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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한 김변리사 Jul 16. 2019

특허 바보야, 문제는 XXX이야!

특허를 많이 내봤다고 하는 분들도 '이것'을 모르면 '특허 바보'나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르니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바로 이 XXX를 몰라서 질 나쁜 변리사나 악의적인 경쟁사에 속는 경우도 많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래의 내용을 끝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절대 속을 일은 없을 것이다. '진짜 바보'가 아닌 이상 말이다.



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 진영이 내걸었던 선거 운동 문구다. 알려진 바와 같이, 빌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이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특허 분쟁에서의 it은 '청구항'이다. 청구항(또는 청구범위)을 알지 못하면 필패이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 간의 지난한 특허 분쟁 덕분에(?), 과거와 다르게 각종 매체에서 국내외 기업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 스타트업 간의 특허 분쟁을 (과거와 비교하면) 매우 자주 다루어주고 있다. 특허 분쟁 기사를 접할 때면, 이따금 분쟁 당사자 일방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작성된 기사를 접하게 되고, 해당 기업이 배포한 보도자료를 받아쓰거나 사전 교감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의심도 해본다. 이른바 언론 플레이이다. 



그리고, 매우 빈번하게 분쟁 당사자 일방의 담당자가 (특허가 아닌) 제품/서비스 단위의 유사성을 지적하면서 특허 침해를 주장하고 엄청난 자신감을 드러내는 것을 접하는데, 그럴 때마다 "바보야, 문제는 청구항이야!"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청구항에 뭐라고 쓰여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먼저 하이트진로의 '테라(TERRA)' 사건을 살펴보자. 일전에 테라를 몇 번 주문해서 마셔보았지만, 최근 이슈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사실 병 디자인에 대해서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변리사로서 반성한다. 



이번에 논란이 된 부분은 병목 부분의 회오리치는 듯한 디자인이다. 하이트진로 측에서는 라거 특유의 청량감을 시각화하기 위하여 병목에 토네이도 모양의 양음각 패턴을 적용했다고 말하고 있다. 병 디자인하면 코카콜라 정도나 떠오르는 나 같은 사람에게, 하이트진로의 이 같은 디자인 노력은 가히 칭찬할만하다.




테라의 병목 디자인 광고



그런데, 아쉽게도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 있다. 정씨는 자신의 특허가 하이트진로에 의해서 도용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하이트진로는 자체 개발한 디자인이라고 맞서는 상황이다. 정씨가 하이트진로를 의심하는 이유는 나름 합리적이다. 



(목적성이 있는 의도적 만남이었든, 순수한 만남의 결론이 부정적이었든) 지난 2011년 정씨와 하이트진로의 관계자 간 병 목 디자인 관련 사업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씨는 이미 특허 분쟁 경험을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1년도에 밀러라이트에 특허 침해를 제기하고 승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 정씨가 가지고 있는 특허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등록특허 제10-0916631호 "용기"라는 명칭으로 등록되어 있다. 대표 도면은 다음과 같아서, 얼핏 보면 테라의 병목 디자인과 상당 부분 유사하다. 대표 도면에서는 병의 중간 부분이 잘록하게 안 쪽으로 들어가 있으며, 병 입구까지 회오리치는 듯한 패턴이 연장되어 적용되어 있다.




정씨의 특허 대표 도면


그러나, 제목에서 얘기한 것처럼 문제는 청구항이다. 청구항을 들여다보자.



청구항 1.    액체 내용물을 수용하는 용기에 있어서,

상기 수용된 액체 내용물이 병목부의 배출구를 향해 회전되면서 배출이 유도될 수 있도록 병몸체의 중앙을 기준으로 상부영역 중 일부 또는 전체가 내주면으로 볼록형상을 갖고 나선형으로 감겨지는 복수의 가이드로 형성되고,

상기 복수의 가이드는,

상기 병몸체의 내주면으로 볼록한 형상의 가이드를 수직으로 단면 처리시, 하나의 가이드 형상이 "C" 혹은 "역C" 형상으로 나타나며, 상기 액체 내용물이 배출되는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볼 때 전방의 곡률이 작고 후방의 곡율이 큰 형상인 것을 특징으로 하는 용기.



테라 사건을 접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부에서 확인되는 병목의 회오리 패턴에 집중하였을 것이나, 청구항은 '내주면' 즉 내부에 형성된 패턴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즉, 청구항은 병목(청구항에서는 병몸체의 중앙을 기준으로 상부영역)의 내주면에 볼록형상의 나선형으로 감긴 가이드가 형성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까닭에, 정씨가 테라 샘플을 구해서 실질적으로 병을 잘라보았다고 언론에 당당히 얘기하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청구항의 마지막 부분은(통상 '특징부'라고 한다) 병을 잘라보면(청구항에서는 단면 처리시) 가이드가 볼록한 'C' 또는 '역C' 형상으로 나타나며, '전방의 곡률 < 후방의 곡률'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씨의 용기 특허는 병에 담긴 액체가 가이드를 따라 자연스럽게 회전되면서 안정적으로 배출된다고 그 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과거 밀러라이트의 이미지를 구글링을 통해 확보해보니, 밀러라이트가 아예 'vortex bottle'이라고 광고했던 이미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미지를 확인해보면, 밀러라이트와의 특허 분쟁에서 정씨가 승소한 이유가 바로 설명된다.




밀러 라이트의 vortex bottle 광고



청구항을 확인해보았으니, 테라 병을 잘라서 확인해보면 쉽게 결론이 날 수 있는 분쟁이다. 한편, 하이트진로는 "정씨가 발명했던 특허처럼 내용물이 회전하며 나오는 기능은 없다", "병 속의 내용물이 돌아가는 듯한 모습은 광고에 나오는 영상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한다.



다음으로 야놀자와 위드이노베이션 간의 '마이룸' 사건을 살펴보자. 최근에 야놀자가 위드이노베이션을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음을 밝혔다. 참고적으로, 위드이노베이션은 야놀자와 유사한 숙박 플랫폼 '여기어때'의 운영사이다. 숙박 O2O 업계를 대표하는 두 기업의 다툼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야놀자가 특허 침해를 문제 삼은 대상은 여기어때의 '페이백' 서비스이다. 야놀자는 숙박업체의 일부 객실을 위탁받아 직접 판매하는 '마이룸'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마이룸을 이용한 사용자는 50% 할인쿠폰을 받게 되고, 동일 숙박업체 재방문 시에 일반 객실(야놀자가 아닌 숙박업체가 판매하는 객실)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1차 판매인 마이룸의 숙박료는 야놀자가 가져가고, 2차 판매인 일반 객실의 숙박료는 숙박업체가 가져가는 윈윈(win-win) 모델이다. 



여기어때는 마이룸 서비스와 유사한 페이백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서비스 내용만 비교해보면, 재방문 시 50% 할인 등 전체적인 메커니즘은 얼핏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의 마이룸  vs  여기어때의 페이백



미안하지만, 야놀자와 위드이노베이션 간의 특허 침해 소송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매우 반가웠다. 이런(전통적인 제조업이 아닌?) 비즈니스도 특허를 받고, 특허를 활용하여 사업을 운영하며, 심지어 침해 문제가 있을 때에는 소송까지 불사한다는 것이, 특허 저변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기대감 또는 흥미와는 다르게, 야놀자의 감정의 골은 꽤 깊을 것 같다. 야놀자는 2016년도 8월에 아래와 같이 '마이룸' 특허 확보를 자사 홈페이지 등에 공시하고 보도자료를 준비할 만큼 특허 침해 발생 시 강력한 조치를 취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놀자의 마이룸 특허 취득 공시 (2016.08.11.)



전반적으로 서비스는 거의 동일해 보이는데, 그럼 이제 청구항을 들여다보며 정확하게 확인해보자. 야놀자는 현재까지 7건의 등록특허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마이룸과 관계된 것은 등록특허 제10-1790549호이며 그 청구항은 다음과 같다.



청구항 1.    숙박업소로부터 임차한 객실을 이용하여 고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서,

숙박업소의 객실들 중 일부 객실을 임차하고, 임차한 객실을 마이룸(MY ROOM)으로 선정하여 고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며, 마이룸에 대한 숙박 계약 체결 시 고객에게 발행할 쿠폰을 결정하며, 상기 마이룸을 숙박한 고객이 추후 상기 숙박업소의 일반룸에 숙박하였을 때 상기 숙박업소에 숙박료를 지불하도록 결정하는 서비스 서버;
임대 희망 객실에 대한 정보를 상기 서비스 서버에 전송하고, 상기 임대 희망 객실 중 상기 마이룸으로 결정된 객실 정보를 획득하며, 상기 서비스 서버를 통해 일반룸이 예약되었을 때 지불받을 숙박료를 관리하는 숙박업소 단말;
숙박업소 목록, 숙박업소의 일반룸 및 마이룸 목록, 그리고 일반룸들 중 쿠폰 사용이 가능한 일반룸이 있는지 여부를 표시하고, 일반룸 또는 마이룸에 대한 숙박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고객 단말;
을 포함하는 숙박 서비스 제공 시스템.



청구항 13.    숙박업소 단말 및 사용자 단말과 네트워크로 연결된 서비스 서버에서 수행되는 숙박 서비스 제공 방법에 있어서,

상기 숙박업소 단말로부터 임대 희망 객실에 대한 정보를 수신하는 단계;
상기 임대 희망 객실들 중 하나 이상의 특정 객실을 고객에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마이룸(MY ROOM)으로 선정하는 단계;
상기 사용자 단말로부터의 룸정보 표시 요청에 응답하여, 숙박업소 목록, 마이룸 목록 및 일반룸 목록을 제공하는 단계;
상기 마이룸의 숙박 계약을 체결하고 고객에게 청구할 마이룸 숙박료를 산정하며, 상기 숙박 계약을 체결한 고객이 추후 일반룸 숙박 시 사용가능한 할인 쿠폰을 발행하는 단계;
상기 숙박 계약을 체결한 고객이 추후 일반룸의 숙박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상기 고객에게 청구할 일반룸 숙박료를 상기 할인 쿠폰을 적용하여 산정하는 단계;
상기 일반룸의 숙박 계약에 대한 기설정된 숙박료를 숙박업소에 지불할 것을 결정하는 단계;
를 포함하는 숙박 서비스 제공 방법.



음... 안타깝게도 청구항 1은 잘못 쓰여 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썩 잘 쓰여 있지는 않지만) 청구항 13을 살펴보기로 하자.



청구항에 쓰인 대로, 여기어때의 경우에도 숙박업소와의 협의 하에 페이백룸 객실을 선정하고, 사용자에게 페이백룸 객실과 일반룸 객실을 구분한 목록을 제공하며, 객실 이용(숙박 계약 체결, 숙박료 산정 및 결제, 객실 정상 이용 등) 이후 할인 쿠폰을 자동 발급하고 있다. 동일 숙소를 재방문 시 사용자는 할인 쿠폰을 이용할 수 있으며 페이백룸 객실이 아닌 일반 객실을 할인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 객실에 대한 숙박료는 당연히 숙박업소로 지불된다.



여기어때가 제공하는 객실 리스트 (여기어때 배너 광고 아님)



남아있는 문제는 청구항에 쓰인 대로(또 언급하고 있다) 여기어때의 페이백룸 객실도 숙박업소로부터 '임대한 객실'이냐는 것이다. 야놀자의 마이룸 특허에 의하면, 마이룸은 임대 객실이므로 이의 숙박료는 야놀자가 가져가며, 야놀자는 (숙박료가 아닌) 임차료를 숙박업소에게 지불해야 한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여기어때는 '얼리버드'로 시작한 서비스를 (서비스 명칭으로부터 혜택이 드러날 수 있도록) '페이백'으로 그 명칭만 변경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여기어때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즉, 임대를 통한 위탁 판매 모델이 아닌 얼리버드 항공권의 판매방식을 도입한 얼리버드 판매 모델에 불과하다면, 여기어때의 페이백룸 객실은 숙박업소로부터 '임대한 객실'이 아니므로 특허 침해 가능성이 낮아지게 된다. 설령, 숫자상으로 '숙박업소에게 지급하는 임대 객실 임차료 = 얼리버드 객실 숙박료'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마이룸 특허의 청구항에는 마이룸이 숙박업소로부터 '임대한 객실'이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제 뭣이 중한지 알았겄지?





*특허 침해에서는 'single entity rule'이라는 대원칙이 있다. 결론만 간단하게는, 서비스 서버, 숙박업소 단말, 고객 단말까지 3명의 참여자를 전제로 숙박 서비스 제공 시스템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청구항 1은 잘못 쓰인 것이다.

**마이룸 특허의 심사 과정에서 별다른 선행기술이 제시되지 않은 점을 토대로 균등론을 고려해 볼 여지도 있으나, 얼리버드에게 할인 쿠폰을 지급하는 모델은 공중 영역(public domain)으로 보인다.



홈페이지: www.WeFocu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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