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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화폐 단위, 왜 '원(圓)'일까?

둥근 화폐, 공통된 이름: '원(圓)'의 기원

by 온기록 Warmnote

세계 여러 나라의 화폐 단위는 각기 다른 기원을 가지고 있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화폐 단위의 명칭과 형태는 다양하게 발전해 왔으며, 각국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의 '원(圓, Won)', 중국의 '위안(元, Yuan)', 일본의 '엔(円, Yen)'처럼 비슷한 발음을 가진 화폐 단위가 존재한다. 이러한 공통점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오랜 역사와 문화적 교류 속에서 형성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아시아 주요 국가에서 화폐의 이름이 '원(圓, 元, 円)'이 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원(圓)'의 기원


중국은 오랜 역사 속에서 다양한 화폐를 사용해 왔다. 특히 명나라(明)와 청나라(淸) 시대에는 금화, 은화, 동전 등이 유통되었으며, 그중에서도 은화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세기 중반, 서구 열강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중국 시장에서는 서양에서 들여온 스페인-멕시코산 은화(8리알 은화, 혹은 스페인 달러)가 널리 사용되었다. 이 은화는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이를 가리켜 중국에서는 '은원(銀圓)'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원(圓)'이라는 단어가 화폐 단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청나라가 몰락한 후에도 중화민국 정부는 1914년 공식적으로 '위안(元, 圓)'을 화폐 단위로 채택했다. 현재 중국 본토에서는 간체자로 '元'을 사용하지만, 대만에서는 여전히 '圓'이라는 정체자가 쓰인다.


일본의 '엔(円)'과 근대적 화폐 개혁


일본 또한 중국과 비슷한 시기에 서양 화폐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화폐 제도를 도입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정부는 기존의 복잡한 화폐 체계를 개혁하고, 1871년 새롭게 근대적 통화 제도를 확립하면서 엔(円)을 공식 화폐 단위로 채택했다.


'엔(円)'이라는 명칭은 중국의 '원(圓)'에서 비롯되었으며, 의미적으로도 '둥근 화폐'를 뜻한다. 일본은 서구 국가들과의 무역에서 달러와 같은 외국 화폐를 참조하였고, 특히 스페인-멕시코 은화처럼 둥근 형태의 은화를 본떠 '円'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한국의 '원(圓)' 채택과 역사적 배경


한국에서 '원(圓)'이라는 화폐 단위를 사용한 것은 대한제국 시기(1897~1910)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 정부는 1902년 '대한제국 원(大韓帝國圓, Korean Won)'을 공식적으로 도입하였는데, 이는 일본의 엔(円)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원(圓)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일제강점기(1910~1945) 동안 일본 엔(円)이 조선에서 유통되었으나,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1945년 미군정 아래에서 '조선 원(朝鮮圓, Korean Yen)'을 사용했다.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대한민국 원(KRW)'이 공식적인 화폐 단위로 자리 잡았다.


대만의 '신대만 달러(新臺幣, New Taiwan Dollar, TWD)'


대만에서도 한때 '원(圓)'을 화폐 단위로 사용했다. 1895년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하면서 대만은 일본의 식민지(1895~1945)가 되었고, 이 시기에는 일본 엔(円)이 유통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중국이 대만을 접수한 후, 1946년 중화민국 정부는 대만에서 '대만 원(臺灣圓, Taiwan Dollar)'을 도입했다. 그러나 국공내전으로 인해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1949년 '신대만 달러(新臺幣, New Taiwan Dollar, TWD)'로 개편되었다. 대만에서 사용되는 화폐의 공식 명칭은 '新臺幣(TWD)'이며, 이 또한 '圓' 또는 '元'으로 표시된다.


'원(圓)'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사용된 이유


한국, 중국, 일본, 대만에서 공통적으로 '원(圓, 円)'이라는 단어를 화폐 단위로 사용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였던 중국의 영향이 컸다. 동아시아에서 오랫동안 문화적·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중국이 '은원(銀圓)'을 사용하면서, 이를 본뜬 국가들이 유사한 화폐 단위를 도입했다.


또한, 서양 은화의 보급도 중요한 요인이었다. 19세기 서양의 스페인-멕시코 은화가 동아시아에 대거 유입되면서, '둥근 화폐'라는 개념이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圓(원, 엔, 위안)'이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근대적 화폐 개혁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과 한국이 근대적인 화폐 체제를 정립할 때 중국의 '圓'을 모델로 삼아 새로운 화폐 단위를 정했다.


마지막으로, 한자 문화권의 공통성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일본, 한국, 대만은 한자를 공유하는 문화권으로, 한자 '圓'의 의미(둥근 모양, 동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동아시아 화폐의 역사적 연결고리


오늘날 한국의 '원(KRW)', 일본의 '엔(JPY)', 중국의 '위안(CNY)', 대만의 ‘신대만 달러(TWD)’는 각각 독립된 경제 체제를 갖고 있지만, 그 기원은 19세기 서양 은화의 유입과 중국의 영향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사례다.


비록 각국의 경제적 상황과 정책에 따라 화폐 가치는 다르게 변해 왔지만, '圓'이라는 단어가 여전히 화폐 단위로 남아 있는 것은 동아시아의 공통된 역사와 문화적 연속성을 상징하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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