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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숑 Sep 19. 2021

오이 냄새

엄마랑 같은 냄새가 나던 그때

 1998년 엄마는 밤마다 목욕탕으로 출근했다. 그곳에서 엄마가 하는 일은 청소. 엄마는 일하러 갈 때마다 항상 날 데리고 다녔다. 아마도 나를 공짜로 씻길 수 있고 심심하지 않게 일할 수 있어서 그랬겠지. 우리는 오후 6시까지 목욕탕으로 가야 했다. 목욕탕 입구에 서면 아이보리색 벽돌에 빨간색 글씨로 '금수탕'이라고 쓰인 간판이 제일 먼저 보였다. 손님이 모두 빠져나간 내부는 어두침침했고, 셔터는 반쯤 내려가 있었다. 엄마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가면 나도 슬금슬금 따라 들어갔다. 매표소에는 목욕탕 주인아주머니가 언제나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다. 매출을 확인하는 듯 안경을 코끝에 반쯤 걸쳐놓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엄마는 흥겹게 "안녕하세요" 인사하며 여탕으로 들어갔고, 나는 개미만큼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무래도 수줍음이 많은 7살이었다. 


여탕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습하고 눅눅한 오이 냄새가 났다. 아무도 없는 여탕에는 드라이기 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누군가 뛰는 소리, 칭얼대는 소리 같은 것이 삭제된 채 고요하기만 했다. 널따란 평상 위엔 언제나 덜 마른 물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맨 끝 사물함에 옷을 넣어 두는 것을 좋아했다. 그곳이 제일 안정적이니까. 탕으로 들어가는 맞은편에는 냉장고가 있었는데, 마감하고 난 뒤에는 항상 냉장고 문이 잠겨 있었다. 슈퍼 백, 미에로화이바, 바나나 우유 같은 음료수들이 잔뜩 들어 있는데 그림의 떡이었다. 그게 어찌나 먹고 싶은지 매번 냉장고에 무슨 음료수가 들어가고 나가는지 스캔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나는 옷을 벗고, 빨간색 고무줄이 달린 열쇠로 머리를 야무지게 묶었다. 그 사이 엄마는 팔뚝만큼 두껍고 탕 안을 한 바퀴는 휘감을 수 있을 만큼 길고 긴 호스를 연결했다. 


엄마는 팬티 차림에 고무장갑을 끼고 손님들이 쓰고 쌓아 둔 의자와 세숫대야를 하나하나 꺼내서 비누칠하고, 곳곳에 비치해 둔 휴지통을 비웠다. 머리카락으로 하수구가 막혔으면 깨끗하게 정리하고 모든 자리, 거울, 샤워기까지 다 비누칠하고 호스로 그 비눗물을 닦아냈다. 물론 냉탕, 온탕, 열탕까지 물을 비우고 그 안을 닦아내야 했는데 그건 맨 마지막에 했다. 내가 놀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바가지를 햄버거 모양으로 겹친 다음에 그걸 잡고 내 키보다 훨씬 수심이 깊고 소름 돋게 차가운 냉탕에서 수영했다. 아무리 첨벙첨벙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맘껏 물장구를 쳤다.


냉탕에서 너무 많이 놀아서 추워지면 온탕으로 들어가 몸을 녹였다. 그러다 조금 심심해지면 사우나실에 들어가서 소금을 온몸에 바르면서 놀았다. 처음엔 까칠까칠하다가, 사르륵 녹아 없어지는 느낌이 좋아서 최대한 듬뿍 떠서 온몸에 발랐다. 이렇게 아무리 놀고 놀아도 엄마가 할 일은 끝이 안 났다. 엄마는 때가 되면 다 놀았냐고 물었고, 그 소리는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렇다고 대답하면 엄마는 세 개의 탕에 물을 빼러 들어갔다. 꾸르룩 꾸룩꾸르룩 물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때때로 엄마를 도와주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그 뱀 같은 호스를 손에 쥐고 엄마가 곳곳에 칠해둔 비눗물을 걷어내는 일을 했다. 생각보다 호스를 다루는 게 쉽지가 않았다. 나는 마구잡이로 천장까지 물을 뿌려댔다. 그럼 꼭 비가 오는 것처럼 똑똑 머리 위로 물이 떨어졌다. 엄마는 안 되겠는지 깨끗하게 씻은 의자와 세숫대야를 내오면서 지루해하는 나를 먼저 씻기기 시작했다. 때를 뽀득뽀득 벗기고, 그 위에 거품을 한 번 더 덮어서 씻어내고, 머리도 야무지게 감아야 통과였다. 그러면서 엄마는 "머리 말리고, 엄마 지갑에서 백 원짜리 가져다가 뭐 사 먹고 있어" 했다. 목욕탕 냉장고가 잠겨 있어서 아쉬워하는 걸 눈치챈 엄마는 항상 그렇게 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뭘 사달라고 하질 않으니까. 엄마는 그걸 기특해하기도, 짠해하기도 했다.  


나는 신나게 옷을 입고, 아무리 말려도 안 마르는 머리는 대충 말려 버리고 금수탕을 들어올 때랑 똑같은 방법으로 빠져나왔다. 시간은 저녁 8시. 배가 고픈 나는 분식집으로 향했다. 나는 늘 떡꼬치를 먹었다. 쪼글쪼글해진 손으로 받아 든 떡꼬치를 그 자리에 서서 호호 불어먹으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르게 행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있으면 엄마가 멀리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럼 나는 입술에 양념을 묻히고 뛰어가서 나처럼 똑같이 쪼글쪼글해진 엄마 손을 맞잡았다. 엄마는 뭐 먹었냐고 물어봤고, 떡꼬치!라고 대답하면, 항상 그런 것만 먹는다고 덜 마른 머리에 콩하고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가방 주변을 강아지처럼 뛰어다니다 보면 금방 우리 집이 보였다. 나랑 엄마는 비슷한 냄새를 풍기며 집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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