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1
사람 41
엘리베이터 앞, 시간이 지체되는 것에 조급증이 인다. 구 층에서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는 각 층마다 멈췄고, 당연히 꽤 긴 시간이 공중에서 흐르고 있다. 일 층 검사실에 환자들에게서 채취한 혈액과 소변 등을 내리고 다시 병동으로 올라가기 위해 기다리던 중이었다. 같이 근무에 들어온 간호사 혼자 병동에서 동동거리며 나를 찾지 않을까 자꾸 계단을 돌아보게 한다.
걸어서 올라갈까? 그런데... 힘이 없다. 아니 우선 아프다. 오늘만 해도 벌써 일곱 차례나 약국으로 검사실로 물품 창고로 육 층부터 지하 일 층까지 가볍고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내렸다. 근무에 들어온 지 아직 반도 안 지났는데 다리며 허리, 양 쪽 어깨가 모든 균형과 안정감에서 벗어나 있다.
이런 체력으로 뭘 하겠다고... 내 몸에서 질러대는 통증의 소리에도 자꾸 귀 막고 모른 체하면서, 지척에 둔 죽음을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의 마음을 어떻게 받아 적겠다고... 자조 섞인 한숨이 계단으로 돌린 얼굴을 엘리베이터 신호 앞으로 돌리게 한다.
©픽사베이
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그런데, 훅! 하고 번져오는 슬픔이 먼저 내린다. 울고 있는 사람들이 옷걸이에 걸린 옷처럼 출렁거리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서 있다. 내가 근무하는 병동 명숙 어르신의 딸들이 나를 보자 피붙이를 만난 듯 나를 끌어안는다. 울음소리가 커진다. 그 소리에 함께 있던 다른 병동을 다녀가는 보호자들도 눈치 보지 않고 흐느끼며 내린다. 이제 곧 다시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올라갈 텐데, 나는 저걸 타야 하는데... 죄인처럼 고개를 떨군 채 울고 있는 사람 곁을 떠나오기가 나로선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울 수 있으니까, 엄마 앞에서 꾹꾹 참았던 울음이 엘리베이터만 타면 누가 등짝을 후려치는 것처럼 쏟아져요. 우리 엄마, 이젠 딸도 모르잖아요. 수박을 잘라 드리니까 고맙다며 받더니 옆 침대 할머니에게 당신은 이런 딸들이 있어서 좋겠다 하시는 거예요.”
명숙 할머니는 칠십 중반이지만 심한 치매로 가족은 물론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었다. 어디에 살았는지, 누구랑 살았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사물 이름도 모르고, 어디에 쓰이는 물건인지도 모른다. 양치를 시켜 드리면 양칫물을 뱉는 것도 잊어버려 삼키기 일쑤고, 로션을 발라드리면 손톱으로 긁어먹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렇게 모든 걸 잊었으니 딸들이 와도 남 보듯 먼 시선으로만 흘깃거리다 딸들이 안으면 이것들이 날 죽이려 한다며 소리소리 지른다.
그 딸들이 울고 있다.
나는 다시 계단을 노려본다.
©픽사베이
후들거리는 다리로 계단을 올라야 하는 내 ‘지금’이 여기 이 사람들 마음보다 아플까? 체력이 달려 헉헉거리는 내 숨소리가 이 사람들 울음보다 가파를까?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실 때 나도 저랬다는 기억이 어머니 3주기를 앞둔 요즘 더 명료하게 떠오른다. 담당 의사를 보면 하느님을 만난 것 같았고 병동 간호사들을 보면 피붙이처럼 건너가는 마음에 늘 울음을 달고 다녔다.
무엇보다도 저 사람들은 내 마음을 알리라... 내가 얼마나 불안하고, 외로우며, 시간 시간 애끓고 있는지, 어머니 계신 병원의 의사와 간호부, 요양부, 청소하시는 위생부 여사님들까지 병원 식구들은 알아주리라...
그때 나는 무심코 가슴을 벌리며 솟구치던 ‘식구’라는 단어를 두 손에 받아 들고 울었다. 어머니한테 갔다가 돌아가던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식구!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형제 없는 무남독녀 처치이니 친정 식구는 아예 내겐 없다 쳐도, 그래도 피가 흐르는 사촌이나 친척들이 있는데 그들에게는 써보지도, 쓸 생각조차도 못했던 단어! 그 식구라는 말을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들에게 쓰고 있었다.
그것이 단초가 되었을까? 어느 날 나는 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지 않고 근처에 보이던 간호학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간호조무사로서의 변신과 여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식구가 되어주자. 저들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병들고 늙은 부모를 죽음으로 가는 정거장에 모셔다 놓은 저들에게, 저들이 나도 ‘식구’라고 느끼고 기댈 수 있는 그런 시간을 살아보자...
©픽사베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또 울지 마요. 올 때 생글거리며 엄마한테 왔듯이 갈 때도 웃으며 가요. 우리들이 있잖아요. 철통방어로 어머니 지키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요. 어르신 다 알아요. 우리 딸 또 울며 갔지요? 하고 맨날 물으세요.”
어머니 병원 간호사가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문이 열리면 어깨를 힘주어 잡으며 늘 했던 말이다. 철통방어... 나 아닌 누군가가 내 어머니를 그렇게 지켜주고, 함께 있다는 것이 그때 내겐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같았다.
바라보는 시선만으로도 슬퍼하는 사람들에겐 백년지기 같은 정이 느껴지는 법이다. 슬픔의 두께를 덜어낼 이유가 찾아지는 것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의 따뜻함 때문이다. 바라보고만 서 있는데도 명숙 어르신의 딸들의 숨소리가 잦아지며 핼쑥한 얼굴이 들어 올려진다.
또 한 차례 엘리베이터가 왔다가 올라간다. 계단을 뛰어오르는데 허리부터 찌릿찌릿하더니 이제 내가 울음이 차오른다. 죽음밖에 기다릴 것이 없는 어머니 아버지를 보고 돌아가는 길, 그 무거운 발걸음과 그 무서움을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구나...
더 오래, 더 반짝이게 닦아, 내 남은 생의 거울로 세워 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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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층, 삼층, 사층, 오층 엘리베이터 앞에 세상의 딸들과 아들들이 그들의 울음 방을 기다리며, 이미 젖은 눈으로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