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돌아오는 복날 이건만
복날을 끔찍이도 챙기시던 울 어머니는 추억이 되었다.
엄마 같은 언니, 아버지 같은 형부
어젯밤 형부가 언니랑 두 명을 초대한 카톡에 글을 남겼다.
"퀸수키님, 내일 복날입니다. 올여름 건강하게 이겨내려면 인삼 들어간 삼계탕으로 우리 집 꽁이랑(언니) OO이랑 점심 한 끼 합시다. OO이 내일 학교 갑니까?" 뚝배기에 담긴 삼계탕 사진과 전복 사진이 동시에 올라왔다.
중학생인 딸아이, 격주로 등교 중인데 이번 주는 등교하는 주라 말씀만으로도 고맙다고 전했다. 잇달아 언니의 톡이다. "내일 교육도 있고 바빠요. 대신 저녁에 끓여줄게요." 말만으로도 고맙다. 엄마 같은 언니와 아버지 같은 형부다. 어머니 돌아가시고는 더 챙기는 형부다.
퇴근 후 서둘러 끓이고 다시 나가는 중이라며 "이서방 퇴근할 때 편의점을 들리라고 하던지 아니면 네가 와서 가지고 가, 갖다 줄려고 했는데 늦어서 안 되겠다." 엄마 같은 언니다.
언니와 나는 4살 차이지만 멀리 계신 엄마 대신 결혼 준비부터 만만한 게 언니라고 두 녀석 입덧할 때는 물론이고 출산 후 조리원에서부터 애들 병원 들락일 때까지 애를 많이도 먹였다. 나는 인복이 많다. 어머니와 언니가 수시로 해다 나르는 반찬이며 먹거리로 우리 집 냉장고는 항상 차고 넘쳤다. 두 사람의 마음과는 반대로 꽉 찬 냉장고는 몸살이라도 앓는 듯 기쁨보다는 답답함이었다. 그 답답함을 더하는 한 사람이 그리운 지금이다.
어머니의 양육 철학
먹거리와 사랑을 중요시하던 어머니셨다. 여느 부모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식을 끔찍이도 챙기셨던 어머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결혼했던 35살, 울 어머니는 꽃다운 나이 35살에 혼자되셨다. 교사셨던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고 그때부터 아들 셋을 혼자 키우셨다. 아들 둘만 키워도 반 깡패가 되어야 한다지만 울 어머니는 아들 셋 엉덩이 한 대 때리지 않고 키우셨다고 하셨다. 말 안 들어 가끔씩 애들한테 윽박지르거나 손으로 엉덩이라도 툭 치는 날이면 손으로 때리면 감정이 실린다며 좀 더디겠지만 사랑으로 보듬으라는 말씀을 늘 하셨다. 한결같은 어머니를 보면서 저렇게 천사 같은 분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때 묻지 않는 순수함이 있는 소녀 같은 분이셨다, 내 어머니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숙연하게 만드는 진정 존경스러운 분이셨다.
거동이 불편한 데다 치매 증상이 있는 당신 어머니가 안쓰러워 손주 유치원 간 사이 늘 외할머니를 챙기시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주말이면 또 자식들 불러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이기 바빴다. 그랬으니 쉬실 틈도 병원 가실 엄두도 못 내셨던 것 같다.
"야야, 이번 토요일에 어디 가냐?"
"아니요,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그라마 아들 데리고 밥 먹으러 올래, 내 맛있는 거 해줄게."
"네, 그럴게요."
"1시까지 와라."
그렇게 도착한 시댁, 무슨 일이 있어도 손주를 아들 며느리를 두 팔 벌려 환대하시고는 다시 일을 보신다.
"어머니, 뭐 할까요?"
"할 거 없다. 다 했으니까 TV 보고 있어."
거실 TV 앞으로 밀고가 앉힌다. 그리고는 당신은 선풍기도 켜지 않은 체 음식 준비하느라 땀이 비 오듯 하는데도 우리가 가면 에어컨에 선풍기까지 켜주신다. 식혜나 금방 갈아낸 주스를 먼저 내오시면서
"배고프제? 이거부터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라"
한사코 앉아있으라고 하시지만 말벗이라도 되어 드리려고 옆에 가서 서 있으면
"야야, 네가 옆에 있으니 못하겠다. 얼른 가서 TV나 봐라. 안 그러면 피곤한데 좀 누워있든지..."
이런 시어머니가 또 계실까?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셨던 프로그램이 EBS 최고의 요리비결이었다. 요즘이야 레시피를 스마트폰으로 보지만 그때 어머닌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일일이 메모를 하셨고, 한주에 한두 개의 요리를 선보이셨다. 한 번은 그러셨다. "야야, 백종원 계란찜이 그렇게 맛있어 보이던데 레시피 좀 뽑아줄래?" 하셨다. 그런데 잘 안된다며 연습해서 맛있을 때 부르겠다고 하셨다.
아주버님 46번째 생일날 , 어머니표 케이크건강한 먹거리를 고집하며 두부도 직접 만들어주시고, 주스도, 도넛도, 칼국수에 찹쌀가루 묻혀 튀긴 치킨에 케이크까지 전부 만들어 주신다. 아들 내외 손주 생일까지 생일 때면 백설기로 2단 케이크를 만들고 치자, 시금치, 비트 등 천연색소로 곱고 정성스레 만드신 꽃을 올린 당신만의 케이크와 잡채에 갈비찜 등 각종 잔치음식을 만들어 집까지 배달해주셨다. 못 가는 날이면 손수 만든 셋 집의 음식을 끄는 캐리어에 넣고 과일까지 무겁게 챙겨 버스와 지하철로 다녀가신다.
그것도 특별히 할 얘기가 있거나 하지 않으면 몰래 다녀가신다. 손수 만든 음식을 문 앞에 두고 버스 타러 가시면서 전화를 주신다. 상대방이 불편하게 해서가 아니다. 배려가 몸에 녹아 베인 어머니의 오랜 습관 때문이다.
"잘 있었나. 아직 밥 안 먹었지? 문 앞에 음식 있으니까 가지고 들어가서 먹어라."
"어머니, 어디세요? 오셨다가 가세요."
"배달하려면 바쁘다!!"
"모셔다 드릴게요."
"야야, 거기가 어디라고 태워주니, 버스 타고 지하철 타면 금방인데 왔다 갔다 뭐할라고 그래."
"어머니, 거기 계세요. 갈게요."
"야야, 내 겁 많은 거 알제? 작은 차보다 큰 차가 편하다. 차 온다 나중에 통화 하재이."
우리 집에서 버스 승강장이 보인다. 그런데 차가 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자리에 앉아계셨다. 극과 극에 사는 첫째와 셋째 집 배달할 음식을 가득 실은 캐리어를 지지대 삼아 앉아계셨다.
빼빼로데이를 챙기는 센스만점 할머니
해마다 빼빼로 데이면 대형 빼빼로를 사서 친구들과 나눠먹으라며 당시 손주들 넷에게 일일이 퀵으로 보내셨다.
해마다 빼빼로데이에 손주들에게 보내시는 대형 빼빼로뿐만 아니라 요즘 운동회는 학생들끼리 하고 급식으로 해결하는 편이지만 첫째 유치원 때부터 운동회날 아침이면 오쿠에 구운 계란을 만들어 일일이 포장해 유치원으로 학교로 들고 와 반 아이들에게 나눠주셨다.
그리고 아이들 생일 때면 평소 이웃들에게 잘 베풀어놔야 한 다시며 이웃 지인들과 집에 오는 친구 엄마들에게 나눠주라며 일일이 뜬 수세미와 생필품 두어 가지를 손수 포장해서 나눠주시기도 하셨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극정성이다. 연말에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손주들에게까지 일일이 문자로 새해인사를 남 먼저 주시는 어머니요 할머니셨다.
건강을 잃다
그렇게 동분서주하시느라 당신 몸 돌보기를 소홀히 하셨다. 어느 날인가 몸에 힘이 빠져 털썩 주저앉았다고 나중에서야 말씀하셨다. 그저 피곤해서 그런 줄 아셨단다. 동네 병원 의사의 권유로 대학병원을 갔고 결국 암 진단을 받고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깨끗하고 고우신 분이셨는데 느닷없는 암 선고에 그것도 전이가 많이 진행된 심각한 수준이라는 말에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다행히 가입되어 있던 보험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수술을 받았지만 상처가 아물지 않아 예정보다 퇴원이 늦어졌다. 번갈아가며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애들만 남겨두고 한 발자국도 못 뗐겠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수서행 SRT에 몸을 실었다. 병실에 들어서니 야위디 야윈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얼굴의 어머니지만 여느 때보다 환하게 웃어주셨다. 있는 힘을 다해 웃은 듯했다, 가슴이 미어졌다.
저녁에 씻으러 가는데 기어코 따라오신다. 수건을 들고는 지켜보시면서
"내가 얼굴 씻겨 줄까?" "더운데 머리도 감지, 내가 감겨줄까?" 하셨다. 자기 전에는 깨끗한 시트를 받아오셔서는 손수 깔아주셨다. 내가 하겠다는데도 기어코 당신이 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자다 보면 춥다고 이불까지 덮어주셨다. 결혼하고 늘 챙김을 받았기에 낯 선일도 어색한 일도 아니지만 지금은 당신이 환자라는 걸 잠시 잊으셨나 보다. 병원 내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볼일이 있다고 하시더니 밥 먹고 나니 병원내 마트에 들리자고 하셨다. 이유는 이거였다. 간호사들이 얼마나 친절한지 근무한다고 힘들 텐데 간식을 좀 사주고 싶다고 하셨다. 빵이며 음료를 사서 건네주시는 어머니, 이런 상황에서 그런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역시 우리 어머니셨다.
2017. 7. 19 아산병원 그날 밤 고부는 한 침대는 아니지만 한 공간에서 오롯한 1박 2일을 함께 했다. 어머니와 단둘이 있기는 처음이었다. 주무시는 어머니의 숨소리는 힘겹지만 평온했다.
20대 때 한강 조망권 아파트에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 있었다. 그런데 아픈 어머니를 옆에 두고 내려다보는 한강은 온통 눈물이었다. 무심한 야경은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추억이 된 어머니
수술이 잘 됐다고 했고 내려와서 가까운 대학병원에서 항암치료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못 드시는 데다 기력 회복을 못하시고 몇 번이나 정신도 놓으셨다. 그렇게 얼마간 병상만 지키시다 불과 몇 달 만에 결국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셨다. 친정엄마는 지금도 "아까운 우리 사돈, 아까운 우리 사돈" 하시며 산소라도 자주 찾아가라고 하신다.
해마다 복날이면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복날 전날엔 어김없이 전화가 온다.
"야야. 낼은 밥하지 마라. 삼계탕 해서 갖다 줄게."
식구수대로 닭다리 신경 써서 담은 삼계탕에 과일에 이것저것 챙겨 오셨다. 특히 아보카도가 건강에 좋다시며 자주 챙기셨다.
엄마가 거동도 못하시고 정신도 오락가락하는 게 오래 못 사실 것 같다시며 당신 힘든 줄 모르게 그렇게 쫓아다니셨다. 당신이 그토록 애달파하고 걱정하셨던 그 할머니는 치매 증상은 왔다 갔다 하지만 여전히 정정하시다.
큰 딸인 이모님이 뵈러 갈 때면
"소연이 가는 왜 안 보이냐? 보고 싶은데..."
"엄마, 소연이는 아도 봐야 되고 바쁘잖아요!! 다음에 같이 올게요."
"아픈 건 아니제?"
울컥, 그럴 때면 그 상황을 얼렁뚱땅 마무리하고 서둘러 나오신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레시피 노트
뒤늦게 가족 톡에 공유된 메시지, 그 큰 수술을 앞두고 얼마나 겁이 나셨을까, 병원으로 가시는 길 차 안에서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전부에게 일일이 이름을 불러가며 고맙다는 장문의 글을 남기셨다. 단어 선택이나 오타에서 어머니의 당시 몸상태를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오로지 의지로 쓰신 문자였다.
돌아가시고 집 정리하며 많이 나왔던 한 장씩 찢어진 벽걸이 달력, 달력 뒷면에는 요리 레시피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오로지 자식 손주들 해 먹이겠다는 마음에 힘들여 적으면서도 얼마나 즐거우셨을까!!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금방 말씀하셔 놓고도 누구냐고 계속해서 묻는 외할머니, 조만간 울 어머니 대신 요양병원에 계시는 외할머니 한번 뵈러 가야겠다.
지난봄에 찾아뵌 산소 OO공원, 노란 물감을 뿌려놓은 듯 다른 산소보다 유난히 많은 송화가루였다. 답답할 것 같아 물티슈로 깨끗이 닦아 드렸는데 외삼촌께서 말씀하신다. "누나가 송화가루로 다식도 만들고 엄청 좋아했는데..."
사시사철 열어두는 창문 너머로 송화가루가 날리 울 때면 나는 가장 먼저 어머니를 떠올린다.
어머니,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한참을 두고 본다.
만져도 본다.
그 옛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퀸수키 행복발전소는 쉬운 정리를 지향합니다.
어느 순간부턴가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유튜브 선생에게 물어본다. 유튜브를 보면서 느낀 점은 분야의 여러 유튜버들이 친절하고 자세하게 잘 알려줌에도 불구하고 생소한 분야일 때는 재생 속도를 늦추고 몇 번을 돌려보게 된다. 그래서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시작하려는 첫 마음의 포기 없이 지속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또한 모두의 성장을 기원하고 기대하는 만큼 일시적인 정리가 아니라 평생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다룬다. '퀸수키 행복발전소' 구독하고 부자 되자! < 퀸수키 행복발전소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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