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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Nov 07. 2019

The Terminal


어머니가 떠나자 모든 것이 빨라졌다. 2016년 8월, 여름 한복판에서 어머니를 잃은 나는 가을도 빨리 맞았고, 나이도 빨리 먹었다. 눈 뜨고 보면 가을이었고 고개를 돌려보면 남들이 새해라고 말했다.     

그렇게 3년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내 앞엔 내 신간 [이별과 이별할 때]가 놓여 있다. 이영철 화백의 작품 <사랑 소풍- 나 잡아보이소!>를 표지로 한 이 책에는 ‘간호조무사가 된 시인이 1246일 동안 기록한 생의 마지막 풍경’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출간 소식이 전해지자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출렁거렸던 문단 동료들의 놀란 반응은 부제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작이라고 할 순 없지만 등단 후 꾸준히 글을 써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며 시 창작 강의를 나가고 있던 사람이 간호조무사라니!      


그러나 어머니가 16년간 병중에 계시다 요양병원에서 돌아가신 걸 아는 <내일의 시> 동인들은 달랐다. 그들은 놀라지도 않았고, 왜냐고 묻지도 않았다. 의례적인 축하나 따끈따끈한 책의 출간을 반기는 호들갑도 없었다. 그들은 머리로는 어떤 단어도 조합하지 않았고, 따라서 머리로는 살면서 익혀온 어떤 인사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내가 살아온 간호조무사로서의 1246일을 함께 산 듯했고, 그 시간의 기록을 함께 한 듯했다.      


-축하한다는 말, 이 말보다 더 이상의 표현이 선뜻 생각나질 않습니다. 분명 내 가슴속에 우글거리고 있는데... 사랑합니다!-     


오랜 문우이자 동인인 이정옥 시인이 보내온 톡이다. 진심이 그대로 읽혔다. 머리  끝부터 저릿해지며 온몸이 먹먹해졌다. 내가 선택하고 살았던 간호조무사로서의 1246일이란 시간이 아프고 귀하게 그리고 고스란히 그녀의 짧은 톡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픽사베이     


나는 어머니 떠난 지난 3년을 무수히 많은 어머니 아버지들과 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살며 견디고 지나왔다. 그리고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하며 기록했다.     


식어가는 어머니 몸을 밤새도록 닦고 만지며 목젖이 붓도록 어머니를 불렀던 내가 간호조무사가 되었던 건, 그래서 어머니처럼 식어가는 세상의 어머니 아버지를 만지고 닦이며 마지막 시간 그들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던 건, 그들이 도무지 보내지지 않는 내 어머니요 아버지였기 때문이었다.      


내 어머니가 계셨을 때, 내가 보호자로만 요양병원을 드나들었을 때는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의 시간, 어머니의 말. 아니 어쩌면 멀지 않은 시간 맞게 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말은 그래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언제 온다는 배차 시간표가 없는 생의 마지막 정거장!      


요양병원은 이쪽 세상에서 저쪽 세상으로 데려다 줄 차를 기다리는 거대한 정거장이었다. 이쪽 세상에 머물지만 이미 저쪽 세상의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과, 오늘은 곁에 있지만 내일은 떠나고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들 곁에서 피가 마르는 혈육들의 간절함이 누렇게 뜬 벽지처럼 두꺼워지는 곳.      


고아원은 줄어드는데 자고 나면 새로 생겨 거리마다 번쩍이는 요양병원 간판!     


우리들이 부모를 모셔(?) 놨듯이, 우리 자식들도 언젠간 우리를 모셔다(?) 놓을 곳.     


어머니를 요양병원에서 떠나보낸 나는 그래서 간호조무사란 자격증을 들고 그곳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랑 매일 이별하고 매일 상봉했던 곳.     

어머니가 병상에 계셨던 십육 년,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이산가족 만나듯 치솟는 설렘에 체온이 3도쯤 뜨거워졌던 곳. 그러나 어머니를 두고 돌아올 시간이 되면 저 모습이 내가 세상에서 보는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아닐까 무서웠던 곳.      

돌아와서는 손톱 발톱 끝부터 머리까지 악을 쓰며 울었던 곳. 심장이 줄어들고 뼈에 구멍이 나며 한여름 폭염에도 온몸이 떨리도록 외로웠던 곳.         


©픽사베이     


신간 [이별과 이별할 때]는 그 정거장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배웅하는 보호자들의 시간을 함께 겪은 다큐 에세이다. 나로선 몸으로 쓴 첫 번째 책이자 어쩌면 다시는 쓸 수 없는 책이기도 하다. 몸이 쓰는 정직함, 몸이 말하는 무서운 진실, 몸이 우는 뼈아픈 체험을 어머니는 작가인 내게 선물로 주고 떠났다.      


등단 후 27년을 시인, 작가로 불리며 살아왔지만, 고백한다. 나는 요양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한 1246일이 진짜 시인이요 작가였음을! 그리고 퇴사해 책상 앞에 앉은 지금이야말로 남은 시간 시인이며 작가로 살아갈 자신이 생겼음을!     




지금 살고 있는가!     


살고 있는 이 시간, 이곳도 어쩌면 정거장이란 생각, 나만 하는 것인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은 늘 다음 차를 기다리는 정거장에 서 있다는 자각은 나한테만 온 것인가!     


11월, 이 깊은 만추에 당신이 서 있는 정거장을 한번 휘둘러 볼 일이다. 길고 찬찬한 시선으로 보는 어디쯤, 나를 떠나가는 1초 전의 내가 지금의 나와 이별하고 있을 테니...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 아닌가.
늘 이별과 이별하며 견디고 살아내는 것!         


©픽사베이     


오늘 훈규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프지 말그래이, 너무 오래 살지도 말그래이. 니는 딱 예쁘게만 살그래이.”     

기어코 또 울음이 터진다. 병실을 드나들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해 주시던 말씀과 그 목소리...      


그리워할 사람을 무더기로 얻은 지난 1246일이 [이별과 이별할 때]란 이름을 달고 나를 찾아왔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시간을 살았네요.”     

선배 강종원 시인의 덕담이 부끄럽지 않도록 나는 다시 1일부터 새로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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