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 다시 가슴을 뛰게 한 그녀와의 첫만남

by 안느의 일기


차였다. 사실 차였다라고 쉽게 쓰기엔 적절치 않은 게, 그렇게 가볍게 다루어질 정도의 감정은 아니었어서. 이별한 느낌 쪽에 훨씬 가까운 것 같다.


먹먹한 심정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사는 중,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일기를 시작한다. 내가 누군지 아무도 모를테니 나는 완벽히 자유롭다. 100% 솔직하게 말할 생각이다.


총 세번을 만났다. 겨우 세번이고 기간도 이주일 정도 밖에 안되지만 이 아려오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어 나는 이 만남을 오래 기억할 것을 확신한다.


누군가 새로운 이성을 소개받고 인사하고 처음으로 알아가는 기회가 생긴 건 7년 만이었다. 직전에 만나던 사람과 6년을 꽉채워 만났었기 때문이다.


별 생각없이 일단 나섰는데 막상 처음 보는 이성을 앞에 두고 대화를 하고 눈을 맞추려니 진땀이 났다. 머리가 새하얘진 것까진 아니었지만 적어도 마스크를 벗고 차를 마시며 계속 웃느라 얼굴 근육은 쥐가 날 것 같았다.


그렇게 만난 대여섯의 사람들 중에서 그녀는 특별했다. 사실 첫인상 자체가 엄청났던 건 아니었다. 그녀는 우리가 처음 만나기로 했던 올림픽공원의 지하철 출입구에서 곧게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을 한참이나 앞서 미리부터 준비하는 그녀의 배려가 엿보이는 시작이었다.


마스크를 벗으며 인사하는 그녀에겐 내게 없던 밝은 에너지가 느껴졌고 함께 공원을 향해 걸으며 나눈 대화 몇마디에서도 그녀의 세심함과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공원 산책을 먼저하고 그 다음에 커피를 마시기로 한 건 놀랍도록 탁월한 선택이었다. 10월 중순의 올림픽공원은 본격적으로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단풍들로 곳곳이 물들어 있었다. 일요일 이른 오후의 하늘은 채도 높은 파랑으로 반짝였고 선선한 가을 공기가 마음 구석구석을 청량하게 했다.


그 전경을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보며 우리는 꽤 걸었다. 직업 얘기, 취미 얘기, 신앙 얘기, 가족 얘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키가 170이라는 그녀의 시선이 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아 나는 자꾸 조금씩 놀랐다. 보통 나와 20센치 정도 차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등을 펴고 곧게 서야만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 생경함이 신기하고 또 즐거웠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몰려든 행사장을 지나 우뚝 솟은 오래된 나무가 서있는 언덕을 보며 걸었다. 브라운 계열로 가득한 산책로를 걸으며 마주오는 사람들이 전부 한번씩 우리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절대 그럴리가 없는데 왠지 나는 그런 느낌이었다. 뮤직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공간을 지나며 우리는 목소리를 높였고,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려가는 사람이 있을 땐 그녀가 나의 옷깃을 잡아 당겨 지켜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았는데 신기하게 우리는 처음 왔던 곳으로 돌아와있었다. 그길로 카페를 찾아들어가 비로소 서로를 마주해 앉았다. 이제야 파란 청치마에 하얀 니트 가디건을 곁들인 그녀 모습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쭈뼛대는 행동을 최대한 들키지 않고 싶었는데 아마 다 보였을거다.


바보같이 다음 약속을 잡고 여기에 왔음을 처음부터 말해놓은 탓에 약속 시간이 되자 우리는 일어서야 했다. 조금 아쉽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역 입구까지 짧은 길을 함께 걷다가 계단참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멀지 않은 저 치에서 그녀가 계단을 걷기 위해 한걸음을 내올릴 때 그 옆모습에 나는 반했다.


왜 그 가는 모습을 그렇게 보고 있었을까. 그 전에 만난 사람, 그 전전에 만난 사람에게도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눈을 부릅뜨고, 자연스러운 척 하면서 왜 그 모습을 그렇게 뚫어져라 바라봤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그녀가 정말 내 짝인지, 내가 그녀에게서 매력을 정말 찾을 수 있는 인연인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간절하게. 후회없이.


그렇게 헤어져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사이 계속 생각을 했다. 나는 애프터를 청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다음 장소에 도착해 핸드폰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메시지를 보냈다.


ㅇㄱ님께 매력을 느꼈다고. 만약 나와 비슷하다면 다시 한번 만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오래지 않아 답장이 왔다. 본인도 같은 마음이라고. 그렇게 하자고. 왠지 예감이 꽤 좋았다.


(1편 다시 가슴을 뛰게 한 그녀와의 첫만남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