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봄은 봄입니다.
봄은 봄입니다. 봄은 보아서 봄이라 하지요. 봄에는 볼 것이 세상에 널려 있습니다. 겨울이 지나가면 나무와 풀은 연한 빛을 띠고 땅 위로 싹이 돋아납니다. 봄이 되면 꽃 주위로 나비와 벌, 움직이는 생명체의 움직임이 활발해집니다. 매해 보지만 항상 새롭습니다. 그래서 자꾸 어딘가로 눈길이 갑니다. 봄은 봄이니까요.
봄은 스프링입니다. 봄은 튕겨 나옴입니다. 영어로 봄을 스프링(spring)이라 하는 것은 보면, 봄은 용수철처럼 튕겨 나오는 속성을 가지나 봅니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생명이 여기저기에서 튕겨 나옵니다. 차가운 겨울을 고요히 이겨낸 씨앗도 얼었던 땅을 이겨내고 튕겨 나옵니다.
씨앗의 기운이 스스로 스프링처럼 밀어내고 나오는 것인지, 딱딱하게 언 땅이 녹으면서 연약한 새싹이 올라오도록 배려하며 길을 만들어 주는 것인지 제 거친 눈으로는 알 수 없지만, 새싹은 튕겨 올라옵니다.
줄탁동기(啐啄同機)라 하지요.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서 안에서 부리로 부르고, 어미는 밖에서 그 소리를 듣고 알을 쪼아 생명이 탄생하는 기회가 생깁니다. 새싹이 부르는 소리를 자연이 듣고 햇살로 바람으로 딱딱한 땅 껍데기를 쪼아주나 봅니다.
안에서 깨어나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 밖에서 잠시 쪼개어 도와줄 수는 있어도 밖에서 미리 쪼기만 한다면 알 안에 있는 생명체는 죽을 수밖에 없지요.
아마도 봄에 돋아나는 것은 그 씨앗의 튕겨 나오는 기운이 우선이겠지요. 세상에 나가려는 원초적 기운은 어디에선가 받아 생기지만, 그것을 뚫는 애씀은 그 씨앗이 하는 것이지요. 그 씨앗의 애씀을 봄의 따뜻함이 도와주나 봅니다. 봄은 튕겨나옴을 봅니다.
봄은 옴입니다. 봄은 새 생명이 오는 것을 봅니다. 여름이나 겨울 앞에 새’라는 글자를 붙이지 않지요. 하지만 봄에는 ‘새’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새봄 맞이라 적고 새로운 봄을 맞이합니다. 우습지요. 매해 맞이하는 봄인데, 무엇이 새봄이라 할 것이 있겠어요. 하긴 그렇게 따진다면 새해도 이상한 말이겠네요. 맞습니다. 매년 새해가 오는 것처럼 매년 새봄을 맞습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새롭게 생명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새봄입니다. 봄은 올라오는 새로움을 봅니다.
봄은 보드라움입니다. 봄에 돋아나는 새싹은 보드랍습니다. 만져보면 이리도 보드라운 것이 어찌 그 딱딱한 것들을 이겨내고 뚫고 올라왔을까 싶습니다. 만져보아도 보드랍지만, 색도 보드랍습니다. 녹색이라고 해서 같은 녹색이 아니지요. 연한 기운이 도는 연녹색이라 그냥 표현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봄의 보드라운 색감입니다. 봄은 그렇게 보드랍습니다.
땅은 딱딱해서 땅이 아닐까요. 그 딱딱한 땅을 보드라운 새싹이 뚫고 올라옵니다. 딱딱한 흙을 이겨내지 못하면 씨앗은 싹틀 수 없습니다. 새싹은 연약하지만, 단단한 돌멩이를 밀어내고 올라올 만큼 힘이 셉니다. 겨울의 딱딱한 땅을 이겨내는 것이 봄입니다.
보드라운 새 생명이 딱딱한 것을 이깁니다. 보드라운 새싹이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옵니다. 거북이 등처럼 딱딱한 나무껍질을 뚫고 가는 줄기가 올라옵니다. 보드랍기 때문에 작은 틈 사이로 얼굴을 조금씩 내밉니다. 새싹이 딱딱했다면 오히려 그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기 힘들었을지 모르지요. 보드라움이 그리도 강합니다. 봄은 보드라움을 봅니다.
봄이 보드랍게 튕겨 나오는 것을 봅니다. 봄이 새롭게 오심을 봅니다. 그렇게 볼 것이 널려 있지만, 봄은 보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딱딱한 나무껍질을 이겨내는 새 줄기의 연둣빛 시작을 보는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밤새 올라온 새싹을 아침에 눈길을 준 사람만이 볼 수 있습니다.
딱딱한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봄이 오심을 잘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봄이 옵니다. 봄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