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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LK Apr 21. 2017

"나도 잡아가라"

육군은 동성애자 사냥을 즉각 중단하라

 오늘은 너무 참담한 소식을 전해야 해서 그런지 너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저도 이 사건을 지난주에 처음 접하고 설마 동성애자 군인을 구속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는데, 한국 시간으로 4월 17일 구속이 결정되었다고 합니다. 제가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것은 군인권센터를 통해서였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터인 윤일병 사건을 국방부의 온갖 은폐 시도를 물리치고 결국 세상에 밝혀낸 비정부기구입니다. 민간인의 인권도 속절없이 후퇴하고 있는 한국에서 군인, 특히 병사의 인권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는지도 의문스러울 지경이지요.  이 사건은 올해 초, 현역 병사 1명이 간부와 성관계를 하는 동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군형법 상 추행죄와 불법적인 동영상 유포 등을 고려해보면 그 병사는 아마 처벌을 받아야겠지요. 물론 군형법 상 추행죄가 동성의 경우 합의에 의한 성관계도 처벌한다는 “위헌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겠지만 말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이 과정에서 취득한 수사정보를 바탕으로 피의자의 휴대폰 포렌식을 통해 다른 동성애자 군인들을 무차별로 찾아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수사 대상자에게 게이 데이팅 앱에 접속하도록 한 뒤, 동성애자 군인들을 찾아내려는 함정수사까지 폈다는 군요. 더욱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반인권적 수사를 바로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적극적으로 지시했다는 정황까지 나오고 있다는 겁니다. 수사 중반에 송치도 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기소 지침을 하달하고 이 사건들을 묶어서 하나로 처리하라는 주문이 육군 법무실 고등검찰부에서 내려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혐오스러운 인권유린적 작태로 4월 25일 전역을 앞두고 있던 육군의 A대위가 구속되었습니다. 예상대로 언론은 이 사건을 제대로 보도하기는 커녕, 그간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덧씌워졌던, “동성애자 군인이 군내에 잠입하여 추행을 하고 다닌다”는 악의적인 거짓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구속된 A대위는 동영상 유포와는 아무 관계가 없을 뿐더러, 영내에서 성관계를 하지도 않았습니다. 더구나 이미 압수수색을 당해 증거 인멸의 염려도 없고, 영내 거주 군인으로서 도주의 우려도 없습니다. 며칠 전, 전 여자친구를 감금하고 폭행했던 육군 소령은 불구속 수사를 하고 “합의”에 의한, 그것도 영내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았던 동성애자 군인은 구속하다니요? 정말 너무 어이가 없는 이 상황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입니다. 한국 군대가 그간 군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 얼마나 문제 의식을 갖고 대처해왔나요? 한국군 내에서 벌어지는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사건들이 얼마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은폐되는지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봅니다. 그런 한국 군인이 정작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중 아무것도 저지르지 않은 동성애자 군인을 동성 간의 관계를 이유로 잡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A대위가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지금 대학가, 특히 서강대에서는 “나도 잡아가라”는 동성애자들의 대자보가 연이어 나붙고 있다고 합니다. 대자보를 하나하나 읽어보니 더욱 마음이 무겁고 참담하기만 합니다. 2년 전인 2015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역사적인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이 내려졌던 것을 이곳에서 공부하는 중에 직접 목격해서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제가 살아있을 때 한국에서도 이러한 판결을 볼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었죠. 물론 미국도 이러한 과정이 결코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유럽에 비하면 미국은 동성애나 동성결혼에 대한 인식이 훨씬 처참한 수준이었죠. 2000년대 부시 행정부 때만해도 유력 정치인이 동성결혼 합법화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히 결혼 합법화나, 성적지향을 근거로 불편한 차별행위를 가하는 수준을 넘어선 문제입니다. 성적지향 하나만으로 사람을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최근 체첸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동성애자를 감금하고 고문하는 지옥같은 상황의 전주곡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 체첸 당국자의 발언이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우리 땅에는 게이가 없다”고요. 애초에 동성애자의 성관계를 부정하고 처벌하겠다는 것이 이들을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 존재자체를 부정해버리겠다는 발상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에게도 간곡히 부탁합니다. 군인권센터에서는 현재 이 사건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위해 후원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A대위의 석방청원 100만 명 서명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벌써 1,000명에 가까운 분들이 후원에 참여해주셨고 후원금액은 목표치에 거의 도달했다고 합니다. https://www.socialfunch.org/lgbtarmy  이곳에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도움을 주십시오.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려주시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윤일병 사건도 그렇게 국방부의 은폐 기도를 물리치고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하며 내린 판결문 마지막 문장은 “They ask for equal dignity in the eyes of the law. The Constitution grants them that right.”로 끝납니다. “법 앞에서 동등한 존엄”은 이성애자나 동성애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동성 간의 성적 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는 군형법 92조 6항도 위헌임이 명백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하루속히 위헌으로 규정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A대위 어머니가 석방을 호소하며 쓰신 편지를 같이 덧붙입니다. 전역을 앞두고 겪게된 물질적인 피해는 차치하고서라도 가장 중요하고 신중하게 해야 할 부모님에 대한 커밍아웃을 이렇게 “아웃팅”되는 방식으로 하게 되버린 A대위의 정신적인 충격은 누가, 그리고 어떻게 보상할 수 있을까요. 평범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짓밟는 육군, 그리고 그 참모총장이 기독교인이자 기독교군인연합회의 회장이라는 사실에 그저 냉소가 나올 뿐입니다. 장준규 참모총장은 과연 기독교인으로서 예수의 가르침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요? 그 시대와 사회에서 가장 변방에 있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 소외되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예수의 삶은 그에게 아무 의미도 없을 겁니다. 그저 구약성서에 나오는 문구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고 믿어서 정말 동성애자를 그렇게 색출해야 했다면, 정말 구약성서에 나오는 모든 문구를 그대로 모든 삶에서 따라하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아마 그렇다면 그 사람은 단 1초도 제대로 살 수 없을 겁니다.


지난 4월 13일 아침에 제 아들이 군인들에게 체포당했습니다.

점심 쯤 이었을까요. 일을 보러 나가던 중에 TV 뉴스 자막에 군대에서 동성애자들을 잡아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는 걸 봤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런 일도 다 벌어지고 별 걸 다하는구나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아들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아들은 서울에 출장을 와있었어요. 무슨 일이 생겼나 싶었는데 목소리가 많이 떨렸습니다.

          아들은 자기가 헌병들에게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아까 봤던 뉴스가 생각났어요. 그 땐 정말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들이 뉴스의 주인공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요. 정신이 없어 무슨 말을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진 않네요. 변호사가 와있다고, 수사 받을 거라는 이야기 정도를 들었습니다.

          저녁쯤에 변호사님께 연락을 받고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문 기사도 자세히 봤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란 분이 동성애자 군인들을 다 찾아내서 벌주라는 명령을 내리셨다더군요. 뉴스를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어 가는 것 같은데 굳이 왜 이 시기에 이런 일을 벌일까 싶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우리 아들처럼 잡혀가진 않았지만 수사를 받은 군인들이 많다는 사실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누굴 때린 것도 아니고, 술을 먹고 행패를 부리거나 성폭행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요.

          오늘은 심지어 구속영장까지 청구했다고 합니다. 나쁜 짓을 한 높은 사람들이나 받는 줄 알았던 구속영장을 받았다니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납니다. 정작 나쁜 짓 한 사람들은 구속이 잘 되지도 않는데, 대체 우리 아들은 무슨 죄가 있다고 감옥에까지 가둬서 수사를 한단 말입니까?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저는 아들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문제가 문제다보니 친척들에게도 이야기를 못하겠고, 아들은 잡혀갔다는데 어디 물어볼 데도 없고 한참 속앓이를 했어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녀석이 혼자 자라 외로웠던 건 아닌지,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닌지 지나간 날들이 다 생각이 나고 마음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아들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지 못해 잘 모르고, 갑자기 알게 된 사실에 혼란스럽긴 하지만 아들이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죄가 아니라는 거, 그게 부끄러운 일 아니라는 것쯤은 압니다. 아들은 언제나 우리 부부의 자랑이었어요.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남들처럼 많은 걸 해주진 못했지만 정말 멋지게 잘 자라주었어요. 군복무도 정말 착실하게 해왔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번 사건으로 힘들어하는 와중에 상관들께서 여러모로 많이 위로해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거기서도 잘 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혼자 마음고생 했을 아이 생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어디 말 할 곳도 마땅치 않았을텐데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주시고 아들을 도와주시는 군인권센터가 정말 고맙습니다. 군인권센터 분들께서 하시는 피해자 지원 모금에 정말 많은 분들께서 도움을 주셨다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무슨 말로 이 감사한 마음을 다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뭐라도 돕고 싶은 마음이에요. 자랑스런 군인으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 아들을 남들과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범죄자로 만든 장준규 육군참모총장이 꼭 책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아들 말고도 어딘가에서 같은 고초를 겪고 있을 우리 아들들에게 제 몇 마디 말이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염치 불구하고 많은 분들께 저희 아들 구속의 부당함을 호소 드립니다. 부디 저 뿐 아니라 상식 있는 모든 분들께서 이 어이없는 구속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재판부에 보여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도 아들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수신자부담전화도 제대로 못 받고, 세 번째 전화가 걸려 올 때서야 겨우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리고 속 깊은 녀석이 엄마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을까요. 변호사님께 전해 들으니 엄마가 놀랐을까봐 걱정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꼭 전해 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아들, 엄마 걱정 안 해도 돼.

엄마는 언제나 네 편이니까.

많이 사랑해. 힘내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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