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 만국박람회: 산업혁명 이후 세계를 잇는 교류와 협력의 기념비
박람회의 역사는 세계 근대사를 바꾼 문명의 역사다. 특히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 (The Great Exhibition of the Works of Industry of All Nations)는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다. 이 박람회는 세계 최초의 국제적 박람회로서 전 세계의 문화와 산업 발전을 한눈에 보여주는 중요한 장이었다.
영국은 19세기 초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서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증기기관, 직조기계, 철도를 필두로 한 다양한 제품의 발명과 기술적 발견은 영국을 수공업 중심 경제에서 기계를 사용하는 대규모 산업 경제로 탈바꿈하게 하였고, 농업사회에서 산업화와 도시화로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사회계층과 이익 집단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영국은 자국의 산업적 성취를 전 세계에 과시하고, 다른 나라들과의 기술 및 문화 교류를 촉진하고 싶은 열망이 있었다. 즉 산업, 과학, 예술,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국제적 협력과 이해 증진에 그 목적이 있었다.
어떤 사건을 바라보는 데에는 다양한 프레임이 존재하듯이, 박람회의 특징을 살펴보는 데에도 한 가지 관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영국 런던 만국박람회는 근대화의 장을 열었던 시대적 배경만큼이나 여러 관점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볼 수 있다.
⓵ 건축적 관점
런던 만국박람회가 열린 곳은 하이드파크 내에 지어진 크리스털 팰리스, 즉 수정궁이었다. 이 건축물은 영국 최초의 실내쇼핑공간으로 건축가‘조지프 팩스턴’ 경이 철골과 유리로 길이 563미터, 폭 124미터 축구장 18개 크기의 거대한 온실 같은 건축물을 1년 만에 완성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런 빠른 건축이 가능했던 것도 산업혁명 결과 공장에서 부재를 모듈러로 대량 생산하고 현장에서 조립했기 때문이다. 즉 건축적 측면에서 런던 만국박람회는 기존에는 없었던 규모의 건축물을 신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의 혁신을 보여준 최초의 장이었다.
⓶ 사회적 관점
앞서 수정궁이라는 새로운 건축적 시도가 런던 만국박람회를 통해 제시되었다고 했으나, 수정궁은 단지 건축적으로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하나의 중요한 관점은 수정궁이라는 실내쇼핑공간을 통해 ‘소비자’라는 새로운 사회적 계층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런던 만국박람회는 입장료를 등급제로 받아 가난한 사람들은 1실링만 내고 입장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화로 계층 간 갈등이 심각하여 만국박람회에서도 계층 간 충돌이 날 것을 우려했다. 그러나 박람회에 온 사람들은 1만 3천 개 이상 전시된 제품들에 압도되어 충돌은커녕 모두 새로운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열망으로 가득했다. 설혜심의 『소비의 역사』에서는 이것을 “계급을 뛰어넘어 하나로 통합된 ‘소비자’라는 새로운 계층이 탄생한 사건”이라고 하였다. 런던 만국박람회는 이처럼 사회적, 자본적으로도 소비자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켰다.
⓷ 여행 산업의 등장
런던 만국박람회는 19세기 여행 산업의 본격적인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박람회가 열린 1851년은 철도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박람회 개최 10년 전인 1840년대부터 영국은 철도 네트워크를 빠르게 확장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쉽고 빠르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는 대규모 이벤트인 만국박람회로의 여행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박람회 기간 동안 영국 전역과 심지어 유럽 대륙에서도 수많은 방문객들이 철도를 이용해 런던으로 몰려들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규모의 인파를 수송하는 데 철도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단체 여행의 개념을 널리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여행 산업의 성장에 크게 기여했다.
런던 만국박람회는 무엇보다 국제 교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다양한 산업과 기계, 기술의 발전하는 모습,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교통, 통신, 사회를 목격한 전 세계의 방문객들은 각자의 고국으로 돌아가 산업 혁명을 부르짖었다. 즉‘자본주의의 글로벌화’를 알리는 서막이었던 것이다. 일본은 박람회를 둘러본 이후 1860년대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구의 기술과 산업 방식을 채택하였고, 프랑스와 미국은 박람회 모델을 도입하여 파리 만국박람회, 시카고 만국박람회를 통해 영국처럼 국제적 지위를 강화하고 산업 및 기술, 경제 발전을 도모하였다.
위에서 본 것처럼 만국박람회는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각 국가의 발전을 도모했던 아날로그적 수단이었다. 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전 세계 도시들이 만국박람회를 개최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만국박람회의 영향력이 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만국박람회는 각 나라의 최첨단 기술과 제품을 선보이는 장으로서 혁신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이는 온라인이 줄 수 없는 체험과 경험을 통해 기업과 국가들에게 최신 기술 동향을 파악하고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문화예술 교류의 장으로서도 그 중요성이 여전하다. 박람회장 자체가 전 세계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소개하는 공간으로 작용하며 이는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 간의 이해와 존중을 증진시키는데 기여한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전쟁과 지역 간 분쟁이 극심한 시기에 박람회는 국제 협력의 상징적 공간으로서도 작용한다. AI, 전쟁, 기후변화 등 글로벌 이슈에 대한 공동의 대응을 가능케 하며 이는 박람회를 방문하는 전 세계 시민들에게 교육과 영감의 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개최 도시는 이러한 기회를 활용하여 도시 인프라 개선과 관광 활성화에 활용할 수 있다. 부산이 비록 엑스포 유치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한번 재도전의 꿈을 꾸는 것도 모두 이러한 박람회의 파급력 때문이다.
이처럼 최초의 런던 만국박람회 이후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연결되는 이 시대에도 박람회는 세계를 잇는 글로벌 교류와 협력의 기념비적 수단으로써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이 글은 한국전시산업진흥회가 발간하는 '전시저널' 1+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akeijournal.or.kr/post/january-old-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