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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Dec 11. 2019

절창(絶唱)을 만났다

머리가 녹아내려버렸다. 어깨를 덮고도 한참이나 긴 내 머리가 녹아버렸다. 도저히 모양과 촉감을 설명할 길이 없다. 불에 타 엉키고 오그라든 거친 무명실이 빗물에 대책 없이 젖고 있는 모습.     


감은 지 10시간이 지나도 마르지 않아 축축하고, 이빨 빠진 잇몸처럼 힘없이 건들거리기만 하는 머리카락들. 한 시간이 넘게 억지로 드라이로 말리면 폭탄 맞은 실 더미가 되어 귀신 저리 가라 하는 모양의 나를 만들어 놓는 머리.     


지금 내게 머리랍시고 붙어 있는 녹아버린 내 머리카락이다.          



  

흰머리가 늘어나며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잦은 염색으로 나빠진 머릿결이기는 했다. 그래서 십여 년을 펌은 엄두도 못 내고, 주변에서 어울린다는 평을 무기 삼아  대부분 틀어 올리고 다녔다. 그랬는데 오 년 만에 신간을 출간한 설렘이 너무 컸던 걸까? 아니면 육십이란 나이가 코앞에 있는 시간을 살며 내 마지막 오십 대를 봐주는 하늘과 땅, 바람에게 보답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육십은 오십 대보다 더 행복하게 맞고 싶다는 비밀스러운 기대라도 가졌던 걸까?      


그래서 이 년 만에 들른 동네 미용실이었다. 그리고 이런 머리로 돌아왔다.      


충분히 현재 머리 상태를 고지했고, 가능하다는 미용실 원장의 말에 기뻤던 기억이 만추의 낙엽처럼 허무하게 흩어졌다. 다음날 지인의 소개로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P헤어를 찾았을 때 수석 디자이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복구 불가능탄 머리는 봤어도 이렇게 녹아내린 머리는 처음 봤음정수리 끝까지 롤을 말았기 때문에 단발로도 자를 수 없고클리닉을 해 가며 조금씩 잘라내는 수밖에 없다... 현재 머리가 웬만큼이라도 잘려나가려면 최소 3년은 소요될 듯불행 중 다행은 모근 부분은 심하게 다치지 않아 후일을 기약하는 건 가능할 듯.     


가을이 깊을 대로 깊은 한 해의 끝자락,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길 가의 은행잎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도로가 온통 황금빛으로 덮였던 그날, P헤어숍 통유리 창으로 내가 보았던 건 거리 풍경이었을까? 무엇이었을까?     



십여 년 전, 녹지도 않고 쌓이지도 않는 응지의 눈밭처럼 아무 데나 함부로 돋아나던 흰머리 군락을 본 후, 머리는 내 신체 중 가장 부끄럽고 나아가 증오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또래 남들보다 더 열심히, 더 자주, 더 꼼꼼히 새치염색에 열을 올렸다. 흰머리가 나기 전까지는 남들 다하는 이 색 저 색으로 머리 색깔을 바꾸는 멋 내기 염색도 해본 적 없던 내가, 한 가닥만 흰머리가 보여도 그것을 감추느라 일주일이 멀다 않고 염색약을 칠하고 또 칠했다.      


그래서 이렇게 나에게, 내 머리카락이, 비명을 지르는 건가. 사랑을 증오로 아무 양심의 거리낌도 없이 바꿔버린 나에게, 증오의 끝이 얼마나 허무하고 얼마나 마음을 비게 하는지, 드디어 고함치는가.      


“살아온 날 수만큼 아팠던 거 슬펐던 거 두렵고 외로웠던 거, 다 녹아내렸다고 생각해. 네가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던 거, 네가 못 하니까 동네 그 미용사를 빌어 대신 다 녹아내리게 했다고 생각해.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잖아? 어떤 아프고 슬펐던 기억도 이제 복구되지 않을 테니 잘됐다 생각해. 머리는 아깝지만 어차피 상한 머리였잖아. 상한 마음 상한 몸 상한 기억 다 녹아 없어져버렸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시 살아. 새로 나는 머리처럼 새로 살아. 우리 이제 곧 육십이야. 근사한 나이잖아. 모근은 덜 상했다며? 기쁘고 행복했던 거, 네 보람과 네가 이룬 많은 것들은 거기에 있어. 잘라내야 될 것들, 잘려나가야 할 것들, 그게 이번에 다 녹아내린 거라고 생각해.”         


©픽사베이     


일주일 전 펌을 하고 온 당일, 안부 차 걸어온 통화에서 내 머리에 대한 상황을 듣고 나보다 열 배는 안타까워하던 지인이었다. 직접 P헤어를 찾아가 예약을 해 주고, 첫 방문인 나를 수석 디자이너에게 클리닉을 받을 수 있도록 온갖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살아온 날 수만큼 아팠던 거, 슬펐던 거, 두렵고 외로웠던 거, 다 녹아내렸다고 생각해.     


작가인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해석이었다. 나름 만만치 않은 독서량을 자긍심으로 갖고 있는 내가 어디에서도 읽은 적 없는 말이었다.     


네가 버리려고 해도 버려지지 않던 거, 네가 못 하니까 동네 그 미용사를 빌어 대신 다 녹아내리게 했다고 생각해.     


무릎이 후들거리며 늘어져 있던 두 팔이 나를 감싸 안기 위해 저절로 X자로 교차되었다.      


복구가 불가능하다고 하잖아? 어떤 아프고 슬펐던 기억도 이제 복구되지 않을 테니 잘됐다 생각해.     


한 번도 뱉어보지 못하고 뭉쳐 있던 숨이 터져 나오는 모근이 따끔거렸다. 삼십 년 가깝게 글을 주무르며 살아온 내가, 책은 머리가 아파 절대 NO를 외치는 지인이 하고 있는 말에 온몸으로 백기를 흔들고 있었다.      


다시 살아. 새로 나는 머리처럼 새로 살아. 우리 이제 곧 육십이야. 근사한 나이잖아. 잘라내야 될 것들, 잘려나가야 할 것들, 그게 이번에 다 녹아내린 거라고 생각해.     


깊은 풍경 속 닷새 째 비가 내린다. 엄숙하고도 명료한 시간이 흐르고 있다. 녹아내린 머리를 이고 책상 앞에 앉아 수세미 같은 머리를 만져본다.          


©픽사베이     


모근은 덜 상했다며? 기쁘고 행복했던 거, 네 보람과 네가 이룬 많은 것들은 거기에 있어.     


가장 부끄럽고 가장 증오했던 머리카락을 떠나려는 사람을 붙잡듯 애타는 마음으로 종일 바라보고 있다. 육십 진입 한번 요란하게 하는 쉰아홉 막바지다. 세상에서 가장 절창을 무더기로 만난 육십 한 달 전이다.      



증오는 반 바퀴만 돌아서면 사랑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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