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아침이 밝으면 얼굴을 조각하듯 표정을 다듬고, 저녁이 되면 마치 연극을 끝낸 배우처럼 지친 얼굴을 지웁니다. 직장에서의 냉철한 눈빛, 친구들 앞에서의 유쾌한 미소, 가족 앞에서의 익숙한 온기까지 그 모든 것이 진짜 나인 듯하지만 실은 하나의 페르소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가면도 벗어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문이 닫히고 세상의 소음이 차단된 작은 공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자신과 마주하게 됩니다. 바로, 화장실에 앉아 있는 그 순간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전두광(황정민)은 마침내 승리를 거머쥡니다. 군을 장악했고 정권을 움켜쥐었습니다. 이제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정점에 선 그는 가장 먼저 화장실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홀로 앉아 있습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쥔 자가 가장 사소한 공간에서 가장 인간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수많은 군인들이 충성을 맹세하고, 권력의 향기가 온 방을 가득 채웠지만, 이 작은 공간 속에서 그는 오직 혼자였습니다. 화장실이라는 공간은 이상하리만큼 정직합니다. 그곳에서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누구든 이곳에서는 허울을 벗고 단 하나의 인간으로 남게 됩니다. 아무리 권력을 손에 쥐었다 하더라도 그곳에서는 위대한 지도자도, 두려운 군인도 아닌 한낱 인간의 본능을 지닌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오래도록 가면을 쓰고 살아온 사람들은 때때로 가면을 벗었을 때조차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전두광 역시 그랬을 것입니다. 그는 나라를 손에 넣었지만 그 순간조차 온전히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승리란 무엇일까요. 권력을 거머쥐었을 때 느껴야 할 것은 환희여야 할 텐데, 왜 이토록 낯선 공허함이 밀려오는 것일까요
이제 그는 다시 문을 열고 나가야 합니다. 페르소나를 쓰고, 강한 지도자의 얼굴로 세상을 마주해야 합니다. 거칠고 단단한 눈빛을 하고, 흔들림 없이 걸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은 어쩌면 다시 화장실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바라볼 때일지도 모릅니다.
화장실은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가면을 벗고 가장 정직한 얼굴과 마주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우리가 누구보다 강한 척 살아가지만 실은 누구보다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