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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숑 Oct 22. 2021

배웅하는 시간

그렇게 서로에게 손짓했다

"다녀오세요."

매주 일요일 저녁 6시 20분.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아빠를 배웅하며 나는 최대한 덤덤하게 인사했다. 그마저도 바쁘다는 핑계로 한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배웅이었다. 가방을 들쳐 메던 아빠는 뭐가 들어서 이렇게 무겁냐고 짜증을 냈다. 엄마가 아빠 몰래 떡이니 빵이니 하는 것들을 잔뜩 넣어 둔 게 분명했다. 힘없이 걸어 나가는 아빠 뒤를 따라나섰다. 저 가방은 7년 전 호주에서 산 건데. 새 파란색 배경에 작은 야자수 나무가 잔뜩 그려진 가방은 청명한 날씨의 그곳과 참 잘 어울렸다. 그랬는데. 일터로 가는 아빠의 뒷모습과 맹목적으로 밝고 파란 가방은 참 이질적이었다. 나는 아빠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집 앞 계단에 서 있었다. 아빠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나도 그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몸짓으로 잘 가라고 손짓했다. 


아빠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지 올해로 8년째이다. 나는 아빠랑 아주 어렸을 때부터 떨어져 지냈다. 아빠는 일하러 해외로, 지방으로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두 달씩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갔고, 다시 돌아왔다. 지금처럼 일요일 저녁이면 지방으로 내려가고 토요일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한 지는 10년이 다 되어간다. 아빠는 늘 혼자였다. 나는 놀러 간다고, 엄마는 일하러 간다고 늘 집을 비웠고, 일터에서도 아빠에겐 말동무가 되어줄 친구가 없었다. 자기는 담배도 안 피고 술도 마시지 않아서, 일 끝나고 다들 한잔하러 갈 때 본인만 숙소로 돌아온다고. 평일에도, 주말에도 아빠는 티브이 앞에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외롭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던 아빠는 우리에게 끔찍하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전화를 걸어 온갖 욕을 섞으며 소리를 질렀다. 버스정류장까지 마중 나온 엄마는 겁에 질린 얼굴로 너 큰일 났다고 했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의자를 집어던지려고 했고, 일찍 들어오지 않는 것에 대해 아빠 자신도 제어할 수 없을 만큼 화를 냈다.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굳은 채로 새벽 내내 아빠의 비정상적인 분노를 지켜봤다. 그는 폭군처럼 온 집안을 휘젓고 다녔다. 자기 신경을 건드리는 말투는 그 자리에서 즉시 제압했다. 아빠의 목적은 마치 우리가 숨 쉴 틈을 주지 않는 일 같았다.


그래서 더욱더 집에 있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같이 있으면 숨이 막혔다. 아빠는 늘 기분이 좋지 않았고, 내게 엄마를 욕했고, 매 순간 눈치 보게 만들었으니까. 무엇보다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이 몸이 떨리게 무서웠다. 엄마도 그랬다. 자기랑 있으면 더 화를 낸다고 아침 일찍부터 아빠가 먹을 간식과 음식을 잔뜩 차려 놓은 뒤 집을 나섰다. 어쩌다 집에 엄마랑 내가 있는 날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느 날처럼 화를 잔뜩 내고 방으로 들어가서는 온종일 거실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니 어쨌든 아빠가 혼자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아빠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은 그런 일을 한참 더 반복하고 난 후에 알게 됐다. 내가 늦게 들어와도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거실에 누워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먹지도 않았다. 그리고 자주 울었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밥을 앞에 두고 집을 떠나기 싫어서 애처럼 울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랑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우울증은 더욱더 심해져서 공황발작을 일으켰다. 새벽이면 숨을 쉬지 못하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그때마다 응급실에 가서 심전도 검사, 피검사, 뇌 CT까지 찍어 봤지만 모두 깨끗했다. 아빠는 우울증을 인정하지 않았다. 몸에 치명적인 병이 생긴 거라고 믿었다. 


아빠는 곧 죽을 거라고 얘기했다. 우리 가족의 불안은 극에 달했다. 아빠가 혹시라도 극단적인 생각을 할까 봐. 하루는 밖에 나와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엄마는 내게 어서 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아빠가 전화를 안 받는다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빠가 죽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짧은 시간 아빠가 죽으면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하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떨리는 손으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아빠는 코를 골고 자고 있었다.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이 분해서 자는 아빠 옆에서 한참을 울었다. 나는 그때부터 집 밖으로 나가는 발걸음마다 아빠를 혼자 둔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아빠가 죽을지도 모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죽음으로 가족을 협박하는 아빠를 증오했다. 


아빠는 자기 맘대로 우울증 약을 끊었다 복용하기를 반복했다. 그 때문에 우울증은 좋아지다가도 다시 나빠졌다. 좋아졌을 때는 아픈 것이 권력이 되어 더 심하게 폭력을 휘둘렀고, 나빠졌을 때는 모든 기력을 잃고 탈진한 사람처럼 드러누웠다. 집 안에 분위기는 언제나 살얼음판을 걷는 듯 위태로웠다. 끊임없이 공황 발작을 일으켜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빠를 뒤따라 나가는 일, 한 차례 발작을 일으킨 아빠의 가슴을 다독여주는 일, 일을 그만두고 제대로 치료를 받아보자고 설득하는 일은 다 내 몫이었다. 나는 더 버틸 수가 없었고 이 상황을 외면하고만 싶었다.


어느 날인가 엄마는 내게 외삼촌 얘기를 꺼냈다. 외삼촌도 우울증인 것 같더라. 오래됐대. 세상에 얼굴이 말이 아니야. 그 병이 그렇게 몹쓸 병이야. 글쎄 세영이도 이제는 아빠라면 곁에도 안 간대. 세영이도? 어릴 때 외삼촌이랑 세영이는 부러울 정도로 사이가 좋은 부녀였다. 근데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 진짜 몹쓸 병이네 생각하고 있는데 뒤이어 엄마가 말했다. 꼭 너처럼. 너도 아빠 싫어하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엄마 다 알고 있었구나. 그 순간 자꾸 뒤돌아보면서 들어가라고 인사하던 일요일 저녁의 아빠가 떠올랐다. 사실 나는 일터로 돌아갈 때만 되면 하는 그 약한 인사가 너무 싫었다. 그 모습만 보면 누군가 나한테 '너 지금 잘못하고 있는 거야'라고 질책하는 것 같아서. 


아빠는 여전히 아프다. 며칠 전에는 넘어지면서 어깨를 심하게 다쳤는데, 그게 다 엄마 탓이라고 온갖 욕을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저 인간이랑 어떻게 사냐고 치를 떨었다. 그날 저녁에도 아빠는 아픈 어깨를 애써 추스르며 일하러 내려가야 한다고 일어섰고, 엄마는 아빠를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함께 나갔다. 버스에 탄 아빠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엄마에게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저 인간 그렇게 밉다 밉다 해도 그런 모습 보면 짠해 죽겠다고, 돌아오는 길에 좀 울었다고 했다. 게다가 그날은 아빠가 무슨 일인지 엄마한테 전화해서, 아침에 자기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엄마는 이 평생 그 인간한테 사과받은 게 처음이라 또 눈물이 났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냐고 물으니, 괜찮어~ 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나도 따라 울었다. 아빠도, 엄마도, 나도 안 괜찮았는데 그 이야기는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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