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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Mar 27. 2018

기억의 간극

서로에게 다르게 기억되는 순간




낯선 곳에 가면 가장 먼저 카페를 찾는다. 프랜차이즈보단 그 동네에 딱 하나뿐일 것 같은 곳을 골라 매번 마시는 메뉴를 주문한다. 그러다 그 카페가 마음에 들면, 근처에 갈 일이 있을 때 꼭 한 번씩 들르곤 한다. 그렇게 단골 가게가 늘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평소에 잘 가지 않았던 어느 동네에 다다랐을 때에도, 나는 새로운 카페를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았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골랐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카페 주인이 나를 친근한 눈으로 바라봤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자연스럽게 건네는 말에 이곳을 와본 적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가게 이름을 확인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처음 오는 곳이 분명했다. 이 골목에 온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 여기 처음 오는데, 다른 분이랑 헷갈리셨나 봐요."

"아니에요. 여름에 친구분들이랑 두세 번쯤 오셨었잖아요. 잊어버리셨다니 좀 서운한데요."



그는 무언갈 기억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에 확신이 차있어 여름의 기억을 떠올려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다. 처음이 분명했다. 나에겐 전혀 없는 어떤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게 조금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를 여러 번 되짚어보다 중요한 부분은 아닌 것 같단 생각이 들어 그냥 커피를 주문하기로 했다. 그는 커피를 만드는 동안에도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이처럼 이야기를 건넸다. 그러는 사이, 창밖에는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빗줄기가 가늘어지길 기다리며 30분가량 더 머물게 되었다. 그가 가져다준 커피에서 모락모락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로 몇 가지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 순간이 멈췄으면 하고 바랐던 어느 때, 그리고 이 순간을 영영 지우고 싶다고 되뇌었던 어느 때. 나에게 최고 혹은 최악의 순간으로 남은 그때에, 함께 있었던 그 사람들도 과연 나와 같은 감정이었을까.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순간순간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중에서도 유독 짙게 남은 순간들을 상대방도 비슷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새삼 궁금해졌다. 나에겐 단 1초도 남아있지 않은 여름날의 어느 순간이, 저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람에겐 생생한 기억으로 남은 것처럼 커다란 간극을 갖고 있는 건 아닐는지. 커피잔을 깨끗이 비우는 동안, 수많은 기억들이 머물다 갔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어 다행이라고 느낀 순간, 이 손을 오래오래 잡고 싶다고 느낀 순간, 그리고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느낀 순간, 내게 있어 찬란하게 빛난 모든 순간만큼은 함께 있던 이들도 부디 같은 빛깔로 기억해주길 바랐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전에, 나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자주 오라는 그의 말에 웃으며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우연히 마주친 오늘의 우리도, 서로에게 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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