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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숑숑 Oct 24. 2021

가나다라 외우는 밤

늦깎이 학생이 된 엄마

올해 68세인 엄마는 요즘 한글 공부에 푹 빠져 산다. 매일 아침 엄마의 하루는 학원 갈 채비로 시작된다. 책가방엔 지하철에서 읽을 책 한 권, 학원 교재, 칸이 넓은 노트, 필통, 물병이 들어간다. 엄마는 이동 시간도 아깝다고 지하철에서 꼭 책을 읽으며 간다고 했다. "책 글씨가 너무 크니까 주변 사람들 보기에 창피스러워."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이 읽는 책이라 그림도 많고, 글씨도 크니까 웬 어른이 저런 책을 읽나 흉볼 것 같은 게 제일 걱정이라고. 나는 눈을 찌푸리며 지하철 안에서 한 자, 한 자 책을 읽고 있을 엄마를 상상했다. 


엄마에게 인터뷰를 요청하고 마주 앉은 저녁. 집 안의 공기가 어색했다. 평소에 머리를 말리다, 밥을 먹다, 티브이를 보다가 언뜻언뜻 스치듯 들었던 엄마의 한 맺힌 세월을 본격적으로 들을 생각을 하니 덩달아 긴장이 됐다. 엄마는 에라 모르겠다며 벌러덩 드러누워 티브이를 켰다. 


: 엄마 티브이 소리 좀 줄여줘. 이제 시작할 거야. 먼저 엄마를 소개해줘. 

엄마: 어떻게 해야 해? 자기소개를? 자기소개도 못하겄다. (깔깔) 


: 그럼 엄마는 뭘 할 때 재밌고 좋아?

엄마: 나는 식물을 기를 때가 재밌어. 고추, 토마토, 상추 같은 것들이 푹 자라 있는 걸 보면 너무 예쁘지. 다음 날 아침에 옥상에 올라가 보면 뭐든지 쑥쑥 자라 있고 줄렁 줄렁 열려 있으면 얼마나 좋은지 몰라. 


: 속상하고, 싫고 그런 건 뭐야?

엄마: 제대로 못 배운 거. 나는 그게 제일 싫어. 옛날부터 얼마나 속상했나 몰라. 81년도부터인가. 나도 어느 정도 철이 들고. 그 전에는 그런 게 속상한 건지 어쩐지도 몰랐어. 느그들 낳아 놓고. 맨날 아빠가 무시하고 그럴 때. 멍청하고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는 게 어찌나 싫던지.


: 엄마 학원은 언제부터 다녔지?

엄마: 욱(둘째 조카)이 초등학교 1학년 때. 


: 3년 전. 2018년 때네. 학원 처음 갔을 때 느낌이 어땠어?

엄마: 남들보다 못할까 봐 무서웠지. 너무 못하면 창피하잖아. 그래도 이제는 이런 데 앉아서 배울 생각 하니까 좋기도 했지. 처음에야 이거 창피스러워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지, 나중에는 그런 마음도 다 없어지더라고. 


: 학원에는 남자가 많아, 여자가 많아?

엄마: 대부분 여자야. 남자는 한 명. 


: 학생 나이는 어떻게 돼?

엄마: 50대부터 70대까지 있지. 


: 학원에서 엄마랑 제일 친한 사람은 어떤 분들이야?

엄마: 나랑 학원에 같은 날 들어간 사람이 있어. 첫날 그이가 딱 내 옆에 앉는 거야. 그이가 제일 젊은데, 참 착해. 그리고 내 앞에는 자매 둘이 앉아 있는데. 그이도 어릴 때 얼마나 못 배웠음 자매가 학원을 같이 다녀. 그렇게 넷이 잘 어울리지. 학원 끝나면 그이들이 남산에 올라가자고 해. 그럼 안 간다고 안 하고 가고. 남대문도 돌고 밥도 사 먹고. 많이 그러고 다녔어. 돈도 이때 쓰지 언제 쓰겠나 생각하면서. 학원 가면 참 재밌어. 근데 그이들 안 오면 좀 허전하지. 내가 맨날 전화해서 '왜 안 와 빨리 와~' 하는데, 자매 둘은 아파서 한 달 쉬어야 한대. 지금은 못 본 지 오래됐구먼.


: 선생님이 엄마 잘한다고 칭찬하는 날엔 나한테 자랑했잖아. 칭찬받을 때 기분이 어땠어?

엄마: 내 속으로는 못하는 것 같은데 잘한다고 하면 기분이야 좋지. 근데 똑 별나게 못하니까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 그래도 내가 잘하기는 잘하는 것 같아. (웃음) 교실 맨 뒤에 앉아서 사람들 쳐다보고 있으면, 다른 이들은 틀렸는지 다 엎드려서 고치고 있어. 나만 선생님 쳐다보고 있고. 


: 엄마는 틀린 게 없어서 선생님 쳐다보고 있는 거야? (웃음) 그런데 학원에 다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이유는 뭐야?

엄마: 손주들이 있으니까. '할머니 이거 뭐야, 저거 뭐야' 하고 물어보는데 뭘 모르니까 너무 창피스럽잖아. 그전에는 혼자 스스로 학원 갈 용기가 안 난거지. 꼬맹이들이 있으니까 그런 용기도 생기고. 꼬맹이들이 참 대단한 거야. 옛날에 너 꼬마일 때도 넷째 이모가 자기 공부 시작할 때, 엄마한테 '언니 언니도 공부 시작해' 그렇게 얘기했는데도 못했거든. 그때는 먹고살기 바쁜데 이모가 내 속도 모르고 배워라 배워라 하니까 그것도 참 속상하고 듣기 싫더라고. 형편이 어려우니까 그때 당시는 배우는 것 자체를 생각도 안 해봤지. 지금은 또 네가 다 크기도 했고. 그래서 내가 너한테 학원도 알아봐 달라고 얘기할 수 있었던 거고. 


: 공부하면서 뭐가 가장 힘들어?

엄마: 쓰는 것이 제일 어렵지. 읽는 건 그보다 나은데. 그리고 자유가 없어. 그 공부 생각만 얽매여서. 머릿속에 한글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으니까. 머리가 아프지. 그걸 착착 잘해야 머리가 개운한데. 그걸 언제 다하나 싶고. 그리고 학원 수업 시간이 1시간 30분인데, 1시간 지났을 땐 누구든지 다 어리바리해서 이해도 못 하고 바보같이 있고. 30분 정도 남았을 때 '아 이제 좀 알겠다' 싶은데 수업이 끝나버려 너무 아쉽다 이거야. 살림하랴, 공부하랴 두 가지 다 하려니까 그것도 너무 힘들고. 공부할 땐 공부만 해야 마음이 편해. 근데 제일 힘든 건 나이를 먹었는가. 내가 이렇게 죽고 살자 열심히 노력해도 머리가 그만큼 안 따라준다는 거야. 잊어먹어서 탈이야. 


: 매일 얼마큼 공부해? 학원 갔다 와서 하루 일과를 좀 알려줘.

엄마: 학원 끝나고 집에 오면 1시 30분쯤 돼. 그때 밥 먹고. 두시부터 네시까지 학원에서 배운 거 복습하고. 보고 따라 쓰는 거야. 그리고 저녁 먹고. 밥 먹고 나서는 내일 배우는 거 혼자 쓸 줄 알 때까지 반복해서 쓰지. 어마어마하게 써. 에이포 용지 앞뒤로 넉 장은 거뜬히 쓰지. 나는 초저녁 잠이 많아서 일찍 잠들고. 그러고 나면 새벽에 한 번씩 깨. 두시고 네시고. 그럼 그때 가, 나, 다, 라도 쓰고 책도 읽고 눈만 뜨면 그거 붙들고 사는 거야. 


: 엄마는 한글 잘 알게 되면 뭘 하고 싶어?

엄마: 내가 쓰고 싶은 말을 원하는 만큼 쓱쓱 써서 남한테 보여주고 싶지. 며느리한테 편지도 쓰고 싶고. 다른 사람들은 자기 며느리한테 문자도 보내고, 이러고저러고 좋은 말도 보내준다는데. 나는 그런 걸 못하니까. 시어머니가 바보 같다는 소리 듣기 싫으니까 꼭 한번 해주고 싶지.  


: 그래도 엄마 이제 많이 알게 됐잖아. 언제 엄마도 '내가 좀 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엄마: 그래도 책을 읽을 줄 알게 되니까, 우리 온이(셋째 조카)한테 옛날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서 좋지. 그전에는 내가 아는 게 없으니까. 말도 못 지어내고. 근데 이젠 나도 아는 이야기가 있잖아. 애들한테 '옛날 옛적에'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면 그거 듣고 깔깔거리며 웃어. 그게 그렇게 뿌듯하고. 애들이 '할머니 이거 뭐야' 하고 물어보면 대답해 줄 수 있으니까 그것도 원 없이 좋지. 


: 한글을 몰라서 가장 서러웠던 적은 언제야? 

엄마: 하루하루 매일 서럽지. 상대하고 이야기할 때마다. 그게 누구든. 내가 무식하다는 것을 들킬까 봐 조마조마하고. 그리고 모르는 건 딱 티가 나잖아. 옛날에 아줌마들이랑 노래방에 가면, 글자를 몰라서 나만 노래 한 자락도 못 불렀어.


: 나 키울 땐 어렵지 않았어?

엄마: 너 유치원 다니기 시작할 때. 거기서 뭐 써오라고 하면 명희 아줌마가 대신 써줬어. 그리고 너도 똑같지. 내가 공부 못 알려주니까. 뭐를 알려주고 싶어도 모르니까. 네가 종알종알 뭘 물어보면 나는 늘 아빠한테 가서 물어보라고 했지. 


: 학원 다니기 전에는 엄마가 막 가, 나, 다, 라 외우면서 울기도 했잖아. 그땐 어떤 마음이었어?

엄마: 왜 나는 가, 나, 다, 라도 모르나. 왜 옛날에 누가 그런 것 하나 나한테 가르쳐주지 않았나. 성질났지. 어릴 땐 맨날 일만 시키고. 지금도 일밖에 안 하니까 속상하고. 


: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는 않아?

엄마: 몇 년 전에는 할머니한테 말했어. 왜 딸들은 안 가르쳐서 바보같이 살게 만들었냐고. 할아버지한테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저번에도 할머니랑 통화하다가 지금 내가 이 나이에 학원을 다닌다고 속상해 죽겠다고 말했다니까. 당신도 못 해줘서 속상하다고 암 말 못 하고 듣고만 있지. 한몇 년은 할머니가 엄청 밉더라고. 근데 공부를 하니까 그런가 요즘은 마음 고쳐먹고 안 미워하기로 했어. 


: 엄마 어릴 때 하루 일과는 어땠어?

엄마: 일만 했지. 10살 때부터. 오후 3시~4시 사이에 소를 데리고 들로 나가지. 풀 뜯어먹으라고 데리고 나가는 거야. 큰언니랑 나랑 한 마리씩 데리고. 그거 안 하면 아주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해. 소 배가 이렇게 불러야 할아버지 보기에 소가 밥 잘 먹었구나 하고 들여보내 주고, 배가 홀쭉하면 아주 혼쭐나는 거야. 15살 먹었을 땐 나무를 하러 다녀. 산에 가서 나무를 해와. 그리고 보리 베고, 나락 베고 밭매고 그런 일만 했지. 


: 한글 공부 끝내 놓곤 다른 공부는 어떤 걸 하고 싶어? 

엄마: 노래 교실 가서 엄마들이랑 노래도 배우고 싶고, 영어도 배우고 싶지. 차근차근 다 해봐야지. 못 배운 거 지금이라도 부지런히. 


엄마는 그간 뱉어내지 못하고 가슴속에 쌓아 두기만 했던 이야기를 풀어헤치느라 연신 눈물을 흘렸다. 자기는 왜 이 이야기만 하면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면서. 나는 가만히 응, 응 대답하면서 엄마 말에 귀 기울였다. 인터뷰가 끝나고 거실에선 중얼중얼 책을 읽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못 가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엄마 대신 불을 끄면서 생각했다. 내일 서점으로 가 엄마가 읽을 만한 책을 몇 권 더 사 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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