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거울이 없다면

by 이상현

#42 거울이 없다면


저라면 뭐라 했을 것 같은데,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가 봅니다. 그렇게 엉망으로 잘라 났는데도. 그녀는 전혀 불평하지 않습니다.


저희 강아지 말입니다. 이제 열다섯 살이니 사람 나이로는 이팔청춘에 가깝지요. 하지만 개 나이로는 할머니에 해당합니다. 강아지라 부르면 안 될 나이지만, 개라 부르는 것은 영 어색하여 여전히 강아지라 부르지요. 오랜 기간 함께한 가족 눈에는 강아지 때부터 봤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지요.


여전히 저희 눈에는 귀여운 강아지이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얼마 전부터 아픈 데가 생깁니다. 작년인가 조금 무리해서 산책하고 나니 그날 밤 호흡 곤란이 왔지요. 밤새 애타게 바라보다가 아침에 바로 다니던 동물병원에 갔습니다. 심장도 부어있고 콩팥 기능도 떨어졌다고 하더군요. 그 후 한두 번 고비가 있었는데 담당 수의사 선생님은 갈 때마다 절대 무리하지 말라고 합니다. 산책도 목욕도 미용도.


몇 년 전 이사 온 집 근처에 애견미용실이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오랫동안 다니던 동물병원 미용실은 차를 타고 가야 했었기에 집 근처라 잘 되었다 싶어 지나가다 들렸습니다. 애견미용실 젊은 주인이 개 나이를 묻더군요. 나이를 알려주니 자신들은 노견 미용은 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때는 야박하다 여겼는데, 동물병원에서 미용도 늙은 개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제 이해가 됩니다.


얼마 전부터는 밖에서 미용하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 집에서 털을 잘라주려고 애견 면도기와 가위를 샀습니다. 처음 사용해 보는 애견 면도기 사용에 저는 긴장을 하여 조심스러웠지만, 다행히 강아지는 집에서 하는 것이 편안해 보이더군요. 아마추어 미용사가 자르니 당연히 집 전체는 털 잔치를 벌이고 강아지는 빡빡이가 되었지요. 그래도 몇 번 하다 보니 이발 기구에 익숙해져 길이도 적당하게 자르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오른쪽은 길고, 왼쪽은 짧고 여기저기 엉망입니다.


학생 때 셀프 이발을 시도했던 적이 있어요. 길거리에서 헤어 커터 빗을 팔더군요. 그럴싸했습니다. 빗에 칼이 들어 있어서 빗질만 하면 이발이 저절로 된다니 신기했지요. 이것만 있으면 원하는 대로 이발도 하고 이발비도 아끼겠구나. 바로 사서 뿌듯한 마음으로 집에 오자마자 셀프 이발을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예상하셨듯이 여기저기 쥐 파먹은 것처럼 머리가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 머리를 가지고 다음 날 학교에 어떻게 가나 걱정하다 결국에는 저녁 늦게 이발소를 찾았습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고 이발소 주인아저씨가 웃더군요. 많이 창피했지요. 그 헤어 커터 빗은 그 후로 거들떠본 적도 없습니다.


집에서 강아지 미용을 하니 그때가 생각이 납니다. 다니던 동물병원에서 미용하면 깔끔하고 예쁜 강아지가 되는데, 집에서 미용하면 제가 셀프 이발했던 그때처럼 좌우 비대칭 엉망 헤어 패션이 되지요. 그런데도 강아지는 그렇게 만들어 놓은 아마추어 미용사에게 뭐라 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니 당연하지요. 개들은 자신의 현재 상태 얼굴을 본 적이 없잖아요. 고릴라처럼 지능이 높은 동물 일부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자기인 줄 인식하기도 한다지만, 우리 집 강아지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자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봅니다.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보지요. 만약 거울이 없었다면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그렇게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겠지요. 기껏해야 물에 비친 흔들리는 얼굴이 자신의 모습이려니 하고 살았겠지요.


그렇게 자기 모습을 거울을 통해 자세히 볼 수 있으니, 남의 모습과 비교하게 되었겠지요. ‘재는 나보다 날씬하고 예쁘고 피부도 돋보여.’ 거울이 없었다면 이런 외모 비교도 없었을까요.


거울은 인류에게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 놀라운 발명품입니다. 하지만 거울로 인해 남과의 비교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비교로 인한 괴로움의 씨앗이 거기에서 출발한 듯싶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하는 우리 집 강아지는 자신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다고 생각할까요. 저희 강아지가 주로 보는 것은 우리들이니, 저 작은 뇌에는 우리들 모습만 주로 남아있을 것 같아요. 자신의 얼굴 기억은 거의 없이.


나중에 은퇴하고 좀 더 자유로운 때가 되면 얼마간 거울 없이 살아봐야겠습니다. 평생을 거울 한 번 제대로 보지 않고 살아가는 강아지처럼 내 모습에서 자유로워지는 시간을 겪고 싶어지는군요. 그때까지 저 강아지가 곁에 있어 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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