가 뭐예요? 개돼지도 그렇게는 안 부르지 않나요?”
미순 요양보호사의 대꾸가 즉각 이어졌다.
“기가 막히는 건 어제 왔다 간 저 사람 부인이 갈 때 우리들한테 한 말이에요. 자기 남편이 여기 와서 많이 외로워한대나? 그러니 좀 친절하게 대해달라고 하더라니까요? 예의 바르고 정 많은 사람이라 우리들의 일거수일투족에도 상처 받을 거라며.”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이 간호사가 대꾸했다.
“진짜 가족이 제일 모른다는 말이 맞아요. 듣기조차 내가 다 부끄럽네요.”
사람들의 말을 듣는 내내 내 머릿속엔 어떤 문장의 말만 계속 떠돌고 있었다.
김문환 씨, 당신이 차라리 정신 줄 놓은 치매 환자였으면 좋겠다... 정신이 아파서 그러는 거라고, 당신 본심이 아니고 병이 그렇게 만든 것이라고 믿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런 모멸감에서 우선 내가 빠져나갔으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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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많이 외로워한다는 김문환 씨 부인의 말에, 동조는커녕 연민 한 가닥도 느끼는 사람이 없는 현실이 그저 안타까운 날이었다.
자신을 가두는 외로움의 벽은 남이 쌓는 게 아니라, 오로지 자신이 쌓은 것이란 걸, 내가 나에게 거듭 말했던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