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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 서석화 Jan 20. 2020

보이지 않는 사랑

그렇구나!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뜨거워지지 않은 건 아니었구나! 불꽃 피어오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무심한 사람의 냉정한 입술처럼 묵묵부답은 아니었구나!     


시뻘건 몸짓 보이지 않아도 백도까지 펄펄 끓게 하고, 열 오르는 현란한 소리 하나 없어도 그 위에 얹히는 순간 몸은 데워지는구나!         



이십일 만에 나는 인덕션 앞에서 웃었다. 죽전으로 이사 온 지 이십일 째 되던 날이었다. 나를 모른 체하던 사람의 무릎을 꿇린 것처럼 나는 감격했고, 그 감격이 너무 생생해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지난해 12월 12일 나는 서울을 떠나 죽전으로 왔다. 용기에 용기를 거듭 내느라 팽팽하게 잡아당겼던 심장이 아팠다. 스물네 살에 온 서울을 예순을 열여덟 밤 앞두고 떠나던 날, 하늘도 공기도 짱짱했다. 삼십오 년이란 시간이 만 폭의 병풍이 되어 펼쳐지고 있었다.      


대구 토박이인 내가 6년 연애 끝에 84년 결혼으로 서울 여자가 되어 맨 처음 둥지를 틀었던 신림 2동, 남편 학교와 하숙집 근처라서 낯섦도 두렵지 않았던 신혼 첫 집.      


거기서 2년을 살다가 지도를 펴놓고 여기 가서 살까? 장난처럼 갔었던 화곡동, 두 번의 자연유산 끝에 드디어 ‘부모’라는 축복의 타이틀을 거머쥐고 아들을 만났던 곳, 우리 부부를 통해 세상에 온 아들이 매일 보여주던 장면 하나하나가 신기해 웃고 울었던 곳.      


아이가 첫돌 지난 즈음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온 친구 따라 올림픽대로를 달려 둥지를 틀었던 잠실, 잠실 주공 열세 평과 열다섯 평을 거치는 동안 시인이 되고 학부형이 되었던 곳. 남편과 공동명의로 가진 첫 집도 잠실대교 바로 곁이었다.      


그리고 마흔여섯 때 동부간선도로를 달려 창동 삼성 래미안으로 가 십삼 년을 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의무와 책임이 주어진 긴 시간이었다. 숨만 쉬고 누워 있어도 끝 모를 깊이의 웅덩이가 생겨나던 그곳에서 나는 용케도 거뜬히 살아냈다.      


나는 창동에서 쉰을 맞았고, 쉰여섯에 어머니를 잃었다. 내가 알고 있던 슬픔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질기고 긴 슬픔과의 만남이었다. 이 년 후 쉰여덟엔 아들을 결혼시켜 떠나보냈다. 형제 없는 무남독녀인 데다 자식도 하나밖에 없는 나로서는 또 한 번의 혹독한 이별이었다. 하지만 내가 넘어야 할 모든 고지를 다 넘은 가장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이별이었다. 아니 살면서 경험한 모든 이별 중에 가장 홀가분하고 좋은 이별이었다.      


그리고 예순을 열여덟 밤 남기고 나는 내 모든 의무가 끝난 창동을 떠나왔다.      


삼십오 년 서울 생활은 그렇게 끝났다. 관악구에서 시작하여 강서구와 송파구를 거쳐, 꽁꽁 언 마음으로 자진 월북하듯 건너갔던 도봉구를 끝으로, 나는 내 고향 대구 쪽과 조금 가까워진 용인시 죽전동으로 다시 남하했다. 

        

©픽사베이     


집을 구입할 때 리모델링을 완벽하게 한 집이라는 건 큰 장점이었다. 이미 보편화되었다지만 가스오븐레인지만 써 온 내겐 눈으로도 귀로도 보여주고 들려주는 것 하나 없는 인덕션이란 조용한 열기구가 처음엔 신기했다. 군더더기 하나 없고 어디 한 군데 튀어나온 데도 없는 매끈한 자태는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인덕션은 전원을 켜고 화력을 최고점인 9까지 올려도 도무지 뜨거워졌는지, 불길 강도는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푸른 불꽃으로 반응하며 버튼 위치에 따라 불길의 세기를 확인시켜주는 가스레인지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더 다가가 그의 마음을 열기 위한 어떤 노력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 데워지는 모습도,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도 들려주지 않는 인덕션 보란 듯이, 다용도실 한쪽 벽에 마련된 세컨드 주방에 가스레인지를 사 들였다. 마음 가는 사람이나 사물이 유달리 적은 대신, 마음이 간 사람이나 사물은 복종에 가까운 사랑으로 보듬고 키워왔다. 그러나 이젠 그러기 싫었다. 아니, 싫어야 했다. 나는 서울을 떠나 왔고, 몇 밤만 자면 나이 육십이 되기 때문이었다.     


오래 참고 오래 봐주고 오래 기다려주는 것엔 현존하는 인류들 중 일등이라는, 농담이겠지만 진심 섞인 주위 평판에 대한 정면 거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죽전으로 이사를 결심하며 나는 나 자신에게 선포했다. 

모든 사랑과 대우와 존중의 순위에 나를 제일 높은 곳에 올려놓은, 나 홀로 국가의 헌법 1조 같은 다짐이었다.     


이제는이제 육십부터는나를 맨 먼저 생각할 거다나를 참아주고나를 봐주고나를 기다려 줄 거다나를 옳다고 칭찬하고나를 잘한다고 응원하고나를 위해 기도해줄 거다!         


©픽사베이     


나이 육십! 생의 마지막 집이 될 확률 99.999%다. 죽전은 그 하나의 의미만으로도 애틋함이 더해지고, 그래서 더 나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한 지명이었다. 가버린 많은 세월과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의 저울을 붙들고 이사 오기 전부터 참 많이 힘들었었다. 살면서 그렇게 매일, 지속적으로, 일 분 일 초를 검증하고 훑으며 내 속마음을 펼쳐보았던 적 없었다.      


그렇게 나는 죽전으로 왔다.      



죽전으로 이사를 결심한 후 분당에 사는 아들네와 가깝다는 게 전면에 내세운 이유였다. 하지만 그건 사실 여러 이유 중 하나에 불과했다.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죽전이라는 지명이 주는 울림과, 그 울림에 이끌려 와 본 날 도시가 주는 느낌이 나를 당겼다는 게 더 큰 속내였다. 없는 게 없는 번화함과 도시 하늘을 꽉 메운 고층 아파트 숲은 서울의 어느 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첫 번째 답사에서 나도 모르게 훌쩍 건너간 내 마음을 발견했다.     


길, 때문이었다!      


나서면 그냥 산책길이 되는 호젓하고 정갈한 죽전의 길! 그 길을 만들고 있는 단정하고 품위 있는 구릉 혹은 야산들과 오 분만 걸어도 쉴 자리를 보여주는 소공원들, 신도시의 정비된 예쁜 가게들... 십 차선 대로에 있다가도 아무 때나 눈에 들어오는 길로 방향을 틀면 바위와 나무와 풀들이 품고 있는 길을 보여주는 곳. 어느 아파트를 들어서도 다른 아파트와 이어주는 샛길이 사방으로 있어 ‘우리’와 ‘너희’라는 차가운 구획 없이 ‘모두’를 느끼게 하는 곳.      


단절과 외로움과 독방은 그동안 살았던 저 너머의 일이고 이제는 당신과그들과세상과소통으로 따뜻해질 아랫목 같은 도시죽전그렇게 나는 길이 아름다운 도시죽전 여자가 되었다.      


세컨드 주방은 냄새나는 생선을 구울 때나 곰국 같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음식을 할 때 사용하는 곳으로 집집마다 휴대용 버너가 놓여 있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나는 아예 가스레인지를 새로 놓아버렸다.      


인덕션은 그 모습에 반해 마음에 품었다가 냉기 성성한 차가움에 백기를 던진 시작도 못한 사랑이 되었다. 자기 마음대로 내 마음에 턱, 들어와 놓고 내 손길 내 마음엔 모르쇠로 일관하다니!      


숨소리마저도 비칠 것 같고 내려앉는 먼지 한 톨도 들킬 것처럼 투명한 인덕션은, 마음 줄 것도 아니면서 무례하게 내 안에 침범한 난공불락의 상대 같았다. 자신의 역할은 안 하면서도 내 마음을 빼앗았단 이유만으로도 당당하고 그 당당함에 더욱 무력해진 나는 만만한 가스레인지만 더욱 휘어잡았다. 당연히 모든 음식은 따뜻한 실내를 벗어나 다용도실에서 했다.     


그렇게 나는 이십일 동안이나 두 집 살림하는 사람처럼, 내 맘대로 되지는 않지만 어여쁜 인덕션은 따뜻한 실내에 두고, 아무 때나 내 맘대로 부릴 수 있는 가스레인지는 온기 없는 다용도실에서 부려먹었다.      

그런데 오늘, 죽전에 온 지 이십일 만에 드디어 인덕션에서 음식이란 걸 완성해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무지 마음을 알 길 없는 사람에게 최후의 읍소를 하듯 나는 인덕션 전원을 겼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데도 무턱대고 기다렸던 건 왜였을까? 소리도 불꽃도 변화도 없는 그 앞에서 어쩌면 나도 모든 걸 내려놓고 있는 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감감무소식인 그 곁을 지키고 서 있는데도 나는 불안하지도 화가 나지도 않았다. 최후통첩을 준비한 사람의 담담함을 나는 나한테서 보았다.      


그런데, 보았다. 노랗게 익은 계란찜을!      


데워지고 타오르는 어떤 기척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인덕션은 데워졌고 타올랐으며 마침내 내가 원하는 어떤 음식을 내 앞에 데려다 놓았다.          


©픽사베이     


그렇구나! 불꽃이 보이지 않는다고 뜨거워지지 않은 건 아니었구나! 불꽃 피어오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무심한 사람의 냉정한 입술처럼 묵묵부답은 아니었구나!     

시뻘건 몸짓 보이지 않아도 백도까지 펄펄 끓게 하고, 열 오르는 현란한 소리 하나 없어도 그 위에 얹히는 순간 몸은 데워지는구나!     


보이지 않는 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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