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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Aug 03. 2019

오작교의 마지막 1밀리미터는 어머니가 메워주셨네

       


어머니 3주기가 다가온다. 음력 7월 4일, 올해 양력으론 8월 4일 일요일이다. 6일이 내 생일이니 꼭 이틀 전이다. 


©픽사베이     


어머니는 내 생일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그러나 기일은 살아있었던 날로 하기 때문에 이틀 전 7월 4일이 기일이다. 6일 새벽 다섯 시 십오 분에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가 전날인 5일 오후 네 시 사십 분에 돌아가셨으니, 나는 태어난 지 오십육 년을 열세 시간 남겨놓고 어머니를 잃었다. 아니 어머니가 나를 낳은 지 오십육 년을 열세 시간 남겨놓고 딸을 떠나갔다.         

    

나는 음력 7월 6일에 태어났다. 견우직녀가 일 년에 한 번 오작교 다리를 건너 만나는 칠월칠석 하루 전날이다. 견우직녀를 위해 세상의 까마귀들이 모두 하늘로 올라가 머리를 맞대 이쪽 하늘과 저쪽 하늘을 잇는 다리를 만드는 날, 일 년의 그리움이 꽉 차게 부풀고 일 년치의 인내가 만남의 기쁨으로 승화하는 날, 칠월칠석에는 세상에 까마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전설은 그래서 만들어졌다.      


“선한 인연이 오랜 시간 너를 향해 걸어와 바로 네 앞에 있는 날이야. 하루만 자고 나면 가장 행복하고 기쁜 날이야. 세상의 까마귀들이 머리가 벗겨지는 고통을 참으며 너를 위해 다리를 만든 날이야. 그래서 너는 언제나 기다리고 소망하는 모든 것들을 반드시 만나게 될 거야. 하늘을 나는 새들이 모두 함께 날아올라 너의 기도가 걸어오는 다리를 만들어주고 있으니까. 너는 행복한 직녀야.”     


어릴 때부터 줄줄 외울 정도로 어머니가 해 주신 말이다. 견우와 직녀, 오작교, 까마귀는 그래서 알게 됐다. 몇 살 때였는지도 모르겠다. 단어보다는 뜻을 먼저 알게 된 후 나는 내 생일이 참 좋았다.      


일 년을 참다가 바로 내일이면 견우를 만나는 날, 견우는 나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변형되었다. 모두가 그때의 간절함이었고, 당시 가장 절실했던 기도였다. 그리고 나는 믿었다. 생일만 지나면 갖게 되리라, 생일만 지나면 보게 되리라, 생일만 지나면 좋은 일이 생기리라... 그렇게 내 생일은 축제의 전야제처럼 설레고 부풀고 들떴다.      

    

©픽사베이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살아온 시간이 늘어나고 오작교에 대한 설렘과 견우직녀의 사랑에도 무감각해지면서 생일도 내겐 그냥 ‘하루’가 되어 갔다. 지나칠 수 있으면 서너 해쯤은 그냥 지나치고 싶어 진지도 오래됐다. 하루는 그대로인데 일주일은 하루만큼이나 짧고, 또 한 달은 일주일만큼 짧아져, 일 년이 한 달처럼 짧게 왔다가는 지금,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태어난 날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작교도 견우직녀도 그들의 사랑도 세상의 까마귀들도 나는 자연스럽게 잊어갔다.      


그런데, 어머니가 내 생일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그렇게 내 생일에 칠월칠석의 신화로 의미를 더해주고 희망을 갖게 해 주셨던 어머니가 말이다.      


엄마가, 어떻게 내 생일 하루 전날 죽어? 생일만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거라며? 까마귀들이 나를 위해 하늘에 다리를 만들어 준 날이라고 가르쳐 준 엄마가, 행복한 직녀라고 나를 불렀던 엄마가, 어떻게 딸 생일 하루 전날 이렇게 갈 수 있어?      


숨이 끊어져 미동도 없는 어머니를 껴안고 참 많이 울었다. 십육 년을 병석에 계시면서 내 생일이면 ‘엄마가 아파서 미안해. 하나밖에 없는 우리 딸 생일인데 엄마가 미역국도 못 끓여주네.’를 하루 종일 말씀하시던 어머니, ‘그래도 생일 지나면 곧 좋은 날이 올 거야. 새들도 너를 위해 다리를 놓고 있어.’라며 환하게 웃어주시던 어머니였다.         


©픽사베이     


어머니 가신 후 기일 상차림의 남은 찬으로 생일 밥을 먹은 날, 지금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나... 나는 상을 차리면서도 기가 막혀 몇 번이고 냉장고 앞에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내 앞의 밥을 다 먹었다. 나물과 고기를 비롯해 조기와 크고 튼실한 과일이 어머니가 차려주신 생일 상 같아서였다. 미역국도 못 끓여준다고 미안해하셨던 어머니가 자신에게 받쳐진 상이라도 딸에게 물리고 싶어 그렇게 떠나셨나 하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였다.      


그래서일까? 어머니 가시고 삼 년이 다가오는 이 즈음, 나는 그동안 소원해졌던 견우직녀와 오작교, 까마귀를 다시 만나고 있다. ‘생일이 지나면, 좋은 날이 올 거야. 선한 인연이 올 거고 바라던 게 이루어질 거야. 하늘의 새들도 너를 위해 다리를 놓고 있어.’라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다시 듣는다.      


그렇게 하시려고 어머니는 내 생일 하루 전날 하늘로 가셨는가. 오작교의 마지막 1 밀리미터를 어머니의 몸으로 메우시려고, 그렇게 더 튼튼한 다리를 딸이 건너게 하시려고, 가셨는가...         

©픽사베이     


올해 칠월칠석엔 진짜로 행복한 직녀가 되어 오작교를 걸어볼 것이다. 그 마지막 1 밀리미터가 되어 온몸이 벗겨지면서도 튼튼한 다리를 놓아준 어머니를 안아볼 것이다.      


그리고 말하리라. 소망과 기도가 어머니가 메워준 1 밀리미터로 드디어 내게 왔다고... 어머니의 딸은 어머니로 하여 평생이 행복한 직녀였다고...     


일 년 중 내가 가장 조용해지는 어머니 기일 즈음, 새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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