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바탕화면 지우고
지금 사고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억의 늪에 빠져 있는가. 사고나 기억 활동이나 다 비슷하고 서로 엉켜 있는 것 같은데 우메다 사토시는 <말이 무기다>라는 책에서 이를 구분합니다.
‘머릿속은 과거의 수많은 사건과 그에 따른 감정을 기억하는 기억 영역과 새로운 대상을 생각하는 사고 영역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를 컴퓨터에 비유하여 기억 영역을 하드디스크에, 사고 영역을 CPU(중앙처리장치)라 설명하지요. 그러면서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점을 명확히 지적합니다.
‘생각이라는 행위는 머리를 회전시키므로 사고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컴퓨터의 CPU가 단독으로 기능하지 않고 항상 하드디스크와 정보를 주고받는 것처럼 사람도 무언가를 생각할 때 자신의 기억을 더듬으며 생각한다. 즉 ‘생각이 전혀 뻗어 나가지 않는 상태’란 사고 영역을 사용한다고 착각하면서 기억 영역을 맴돌며 전전하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하드디스크 곳곳에 깔려있는 파일들을 찾고 읽으면서 그 활동을 사고 활동을 하고 있다고 오해하지요. 왜 이렇게 생각을 깊고 오래 하는데 해결은 안 되고 머릿속은 더 복잡해지기만 할까 자책하기도 합니다.
짧은 과제물 하나 쓰려다가 몇 시간 째 자료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렸던 적이 없으신지요. 그렇게 자료의 늪에 빠져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나요. 한 장도 못 쓰고 있으면서 깊게 그 문제를 생각했다고 자위하곤 하지요.
표정훈 작가는 페이스북에서 ‘자료질에 탐닉하면 글을 쓰기 어렵다’고 경험적 조언을 하지요. 하드디스크 파일만 이것저것 열어보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자기 글 한 줄도 쓰기 어렵습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자신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뿐만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여러 자료가 널려 있지요. 자료의 세계는 무한의 가상세계이고, 자기가 쓸 글의 세계는 A4 몇 장의 유한의 현실세계이지요. 무한의 세계에서 헤매기만 하다가는 유한의 세계에서 종이 한 장도 출력을 못 하고 맙니다.
CPU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하드디스크의 파일을 이용해야 하지요. 하지만 커다란 파일을 여러 개 동시에 열어 놓은 상태에서 컴퓨터를 돌리기 시작하면 CPU는 퍼져 버리지요. 중요한 작업을 하려면 일단 화면에 떠 있는 필요 없는 파일들을 종료하고 깨끗한 화면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잡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1분이라도 고요히 숨을 고른다면 그것은 컴퓨터에 지저분하게 열어놓은 파일들을 닫고 바탕화면을 깨끗이 지우는 것에 해당하지요. 학교 수업 시간마다 거창하게 명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수업 시작에 앞서 눈을 감고 1분의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 고요한 시간이 학생들 뇌에 깔렸던 여러 파일들을 닫고 깨끗한 바탕화면 상태에서 CPU를 작동하는 시작 경험이 되지 않을까요.
생각질에 빠져도 문제지만 기억질이나 자료질에 빠져 있으면서 나는 깊게 사고질하고 있다고 오판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지요. 기억질과 자료질은 핵심과 연결되어 있을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냥 널려진 자료와 기억은 컴퓨터 화면에 필요 없이 열려있는 파일과 같습니다. 깨끗하게 닫아 정리하고 일을 시작해야 하지요. 머릿속이 무엇인가 가득 차 무겁고 원활히 돌아가지 않을 때 새로운 것이 입력이나 출력되기 어렵겠지요.
<말이 무기다>의 저자 우메다 사토시는 생각이 맴돌기만 할 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답은 간단하다. 기억 영역에 있는 것을 일단 밖으로 끄집어내서 생각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면의 말을 종이에 적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문자화된 내면의 말을 중심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더하면 된다. 이런 단계를 밟지 않으면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지난 기억을 뒤적이는 상태가 계속되어 언제까지고 같은 자리만 맴돌게 된다.’
기억 영역에서 맴돌지 말고 나오세요. 핵심 기억을 출력하고 확장 심화하는 것이 사고 영역입니다. 같은 생각에서 빙빙 맴도는 것은 사고 영역이 아니라 기억의 늪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기억의 영역에 갇혀있지 말고 끄집어내어 사고의 영역으로 옮길 때 창의적 활동이 이루어지지요.
지금 기억 영역에 있나요, 사고 영역에 있나요? 둘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겠지만, 하드디스크를 돌리고만 있다면 그것은 과부하일 것이고, 관련 자료 없이 CPU만 돌리고 있다면 그것은 공회전이겠지요. 하드디스크에서 파일만 찾아 헤매지 말고 한두 개 파일로 CPU를 돌려 보세요. 우선 바탕화면 깨끗하게 지우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