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 최고의 완벽주의자는 가장 불확실한 언어 뒤로 숨었나
이 글은 안성재 셰프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분석이다. 그의 언어 선택이 얼마나 전략적이고 정교한지 해부하고 싶었다.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이 한 문장으로 대한민국을 장악한 남자.
하지만 그가 가장 자주 쓰는 말은 이게 아니다.
"맛있는 것 같습니다."
"완벽한 것 같습니다."
"의도와 다른 것 같습니다."
완벽주의자가 왜 '같습니다'라는 가장 비겁한 언어를 쓰는 걸까?
나는 14년간 제조 현장에서 0.1mm 오차를 잡아내며 살았다. 그래서 안다. '같습니다'를 쓰는 사람은 둘 중 하나다.
확신이 없거나, 확신을 숨기거나.
안성재는 후자다.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안성재 셰프다. '국내 유일 미슐랭 3스타'라는 압도적인 타이틀, 그리고 참가자의 고기를 시식하며 던진 "이븐(Even)하게 익지 않았어요"라는 말 한마디는 밈(Meme)을 넘어 하나의 현상이 되었다.
그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경외감에 가깝다. 타협 없는 기준, 요리에 담긴 '의도(Intent)'를 끈질기게 묻는 집요함, 그리고 자신의 평가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그 교조적인 확신.
14년간 제조 현장에서 일해온 내 눈에 그는 요리사가 아니라, '인격화된 공정 규격'이자 '움직이는 매뉴얼'로 보였다. 마치 제품의 도면과 실제 출고된 제품 사이의 0.1mm 오차(Tolerance)를 잡아내기 위해 QC(품질 관리) 라인에 서 있는 서늘한 검수관의 모습. 그것이 내가 안성재라는 인물에게서 본 첫 번째 실체였다.
하지만 방송이 거듭될수록, 그 완벽한 시스템적 자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가 설계한 정교한 '언어적 함정'이 내 레이더에 포착되었다.
안성재 셰프의 심사평을 유심히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는 세상을 난도질할 만큼 날카로운 기준을 가졌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문장은 안개처럼 흐릿한 표현으로 마무리한다.
그 끝에서 느껴지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괴한 비대칭. 그것은 마치 결함 없는 정밀 기계에서 들려오는 미세한 잡음(Noise)처럼 내 신경을 긁었다.
"맛있는 것 같습니다."
"익힘의 정도가 완벽한 것 같습니다."
"채소의 물성이 제가 의도한 것과는 다른 것 같습니다."
이상하지 않은가?
완벽주의자는 '같습니다'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시스템적 사고주의자에게 "이건 불량인 것 같습니다"라는 문장은 존재할 수 없다. 센서가 값을 측정하면 불량(False) 아니면 합격(True)일 뿐이다.
행복하면 행복한 것이지 '행복한 것 같습니다'는 무엇인가. 맛있으면 맛있는 것이지 '맛있는 것 같습니다'는 또 무엇인가.
당신은 자신의 감정조차 모르는 머저리인가, 아니면 사실관계를 모호하게 뭉개는 사기꾼인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안성재다. 자신의 기준에 대해 광적인 확신을 가진 그가, 왜 평가의 끝마다 가장 불확실한 언어인 '같습니다'를 덧붙이는 것일까?
나 역시 '같습니다'라는 표현을 극도로 경계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나조차도 이 비겁한 퇴로를 꺼내 들 때가 있다. 바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할 때다.
조직 생활을 하며 팀장의 판단이 명백히 틀렸다고 확신할 때, 나는 예의와 상하관계를 고려해 이렇게 말한다.
"팀장님 말씀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실은 틀렸다고 생각하지만, 내 책임의 범위를 슬쩍 좁히기 위해 안개를 피우는 것이다.
존경하는 어르신이 닭 요리를 싫어하는 내게 삼계탕을 사주실 때도 마찬가지다.
"참 맛있는 것 같네요."
사실은 전혀 맛있지 않다. 내 취향이 아니니까. 하지만 상대의 호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내 입맛이 변했다는 거짓말은 하기 싫을 때 우리는 '같습니다'라는 비겁한 중립 지대로 숨어든다.
안성재 셰프가 이걸 몰랐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그는 자신의 카리스마가 대중에게 얼마나 차갑고 권위적으로 비치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서글서글한 백종원 대표 옆에서 자신의 날카로움은 자칫 '독선'으로 비칠 위험이 컸다.
여기서 나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워본다. 내가 안성재 셰프의 의도를 100%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자신의 날카로운 평가가 불러올 파장을 고려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그런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건 단순한 말버릇이 아니다. 가장 날카로운 칼날 위에 '같습니다'라는 부드러운 스펀지를 덧대는 고도의 위장술이자, 자신의 완벽함이 대중에게 거부당하지 않도록 설계한 정교한 방어 기제다.
더 소름 돋는 가능성도 있다. 그에게는 '나(I)'라는 주관적 감정의 주체가 거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이다.
방송을 보면 그는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맛있다"가 아니라 "익힘이 정확하다",
"텍스처가 의도와 일치한다",
"밸런스가 계산된 대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데이터를 말한다. 마치 센서가 측정값을 읽어주듯.
그는 음식을 먹을 때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게 아니라, '내 몸이라는 고정밀 센서가 이 음식을 맛있다고 판정하고 있다'는 상태를 보고(Report)하는 것처럼 보인다.
"센서 측정 결과, 합격 확률이 높은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요리를 즐기는 인간이 아니라, 3스타라는 규격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측정 장치'로 개조해버린 존재다.
작가인 내가 분노와 강박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이서하'라는 차가운 페르소나를 빌려온 것처럼, 안성재 역시 거대한 미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시스템 뒤로 숨겨버린 것은 아닐까.
내 관찰로는, 안성재 셰프가 처음 바이럴이 된 문장,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는 명확한 확언이었다. 시즌 1 초기만 해도 그는 '같습니다'라는 표현을 지금처럼 남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즌 2로 넘어오면서, 그리고 그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같습니다'의 빈도는 체감상 2배 이상 증가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그가 카메라를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건 분명해 보인다.
그는 자신의 완벽주의가 가진 파괴력을 학습했고, 그것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Save/Load'가 없는 현실 세계에서 전략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리플레이다. 자신의 발언이 가져올 파장을 미리 시뮬레이션해보고, '같습니다'라는 안전장치를 통해 리스크를 회피하는 기술.
나는 내 커리어 내내 '같습니다'를 쓰는 사람들을 경계해 왔다. 그들은 대개 책임을 지기 싫어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지 못한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성재는 다르다.
그는 누구보다 명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을 숨기기 위해 '같습니다'를 쓴다. 가장 투명한 진실을 말하기 위해 가장 불투명한 언어를 선택한 역설.
내 형편에 3성 레스토랑인 '모수'에 갈 일은 당분간 없겠지만, 만약 우연히라도 그를 마주한다면 나는 꼭 묻고 싶다. 그의 심사 톤을 흉내 내어, 아주 정중하지만 서늘하게.
"셰프님, 당신의 '같습니다'에 담긴 진짜 의도(Intent)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인을 향한 배려였나, 아니면 당신의 완벽함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요새였나.
말은 마음의 건축물이다. 완벽한 구조를 가진 사람이 왜 부실한 벽돌('같습니다')을 썼는지 파헤치는 과정은 즐거웠다.
우리 역시 삶의 경계에서 수없이 '같습니다'를 내뱉는다.
당신의 '같습니다'는 생존을 위한 위장인가, 아니면 진심을 말할 용기가 없는 회피인가.
Note: 이 글은 '생각의 건축술' 시리즈의 일부로, 언어, 권력, 그리고 의도의 숨겨진 구조를 해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