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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숑 Oct 18. 2021

애틋한 비밀

그리고 수련회

선생님이 수련회 날짜를 공지하자마자,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옷을 입고 가지, 버스에선 누구랑 같이 앉지, 방 배정도 중요한데. 나는 뒤를 돌아 유정을 찾았다. 교실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챙-챙-챙. 서로 최선을 다해 주고받은 눈빛은 금속성의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담임 선생님의 종례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우르르 모여 계획을 짰다. 


반장한테 우리끼리 방을 쓰게 해달라고 얘기하자. 버스에선 누구랑 앉을지, 어느 자리에 앉을지, 친한 무리는 어떻게 가깝게 앉을지 열띤 토론을 했다. 그 밖에도 교실은 그날 생리하는 날이라고 울상을 짓고 있는 애, 수련회 따위 아무 관심 없는 애, 밤에 무슨 과자를 먹을지 고민하고 있는 애, 동대문으로 옷을 사러 가자고 친구를 꼬시고 있는 애들로 시끌벅적했다. 어쨌든 대부분 들떠 보였다. 이번이 중학교 마지막 수련회니까. 왠지 더 애틋한 것 같았다. 


수련회 가는 날 아침은 확인해야 할 것이 많았다. 일어나자마자 전 날 골라 놓은 옷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야 하고, 앞으로 옆으로 뒤로 돌면서 엄마한테 예쁘냐고 물어봐야 한다. 대충 대답한 예쁘단 말로는 나를 납득시킬 수 없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니까. 마지막으로 버스에서 유정이랑 같이 먹을 과자를 챙기면 준비 완료. 그리고 음흉한 눈빛으로 엄마를 한번 쳐다보기. 지갑에서 만 원 한 장을 꺼내며 다가오는 엄마를 반갑게 맞이하는 일만 남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2박 3일 치 짐이 든 가방을 둘러메고 총알처럼 튀어 나간다. 잘 다녀올게!  


운동장에 애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교복을 벗은 친구들은 뭔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안녕!’하는 인사 뒤에 너는 무슨 옷을 입었나, 무슨 가방을 메고 왔나 서로를 구경하기 바빴다. 우리는 일렬종대로 섰다. 심심해진 나는 운동장 바닥을 툭툭 쳤다. 흙먼지가 일었다. 소란스러운 운동장. 각 반 선생님은 돌아다니면서 조용히 하라고 목청껏 외쳤지만, 쉽게 우리의 들뜬 마음을 가라앉힐 순 없었다. 곧이어 관광버스가 차례차례 운동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로 좋은 자리에 앉으려고 우르르 버스로 달려들었다. 나는 유정의 뒤를 바짝 쫓았다. 자리 쟁탈전에서 승리한 우리는 양 손을 맞잡고 흔들었다. 같이 앉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선생님은 지친 목소리로 안전벨트를 매라고 했다. 


수련회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강당에 모였다. 우리는 앞 뒤로 앉은 친구들에게 말을 걸고, 장난을 치고, 그 소리는 모이고 모여서 여기저기로 메아리쳤다. 그때 빨간 모자를 쓴 교관이 나타났다. 무언가를 안간힘을 다해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고요해졌다. 그는 총 10반의 학생들에게 여기 머무는 동안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줬다. 강당에서 떠드는 거 금지. 밤늦게까지 자지 않는 것 금지. 활동 중에 이탈하는 것도 금지. 술이나 담배를 가져온 건 처벌. 이 모든 사항을 어길 시에는 엄벌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아주 묵직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아니 밤늦게까지 놀 수 없다니. 그게 수련회의 하이라이트인데. 여기저기서 탄식이 쏟아졌다. 조용조용! 교관은 한방에 백여 명의 학생들을 제압했다. 그리고 모두 눈을 감게 했다. 지금이라도 술과 담배를 갖고 온 사람은 손을 들라했다. 자수하면 용서하겠다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교관은 한숨을 쉬더니 눈을 뜨라고 한 뒤 모두 밖에 나가 있으라고 했다. 가방 검사의 시간이었다. 


애들은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 속옷도 있고, 생리대도 있는데 그렇게 맘대로 열어봐도 되는 거냐고. 정말 짜증 난다고. “야, 근데 걔 있잖아. 이번에 프링글스 통에 술 가져온다고 했잖아. 안 들킬까?” 행여나 옆에 서 있는 선생님 귀에 들어갈까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짐 검사가 끝나고 다시 강당으로 모였다. 교관은 우리에게 정말 실망스럽다고 입을 뗐다. 몇몇 개의 물건은 압수됐으며 그 물건의 주인은 따로 면담이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우리는 공포에 질린 얼굴로 술을 가져왔을 친구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어떡해. 유정이 작게 읊조렸다. 교관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녁 먹을 때까지 방에서 쉬다가 시간 맞춰 식당으로 집합하도록.” 


수련회는 항상 이렇다니까. 교관 진짜 재수 없어. 김이 팍 샌 우리는 터벅터벅 방으로 올라갔다. 키를 열고 들어가니 두 개의 방, 큰 거실이 있었다. 다 같이 우와아 탄성을 내질렀다. 나무가 울창한 곳이었다. 애들은 침대가 있는 방, 넓은 방, 화장실이 있는 방을 서로 찜하기 시작했다. 항상 한 발 느렸던 유정과 나는 거실에 이불을 펴고 자는 거 당첨. 그래도 같이 잘 수 있으니까. 가방을 거실 한구석에 내려놓았다. 


저녁이면 제일 긴장되는 건 저녁 점호 시간이었다. 각 방마다 반장을 뽑고 지금 방에 몇 명이 있는지 보고하는 시간이다. 그때 우리는 대열을 갖춰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한다. 만약 반장의 목소리가 작거나, 앉아 있는 인원이 흐트러지거나, 장난을 치면 '제대로' 할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한다. 큰 목소리로 이상 없음을 알리는 반장은 귀랑 목이 새빨개졌다. 부끄러워서 괴로워하는 눈치였다. 그 시간이 끝나고 나면 진짜 하기 싫다고 울상을 짓곤 했다. 나 같아도 정말 싫을 거야. 점호까지 통과하고 나면 비로소 우리만의 진짜 자유시간이 찾아왔다. 저녁 늦게까지 놀지 않는 게 규칙이었으나, 우리는 모든 방의 불을 끄고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서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수련회의 하이라이트 진실게임 시간이었다. 


돌아가면서 각자 자기의 비밀을 얘기하기로 했다. 정적이 찾아왔다. 누가 먼저 얘기해야 할지 몰라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때 정은이 먼저 말을 꺼냈다. “우리 부모님은 내가 초등학생 때 이혼했어.” 그리고 순식간에 눈물을 터트렸다. 우리는 정은과 비슷한 속도로 따라 울기 시작했다. 위로라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랐던 16살의 우리는 정은과 제일 가깝게 앉아 있는 사람이 정은에게 휴지를 건넸고,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침묵을 유지했다.


곧이어 은하도 말했다. "나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어. 할머니가 이건 어디 가서 말하면 창피한 거라고 남한테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어. 작년까지만 해도 꼭꼭 숨기면서 지냈어." 은하의 얼굴은 덤덤했다. 정은은 은하의 말을 듣고 다시 조금씩 울기 시작했다. 나는 핸드폰 불빛이 꺼진 틈을 타 눈물을 닦았다. 다음은 내 차례였다. "우리 엄마는 나이도 많은 데다 전단지 붙이는 일을 해. 그게 너무 창피해서 학교에 절대 못 오게 했어." 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 엄청 못됐지?" 


엄마는 전단지 붙이는 일을 창피해했다. 못 배워서 하는 일이니 남사스럽다면서. 가끔씩이지만 길가에 전단지를 붙였단 이유로 경찰서에 가는 일도 있었다. 엄마는 내게 누구라도 엄마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마트 계산원이라고 대답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래서  나는 전단지를 붙이는 건 창피한 것, 숨겨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은하 할머니가 은하한테 그랬던 것처럼.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에만 구멍을 낸 장갑, 테이프와 종이 꾸러미를 들고 팔토시를 낀 엄마가 내 주변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 면담 때가 되면 나는 엄마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부모님이 바쁘셔서 못 온다는 서류를 제출했다. 엄마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내게 학교에 대해서 묻는 법이 없었다. 그저 매일 저녁 발바닥에서 불이 나는 것 같다며 찬 물에 발을 담글 뿐이었다. 엄마는 평발이라 남들보다 발이 빨리 아팠다. 그래서 엄마의 발바닥은 늘 새빨갰다. 오늘은 어디 아파트 몇 동을 탔네, 경비가 문을 안 열어줘서 고생했네 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는 움찔했다. 밤이면 어디선가 테이프를 뚝뚝 끊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진실게임이 시작되자, 나는 엄마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동안 누군가가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를 나 혼자 너무 오래 품고 있어서. 내가 무엇을 감추고, 어떤 면만 보여주고 있었는지 밝히고 나면, 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알고 싶어서. 그때 유정이 내게 휴지를 건넸다. 정은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은하는 핸드폰 불빛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고, 유정은 내 곁에 꼭 붙어 있었다. 내 세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이 놀라워 서럽게 울다가 크게 코를 풀었다. 


수련회를 다녀온 뒤 우리는 그날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마치 꿈이라도 꿨다는 듯. 나는 그 애틋한 비밀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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