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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ul 21. 2019

곡기穀氣를 끊어야 내가 죽을 수 있잖아

그 정거장엔 배차 시간표가 없다- 사람 42

사람 42     

                  곡기穀氣를 끊어야 내가 죽을 수 있잖아     


벌써 며칠 째인지 모른다. 식사 시간마다 505호 병실에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연순 할머니가 계신 병실이다. 직장암 수술 후 급성기 병원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끝내고 요양을 위해 입원하신 분, 사실은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연순 할머니의 배엔 대변을 받아내는 장루腸瘻가 달려 있다.     


“안 먹어. 안 먹겠다잖아?”

“그래도 이렇게 굶기만 하시면 어떡해요? 이것 봐요. 벌써 며칠 째 이 주머니에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안 먹는다고. 안 먹어야 아무것도 여기로 안 나올 것 아닌가?”      


장루는 대장암이나 직장암 등의 수술 후 대변의 배출을 위해 복벽에 장의 일부를 노출시킨 것을 말한다. 모든 속살이 그렇듯 아주 부드럽고 빨간 색깔이며 크기는 사람에 따라 성인 엄지손가락 반만 한 것에서부터 그보다 작은 것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장루엔 대변을 받아내는 장루 주머니를 접착시켜 걸어놓는다. 정해진 기간마다 장루 주머니를 교체해야 함은 물론이다. 특수 비닐이라고는 하지만 변의 무게나 몸의 움직임에 따라 터질 수도 있고, 접착 부위에 따라 일부가 떨어져 안의 내용물이 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장루는 대변이 나오는 곳이고, 장루 주머니는 대변을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위생과 냄새에 대한 우려가 크다.      


©픽사베이


사 개월 전에 입원하신 연순 할머니는 장루 주머니에서 대변을 비워내는 일은 꼭 당신 자신이 하셨다. 일주일에 한 번 주머니 교체는 어쩔 수 없이 간호부에 맡겼지만, 매일 나온 대변을 비워내는 일만큼은 섬뜩할 만큼 엄격했다.      


대변이 차면 휠체어를 태워 화장실로 데려다 달라고 콜벨을 눌렀고, 요양보호사가 태워 드리면 내쫓듯 나가라고 밀쳐냈다. 낙상 위험이 큰 분을 혼자 둔다는 건 요양병원 직원 규칙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다. 절대 그래선 안 된다. 화장실 문밖에서 몰래 기다리는 요양보호사는 혹시 자신의 기척이 할머니에게 느껴질까 봐 숨도 크게 못 쉬고 기다려야 했다.      


평소엔 교양 있고 따뜻한 성품으로 직원들의 사랑을 받는 분이지만, 장루와 관계되는 처치를 해야 할 때면 그동안 경험한 어떤 환자보다도 날카롭고 예민해져 우리는 늘 긴장해야 했다. 눈빛도 경계의 철벽을 두른 것처럼 무서웠고, 말소리도 한 마디 한 마디가 죽창을 들고 달려드는 것 이상으로 공포스러웠다.      


연순 할머니의 장루 주머니를 교체하는 날이면 나는 출근 전부터 긴장이 되었다. 먼저 할머니가 느낄 수치와 자존의 상처가 이해되기 때문이었다. 아니, 이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그건 저절로 알아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체득되어온 본능이라는 게 옳다. 남의 마음이 내 마음으로 일 프로의 오차도 없이 전달되고 전이되는 아픈 시간을 또 겪어야 한다는 게 나로선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또 한 가지, 대변과 함께 가스로 터질 듯 팽팽하게 부푼 주머니를 떼어낼 때 정말 참기 힘든 냄새도 내겐 두려움이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간호에 대한 본분을 줄줄이 외우며 내가 할 일이라는 당위성을 상기시켜도, 일반적인 대변 냄새와는 확연히 다른 그것은 내 숨을 막았다. 그래서 매번 거의 숨을 쉬지 않은 상태로 하곤 나와서, 억지로 막아놓은 숨을 토해내느라 가슴을 주먹으로 친 적도 많았다.      



그러고 나면 나는 내가 싫었다. 내가 나에게 환멸을 느끼는 시간에 빠져야 했다. 가증스러웠고 위선자 같았고 나쁜 사람 같았다. 차라리 찡그리거나 싫은 어떤 표현이라도 했다면 그렇게까지 나 자신이 싫진 않았을 것이다.  

 

©픽사베이


나는 연순 할머니가 그 순간을 민망해하고 수치를 느낄까 봐, 그래서 그런 생각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 어느 때보다도 쉴 새 없이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주로 대답을 요구하는 말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냥 듣기만 해도 되는 말은 할머니가 대답을 안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고마워요. 냄새도 고약하고 보기에도 흉물스러울 텐데 내색 하나 하지 않고... 수고했어.”     


장루 주머니 교체가 끝나고 나오려는 내게 연순 할머니는 늘 말씀하셨다.      


“어르신, 그렇지 않아요. 우린 뭐 변 안 보나요? 변 냄새는 다 똑같아요. 그리고 어르신이 워낙 관리를 잘하셔서 수월해요.”     


내가 늘 했던 대답이다. 그러고 나서 병실을 나오면 나는 어느 때보다도 손은 물론 팔뚝까지 살이 벌겋게 될 만큼 씻었고, 물 묻은 손으로 숨이 토해지지 않는 가슴을 두드려댔다.      


나는 간호 일을 할 자격이 없다... 나에 대한 회의와 자책은 간호조무사 근무 삼 년 동안 이미 수차례 찾아오고 경험한 것이지만, 젖 먹던 힘까지 다 모아 결정한 일이기에 그 어느 것보다도 내겐 무력감을 가져다줬다. 순서처럼 퇴근 후 집에 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석상처럼 소파에 앉아 있는 날이 쌓여갔다.     


©픽사베이



그런 연순 할머니가 벌써 며칠 째 식사를 거부하고 계신 것이다. 간호사가 달려갔고 나도 달려갔다. 할머니는 아예 이불로 머리부터 온 몸을 싸매고 계셨다. 요양보호사 이 여사님이 이불을 걷어내려고 이리저리 손을 대자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연순 할머니는 안으로 더 이불을 잡아끌어 솜으로 만든 작은 공처럼 자신을 말았다.      


“어르신, 이렇게 식사를 거부하시면 콧줄 하셔야 돼요. 많이 보시잖아요? 콧줄 하신 분들. 그렇게 하실 거예요?”     

김 간호사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절대 콧줄은 안 할 거야. 그건 이미 내 자식들한테도 말해 놓은 거니 그거 할 생각은 말아.”     


작은 공 모양이 된 할머니가 이불 안에서 소리쳤다.     


“그건 소용없어요. 여긴 병원이고 콧줄을 하고 안 하고는 담당 의사의 소견이 우선이에요. 자녀분들도 이렇게 어머니가 굶어 돌아가시게 하곤 싶지 않을 거예요. 어르신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도 이렇게 생짜로 굶으면 며칠 못 버텨요.”     


간호사도 작심한 듯 지지 않고 또 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연순 할머니의 울음과 함께 한껏 풀이 꺾인 목소리가 들렸다. 눈물이 터진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할머니의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상대의 말이 다 나오기도 전에, 그 말의 뜻이 먼저 전달되는 순간을 경험했다.      


©픽사베이


“곡기를 끊어야 내가 죽을 수 있잖아. 곡기를 끊고 죽어야 이 더러운 주머니 안 찰 수 있잖아. 병원에 데려다 놨으니 자결도 할 수 없고 죽으려면 이 길밖에 없잖아. 똥주머니 차고 있는 거 자식 앞이라도 싫어. 더럽다고. 그래서 죽겠다는데, 그래서 곡기를 끊겠다는데 왜 다들...”     


이불을 들춰내려던 요양보호사 이 여사가 ‘아이고, 어르신’하며 엎어지듯 할머니를 안았다. 김 간호사도 얼굴을 감쌌다. 마침표를 찍는 느낌의 할머니 남은 말이 들려왔다.     


“곡기를 끊어야... 내가... 죽을 수 있잖아.”     




유병장수시대! 

하루 종일 입 안엔 쓴 물이 솟았다. 그날 이후 머리에 깊이 들어와 앉아 있는 단어,  곡기!     


고백한다. 들어보시라. 어쩌면 말도 안 된다고 당신은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의 내밀한 진심인가.     


나는 그렇다.

곡기라는 말을 듣는 그 순간, 터지는 울음 속에서도 든든한 보루 하나 꿰차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 저주스러운 유병장수 시대에 살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말이다.     



사흘 뒤 연순 할머니는 아들과 딸이 지켜보는 가운데 콧줄을 했다. 그리고 콧줄을 매달고 오늘도 혼자서 장루 주머니를 비우고 있다.      


내일은 장루 주머니를 교체해야 하는 날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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