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씩 더해 떠나는 친구 여행
올해 4월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지난 3박 4일이 벌써 지나가버린 것을 믿을 수 없어하며 이야기했다.
은지: 벌써 시간이 다 가다니..
민경: 괴로워...
나나몽: 우리 다음엔 어디가?
수지: 으.. 나 내년엔 휴가 장담하기 힘들어
은지: 안돼!!!!! 가야 해, 갈 수 있어!
어느덧 스물아홉이 된, 4명의 직장인 친구들이, 날 좋은 봄날에, 3박 4일 휴가를 맞춘 것에 대해 서로 대견해했다. 일찍이 비행기 표를 끊어놓고도 출발 전 직장 사정으로 초조했던 각자의 상황들은 생략한다.
이번 베트남 여행은 세 번째 여행이었다. 아니다, 스물두 살에도 가평의 초록 펜션으로 1박 여행을 갔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스무 살 이후로 함께 간 세 번째 '비행기 타고 간' 여행이었다. 왠지 비행기를 타야 더 '떠나는' 느낌이라 세번째라고 했다 하자.
우리는 또 갈 수 있다고, 돈을 조금씩 모아서 또 가면 된다고, 가야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나왔다.
민경: 우리 3박 4일 베트남도 해냈잖아!
나나몽: 그래 재작년에 2박 3일 홍콩도 갔었고!
은지: 그래 우리 내년엔 4박 5일로 가자!
민경: 오, 그럼 매해 1박씩 추가해서 가서 50살엔.. 하나, 둘, 셋... 몰라, 30박 31일 될 땐 유럽에 가자!
수지: (침착) 매해는 힘들지 솔직히. 한해 걸러 한해에 가자
수지: (흥분) 우리 그, 그 이렇게 1박씩 가는 거 기록에 남겨보자. 막 돌아가면서 같이
나나몽: (침착) 좋은 아이디어지만 글을 쓰는 건 힘든 일이지. 우선 가서 해보자
그렇게 여행을 다녀오고 3개월이 지난 어느 주말에 기록을 시작해본다. 왠지 오늘이 아니면 영영 시작을 못할 것만 같다. 왠지 다음 여행 다녀오는 비행기에서 같은 말을 반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다들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에 열정이 넘치는 편인데 '30년 동안 매번 같은 사진을 찍은 친구들'이런 것들도 해보자고 여러 번 말했는데 아직 서있을 순서를 못 정했다.
아래는 지난 여행 사진 한개씩. 1박 2일 제주, 2박 3일 홍콩, 3박 4일 베트남 하노이다.
싸우지마는 친구 넷 단톡 방 이름이다. 싸이월드 폴더명도 이거였던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그렇게 불렀던 건 아니고 내 기억으론 스무 살 때인가 나랑 은지랑 막 티격태격하고 있으니까 나나몽이 '그만 좀 싸워'하고 민경이가 '싸우지좀 마'이랬다. 그 후로 여러번 서로에게 '싸우지(좀) 마'라는 말을 했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 말을 꽤 자주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싸우지 마'가 모임 이름이 되었다
내가 10살 때 합창부에서 은지를 처음 만났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뒤를 돌아서 인사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안녕 나는 3학년 4반 이수지야.' 4학년 때 은지랑 다시 같은 반이 되어 내가 반장, 은지가 부반장을 하면서 더 친해졌다. 민경이랑은 6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은지랑 민경이가 같은 반이 되었다. 둘은 춤 동아리도 같이 들었다. 그 동아리에 나나몽도 들어갔다. 나는 중 2 때 나나몽이랑 같은 반이 되어서 친해졌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학창 시절에 동네에서 얽히고설켜서 다들 친해졌다. 각자는 연결고리가 있던 넷이 다같이 처음으로 놀았던 건 중학교 2학년 때인데 우리 집에서 놀다 친구들이 자고 간 날, 그 날인 것 같다.
자주 싸워서 싸우지마라고 이름도 붙여놨는데도 싸울 때는 이렇게 말한다. '그만해 우리 싸우지 마잖아!' 그러면 '맞네, 우리 이래서 싸우지 마지ㅋㅋ'. 해가 갈수록 덜 싸우는 것 같긴 하다. 서로 성격을 잘 알게 되니까 그러려니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름은 계속 이름은 싸우지마가 될 듯.
학창 시절엔 피쳐폰으로 20대 초반에는 스마트폰으로 만나기만 하면 어떻게 사진을 찍더니만 요즘은 다 만나고 나서는 길에 '아, 우리 사진 찍을걸' 한다. 그러면 우리 중 한 명이 '아, 우리가 나이 먹어서 그런가 봐!'한다. 그러면 또 내가 '아니야, 나이 때문 아니야. 그냥 좀 귀찮아진 것뿐이야' 한다.
이런 우리가 여행-비행기를 타고 간 곳-을 가니까 다시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낯선 여행지와 새로운 장소에서의 기억을 많이 남겨두고 싶어서인 거겠지. 이렇게 또 같이 열심히 놀아서 지금 학창 시절을 추억하듯 나중에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했던 여행의 기억들을 곱씹고 싶다.
할머니 하니 떠올랐는데 베트남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가 죽는다면 죽기 전에 남은 친구들을 위한 여행자금을 남기고 가겠다고 했다. 우리 그렇게 하자! 제안도 했다. 친구들은 이 나이에 죽는 얘기가 웬 말이냐며 재수 없다고 야유했다. 사람은 다 결국 죽는데 왜. (중요한 건 그때까지 놀자는 건데)
남자 친구처럼 헤어지면 영영 끝인 사이도 아니고 이름처럼 싸우지만 않으면 죽기 전까지 친구일 친구들과의 기록이니까 SNS에 전 남자 친구 흔적 지우듯 지울 일도 없으니 귀찮아도 한 번 써본다. 당장은 기억나는 소소한 일들도 지나면나면 또 까먹는데 이렇게 글로 남겨서 친구들 머리 속에 장기기억으로 콕콕 박혀 우리의 영원한 맥주 안주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