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는 언제나 생길수 있다.
그렇게 촬영감독과 불편한 이야기들을 끝내고 난 다음날 출근길 아침. 일어나 운전을 하는데 어제의 당당했던것과는 다르게 별의 별 생각이 다들었다. 출근하러 가는 길이 왜이렇게도 싫은지 도무지 잘해낼 자신이 없었다. 최근들어 항상 일하는게 즐거워서 출근길이 설랬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그럼에도 뱉어보는 말 "잘 할수 있어!" "며칠안남았숴!" 하며 나를 다독였다. 나는 멘탈이 세다고 생각해서 이런정도로 그다지 타격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과 일하는게 굉장히 쉽지 않은 일이구나를 느꼈다. 출근하면서 사고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끔 해보긴 했지만 보통은 촬영의 대한 피로도 때문이지 이런 일로 사고날 생각을 해보는건 또 처음이었다. 그날은 정말 누군가 나를 박아주길 원했다.
그럼에도 나는 현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것도 예상보다도 훨씬 일찍.. 아무일 없었던것 처럼 일하려고 엄청나게 애썼는데 왠지모르게 내 걸음걸이도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색한거 같았다. 계속 왔었던 세트장도 어색하고 뭔가 다 이상하게 느껴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하자 라는 마음과는 다르게 일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별로 어렵지 않은 포커스를 하는데도 엄청나게 긴장이 되었다. 진짜 그럴만한게 아닌데도 정신적으로 몰려서 그런지 자꾸 초점이 안맞았다. 이게 뭐지 왜 이러는거지 싶은데도 그런 마음에 내가 나를 다그치고 하다보니깐 그냥 아무생각없이 해도 맞는 초점이 자꾸 나갔다. 현장에서 가장 하지말아야될 것 중 하나가 당황하는건데 아주 당황의 늪에 빠져있었다. 오전 내내 당황의 늪에서 아 그래도 이정도는 아니지하며 잠깐 숨돌리고 또 허우적대고를 반복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었다. 밥이 정말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기분이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촬영감독님이 잠깐 나를 불러냈다. 얼마나 긴장이 되었는지 사람을 구해서 내일부터 안나와도 된다는말인가 싶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어서 내심 바랬나보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촬영감독님은 본인이 오해한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계속 일을 같이 하자고 말씀하셨다. 뭔가 맥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아무렇지 않은척하지 않았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았는데 감독님에게 연거푸 감사합니다.를 외치고는 눈물이 날거같아 붙받치는 감정들을 참아냈다. 억울한 마음은 좀 가셨다. 그럼에도 아직 불편한 상황들은 남아있었다. 내가 들은 소식들에 의하면 정작 나를 내심 내치고 싶었던 사람은 B카메라 기사였다. 원체 낯도 많이 가리시는 성격이고 조용조용하신데다가 대부분 B캠기사 들이 그러하듯 촬영현장에서 A카메라에 방해가 될 만하다 싶은일이 있으면 꺼려하셨다. 보통 B캠은 더 조용하고 은밀하게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랑 일을 하는 경우는 처음이다 보니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은밀히 움직이는걸 바랬겠으나 쉽지 않았을거고 그러다보니 맞는 사람을 찾고 싶은 것이 당연할터였다. 그와중에 포커스도 살짝씩 늦게 들어오곤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지도.. 무튼 이렇게 나를 불편해한다는 걸 알고나니 내 입장에서 억울함은 풀렸지만 이 긴장감이 풀리진 않았다. 그래서 거의 한달내내 포커스를 절었다. 포커스 뿐만 아니라 다른 것에서도 절었는데 항상 써오던 색온도계를 못찍어서 절었고 아마도 B캠기사님은 아직도 나를 색온도계도 못찍는 바보로 알고 계실게 분명하다. 아직도 생생한데 갑자기 오전 야외에서 색온도를 찍어달라고 하셔서 인물 위치에서 들어오는 빛들을 받아서 색온도를 찍어봤는데 조명만 받아서 찍으라고 하셔서 일단 당황했고 조명은 다 5600K 데이라이트들이었는데 왜찍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늘을 찍을거면 하늘을 찍지 오전인데 왜 조명을 찍으라고 하실까..? 일단은 뭘 찍으라는건지 모르고 있다가 원하는대로 찍었는데 문제는 그마저도 제대로 못했다. 색온도계를 쓰는데 무슨 값이 켈빈으로 안나오고 마이너스 플러스로 나오길래 뭐지 싶어서 가져가서 값을 보여주는데 ..
B캠기사님이 냉소하시며 하시는말 "너 색온도계 쓸줄모르는구나?"
색온도계 설정을 안하고 찍어서 켈빈값이 안나오는 거였다. 애초에 한번만 물어보고 했으면 됬는데 절다가 절다가 이제 이런것도 다 저는구나 싶었다. 너무 부끄러워서 변명도 못하고 결국 B캠기사님이 색온도를 측정하셨고 너무 억울하고 부끄럽고 하다못해 웃음이 났다.
아 진짜 사람 하나 바보되는게 순식간이구나를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정말 바보가 되었었으니깐 말이다. 이전 작품에서만 해도 팀을 잘 이끌어가던 팀장이었는데 한순간에 이렇게 바보가 되다니.. 사람이 확실히 상극이 있는건가 싶었다. 정말 이런게 미움받을용기인가 하며 멘탈이 와장창 박살이 난 한달이었다.
한 달간의 촬영후 다음 작품 때문에 나는 중간에 나오게 되었는데 나올때 뭔가 좋은 모습이 되어 나올줄알았지만 더 바보같은 모습만 보여준것 같아서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미안하고 후련했다. 끝나고 전에 같이한 촬영팀 친구들을 모아서 하소연하며 다음 작품에는 진짜 잘해야지 다짐하며 우리 친구들에게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새겼다. 몇달후 이 마음들은 다 박살이 나버렸지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