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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숑 Nov 17. 2019

트레이너라는 이름으로

운동을 잠깐 쉬던 그 2주 동안 결심한 것이 있었다. 트레이너 바꾸기. 나는 오래전부터 트레이너를 바꿔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맨 처음 내 몸의 상태가 어땠는지 알던 사람이자, 내 변화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니까. 누구보다 내게 적합한 트레이닝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비슷한 것이 나를 발목 잡았다. 


오랜시간 그는 나에게 운동을 가르쳐준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들었다. 지금 몇 킬로의 중량으로 운동하는지, 개수와 무게는 어떻게 늘려가고 줄이는 건지, 이 자세의 자극점은 어디인지, 운동계획은 어떻게 짜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오로지 그가 설정해주는 무게대로, 그저 하라는 대로만 하다 보니 정작 나는 지금 내가 어떤 레벨의 운동을 하는지 아무것도 몰랐다. 


그마저도 내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맨몸 위주의 유산소성 운동을 주로 시켰는데, 버피나 로잉머신 같은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동작을 시키는 바람에 언제나 수업의 만족도가 낮았다. 결국 반년 가까이 운동을 배웠지만 혼자 운동하는 능력은 조금도 키워지지 않았다. 피티를 받는 날이 아니면 어떤 운동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헤맸고 그럴 때면 언제나 런닝머신 위로 올라갔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그는 정신적으로도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처음 내게 영업(PT를 받게 하기 위한 여러 가지 설득)할 때만 해도 그는 '개념 있어 보이는' 말을 늘어놓곤 했다. 

"모든 사람이 몸짱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이국주 보세요. 본인이 그렇게 만족하고 자신감 있게 사니까 사람들도 다 좋아하잖아요. (내가 별 감응이 없자) 이국주 싫어하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예요?"

"네! 제가 직업이 트레이너이면서 이런 말 하는 게 웃기게 들릴 수도 있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니까 회원님도 너무 자신감 없이 지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때도 그가 진심이라고 하는 열변을 믿진 않았지만, 그런 말들 이면에 숨겨진 그의 진짜 생각은 곧 탄로 났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들 속에는 여자가 운동하는 것은 당연히 다이어트가 목적이 되어야 하고, 여자라면 이런 몸을 가져야 한다는 전형적인 환상 같은 것이 심어져 있었다. 여성 보디빌더를 두고 여자가 저렇게 근육 있는 거 이해 안 된다, 나는 다리에 알 하나 없이 올곧게 뻗은 (아이돌 같은) 다리를 좋아한다. 같은 말들. 그는 결국 자신의 실적을 위해 말만 그렇게 한 거였다. 아니 어쩌면 자기는 진짜 그런 선량한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위험한 부류의 인간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게 자신감 없이 지내지 말라 해놓고, 누구보다 내가 뚱뚱하기 때문에 자신 없이 지내는 것을 이해할 그런 사람이라는걸.


아닌 척하며 음흉하게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 앞에서 운동하는 것이 점점 더 부담됐다. 특히 그는 개인 운동하고 있는 회원들을 두고 저렇게 운동하는 거 틀렸네, 몸이 이상하네, 같은 험담을 내게 잘 늘어놓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생각했다. 내가 개인 운동할 때 어떻게 생각할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험담하지 않을까. 내 담당 트레이너뿐만 아니라 다른 트레이너들이 지켜보는 것도 부담이 됐다. 분명 내 자세에 대해서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야. 지금 내 뱃살, 힘 줄 때마다 튀어나오는 종아리 알도 판단 당하고 있겠지. 옷을 갈아입고 나오면 어김없이 그는 체크한다는 명분으로 세세하게 내 몸을 훑었다. 그 짧은 스캔의 시간 동안 나는 몸이 쪼그라드는 기분에 시달려야 했다.      


피티를 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트레이너에게 내 몸의 권한을 넘겨준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어떤 약속 같은 거. 내가 올바르지 않은 자세로 운동했을 때 터치하고 바로 잡아줄 수 있음, 내 몸을 전부 샅샅이 쳐다보고 관찰할 수 있음 같은 권한. 더 나아가 살을 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비롯된 절대적 신뢰를 받는 것까지 포함한다. 물론 이상한 목적이나 욕망 충족에 이용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자세를 바로잡아주기 위한다는 전제의 가벼운 터치나 관찰은 암묵적으로 인정된다. 그래야 '교정'이 이루어지니까. 그런 특징 때문에 나는 어느새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의 말과 행동에 휘둘렸다. 이상적인 몸매에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 그에겐 하나의 포트폴리오 같은 존재였던 나는 자주 억압당했다. 


어쩌면 진짜 인간적인 코칭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어김없이 짓밟혔다. 그때부터 그가 하는 트레이닝은 누구나 아는 방식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양 조절 하세요, 그런 거 먹으면 안 돼요, 유산소 많이 해주세요. 같은 개개인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이고 전형적인 방법.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나를 돌보지 않은 가혹한 방식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이, 그의 생각이 사회적 기준과 정확하게 닮아 있었기 때문에. 그 기준이 꼭 정답인 것만 같았다. 내가 좀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길처럼 보였으니까. 회원님은 뼈가 얇아서 살 빼면 더 예쁠 것 같아요. 나는 저항할 여력도 없이 수긍하고 말았다. 살을 더 빼야지, 많이 빼야지.      


나와 같은 트레이너에게 피티를 받고 있던 언니도 상황은 똑같았다. 언니는 근육질의 몸을 선호했는데, 트레이너는 그런 몸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주 충돌했다. 자전거, 등산, 마라톤을 즐기는 언니에게 종아리 알 생기지 않게 하려면 그런 거 끊어야 한다, 종아리 알 없애려면 한 달 동안 휠체어 타고 다니면 된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장난이랍시고 늘어놓았다. 언니는 자기가 그렇게 좋아하는 운동을 끊어서라도 알 없는 다리가 되는 게 중요한 거냐며 열을 잔뜩 냈다. 어느 날은 주말에 마라톤을 나간다고 얘기하는 언니의 다리를 보며 트레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허벅지 너무 두꺼운데. 한 번쯤 예쁜 다리로 살아보고 싶지 않아요?" 언니는 그 말로부터 회복되지 못했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이랍시고 한 말이었지만 언니에겐 낙인찍히는 말과 다름 없었다.      


나는 점점 더 화가 났다. 그에게 오랜 시간 시달리면서 어느새 운동은 노동과 같은 것이 되어 있었고, 그가 말하는 예쁜 몸은 나의 목표가 되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하던 순수한 열정 따위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렇게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이 관계를 끊어내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자주 생각했다. 이건 가스라이팅이다. 상대적으로 권위를 지닌 사람이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 그가 내게 저지른 행위는 이러했다. 그를 떠나면 다시 살이 찔 것만 같은 불안감 조성, 자기에게 오롯이 의지하게 만들기, 예쁜 몸에 대한 세뇌, 그 몸을 만들어 주겠다는 허황된 희망 심어주기. 정확한 판단력을 잃은 나는 소위 양아치 같은 트레이너들에 비해 이 정도면 괜찮은 걸지도 모른다는 합리화를 하면서 버텼다. 


나에게 2주간의 쉼은 그러한 것들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치워버릴 수 있다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이보다 더 양아치 같은 인간은 어딜 가도 없을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다. 나는 그에게 더는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그와 마지막 수업 날. 그는 당연히 내가 재연장할 것으로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웃기지도 않은 자신감.

"쌤, 저 이번엔 연장 못 할 것 같아요."

그의 동공이 잠깐 흔들렸다. 그리곤 이내 쿨한 척하며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끝이었다. 반년 가까이 함께 운동했던 사이인데, 회원의 앞날을 격려조차 해주지 못하는 딱 그만큼의 인간이었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자 나는 마치 데이트폭력에 시달렸던 사람과 같은 후유증이 남았다. 심지어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는데도 말이다. 매 맞는 아내, 데이트 폭력에 시달리는 여자들이 그 상황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트레이너를 끊어내지 못했던 이유와 어렴풋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권위를 획득한 남성이 휘두르는 신체적, 비신체적 폭력 그리고 그 폭력을 합리화시키는 사회적인 옹호. 이제는 안다. 그 시스템 아래에서라면 어떤 사람이라도 무기력하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런 약자가 되는 일은 예기치 못하게 누구에게라도 찾아온다는 것을. 그뿐 아니라 때가되면 그 상황을 끊어낼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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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한 여자라 자주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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