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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Apr 03. 2018

당신은 누군가의 전부

어떤 순간에도, 잊지 말아야 할 시절.




매 순간 이토록 사랑받는 시기가 또 있을까.

나는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자그마한 아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차 안에 있던 모두는 알아듣기 어려운 어눌한 말에도 웃음을 터뜨렸다. 잘하네, 잘하네, 연신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상의 빛을 본지 이제 갓 600일이 된 남편의 조카는, 사람들의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할머니의 말을 두어 번 더 따라 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눈길은 거리 곳곳을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이 거리가 아이에겐 꽤나 흥미로운 모양이었다.



속도를 높이던 차가 건널목에 멈춰 서자 이번엔 빙글빙글 돌아가는 이발소 표시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커다란 눈망울엔 푸른색과 붉은색이 번갈아가며 반짝였고, 그 평범한 풍경을 정성스레 바라보는 눈빛에 오늘은 차가 밀리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지난 한 달간, 이날이 저 날 같고 저 날이 이날 같은 시간을 보낸 나완 달리 아이는 매 순간이 성장이고 성취였다.



"오늘은 문에 대고 똑똑, 노크를 하더라니까."



비슷한 시기에 손주를 본 엄마도 매일 아이로 꽉 찬 세상에 살고 있다. 내 조카는 남편의 조카보다 100일 정도 늦게 태어났는데, 남편 조카가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무렵 뒤집기를 성공했고 단어가 아닌 문장으로 말하는 요즘, 옹알이를 시작했다. 때론 새 생명이 주는 뭉클한 순간을 남편보다 한 박자씩 늦게 복습하는 듯 하지만, 똑같은 감정을 느낄 때도 있다. 어찌할 수 없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영상으로만 대면해야 할 때다. 쉽게 잦아들지 않는 아쉬움에 같은 영상을 보고 또 보곤 한다. 아이들이라면 모두 비슷하게 터득할 너무도 당연한 것들조차 조카라는 이유로 몇 배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것만으로도 놀랍고 감격스러운 날들이다.



나는 오늘도 그곳에서 날아올 따끈한 뉴스를 기다린다. 한낮이 되면 놀이터를 활보하는 조카의 모습이 영상 안에 담겨올 것이고, 엄마는 조카를 꼭 안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에도 늘 저렇게 웃어주셨겠구나,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아이가 자라 또 다른 아이를 키워내는 과정이 반복되는 건, 어른이 된 우리에게도 이렇게 듬뿍 사랑받은 시절이 있었다는 걸 잊지 말라는 뜻이 아닐까.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주위의 빛깔을 반짝반짝하게 바꿔놓던 그 시절 말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모두의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던 어느 드라마 속 대사가 마음 언저리를 맴돈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모자라고 부족한 자식이 아니다.'






지금까지

<아다지오: 조용하고 느리게>를

구독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은 꼭 이 글로 맺어야지 생각했어요.

스스로가 별 볼 일 없이

느껴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누군가에겐 한 없이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결코,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새로운 매거진으로 인사드릴게요.

다시 찾아온 봄,

그러나 다시 오지 않을 2018년의 봄.

마음껏 누리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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