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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럼에도 불구하고 Jan 23. 2019

당신의 두 번째 사무실은 어디인가요?

THE BIG ISSUE KOREA 194



누군가가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의 장점을 물어올 때면, 두 가지 답이 떠오릅니다. 첫 번째는 놀거나 쉬면서 얻는 것들이 어느 순간 일적인 부분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어느 영화 속 기법이, 또 어느 드라마 속 대사가 아이디어의 단초가 되는 경험을 자주 하니까요. 두 번째는 그 단초를 아이디어로 만드는 데 있어 장소의 제약이 별로 없다는 점인데, 연차가 쌓일수록 저와 점점 더 잘 맞는 공간을 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두 시간 정도 각자 편한 데서 생각해보고 다시 모이자."


이제 막 카피라이터 명함을 손에 든 저연차 시절의 일입니다. 경쟁 PT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이틀 정도 각자 아이디어를 생각할 시간을 가진 후였죠. 당시 프로젝트 리더였던 선배는 첫 회의를 마치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무실에 있지 말고 어디든 나가보라고, 근처에 있는 미술관도 가보고 카페도 가보라고. 그때까지만 해도 사무실 밖을 나갈 일이 별로 없던 터라 한동안 망설였습니다. 어디를 가야 제게 주어진 두 시간을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단 가까운 거리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어요. 아침마다 종종 들르는 곳이었기에 매번 앉는 창가 자리에 머무르기로 했습니다.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 3시. 그 시간, 그 장소에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줄 몰랐답니다. 노트북으로 혼자 영화를 보는 남자와 서류를 보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여자, 아이와 케이크를 나눠 먹는 젊은 엄마, 펜과 노트를 든 채 아이디어를 찾으러 온 카피라이터까지. 우리 모두는 꽤 가까운 거리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큰 어려움 없이 각자의 시간에 몰입했습니다.



'Starbucks Campaign' <출처: www.adsoftheworld.com>



"YOUR OFFICE OUTSIDE YOUR OFFICE."


아마도 그날부터인 것 같습니다. 회사나 집 주변에 있는 카페를 골라 매번 같은 자리에 앉는 버릇이 생겼어요. 회의 준비를 할 때도, 원고를 다듬을 때도 저는 매번 같은 자리를 고집했습니다. 거리의 풍경이 훤히 보이고, 적당한 소음이 있는 곳에서 집중력이 높아지는 사람임을 알게 되었죠. 그때 그 회의를 떠올려봐도 그렇네요. 만약 사무실에서 두 시간을 보냈다면, 그만큼의 아이디어는 나오지 못했으리란 생각도 듭니다. 제가 근처에 있는 카페에 머무를 동안, 누군가는 벚꽃이 핀 산책로를, 또 누군가는 신진 작가들의 작품이 걸린 미술관에 들렀더군요. 그 장소에서 얻은 생각들로 새로운 출발점을 찾은 거겠지요. 때론 익숙한 자리를 벗어나는 것 자체가 자극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때 카페 대신 산책로나 미술관에 머물렀다면 저는 그곳을 더 자주 찾게 됐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이후, 매달 쓰는 커피 값만 해도 어마어마해졌어요. 처음 스타벅스가 생겼을 때만 해도 '과연 저 값을 주고 커피를 사 먹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게 바로 저였거든요. 스타벅스가 내걸었던 '우리는 커피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문화를 판다'는 말이 통한 건지도 모릅니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는 제가 한 번, 두 번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건 집중하기 좋은 환경의 영향이 크니까요. 때론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사무실보다 이곳에서 더 많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꽉 막혀 있던 글이 슬슬 써지기도 해요. 그런 경험이 늘어나다 보면, 왠지 이곳에 들어서기만 해도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듭니다. 이래서 징크스가 무섭다고들 하는 건가 봐요.


요즘은 집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자주 출몰합니다. 이 지점에는 유독 혼자 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한 손에는 노트북을 들고 있죠. 어떤 직업을 가졌는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류를 훑고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저와 꼭 닮아 있습니다.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시고 간단히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것마저 비슷하지요. 그런 사라들 사이에 머물다 보면 왠지 집중력도 높아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덧 그 공간은 제겐 커피 마시는 곳, 그 이상이 된 것 같네요. 커피 볶는 향,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 조금씩 다른 얼굴을 하는 풍경까지. 글을 쓰고 싶을 땐, 망설임 없이 향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아하는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쓰는 이 글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창가 자리에서 써 내려가고 있답니다. 새해에는 부디 이곳에서 더 많은 결과물이 탄생하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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