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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행동 정상 회담(AI Action Summit)

by 최정식

지난 2월 10~11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AI 행동 정상 회담(AI Action Summit)’은 인공지능(AI) 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국제적 협력을 모색하는 중요한 자리였다. 이번 회담에서 각국 정상과 기술 기업, 연구자들은 AI의 윤리적 개발과 공공선을 위한 글로벌 규제를 논의했으며, 그 결과 ‘포용적이고 지속 가능한 AI 개발’을 촉구하는 최종 선언문이 도출되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이 선언문에 서명하지 않았다.


AI의 국제 규범을 수립하는 자리에서 가장 강력한 AI 기술력을 보유한 두 국가가 빠졌다는 것은 기술 패권과 보편적 가치 사이에서 글로벌 AI 거버넌스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한 중요한 신호다. 과연 AI는 혁신과 경제 성장을 최우선하는 자유 시장 논리에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인류 공동의 가치와 공익을 우선으로 하는 규제적 접근이 필요한가? 미국과 영국의 결정은 단순한 국가적 전략이 아니라, 기술의 미래가 가져올 사회적 변화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술 혁신의 자유 vs. AI 규제의 필요성


미국과 영국은 AI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과도한 규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특히, AI가 경제 성장의 새로운 동력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기업의 연구개발(R&D)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는 논리를 강조한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균형을 이루어야만 지속 가능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AI 기술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만큼, 규제 없는 자유는 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사회적 불평등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AI 기반 자동화가 노동시장에서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대체할 경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AI가 차별적 알고리즘을 강화하고, 특정 집단을 배제하거나 감시 사회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우리는 이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기술이 ‘선’이라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AI의 자유로운 발전을 보장하면서도,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AI 기술과 인간 존엄성


AI 기술은 단순한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특히, AI가 노동시장, 의료, 교육, 국가 안보 등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점에서, AI의 개발 방향은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인간 존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연결된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는 AI 기술이 사회적 약자와 소외 계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이는 AI가 특정 계층이나 거대 기업의 이익만을 위해 활용될 경우, 기술이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서명 거부는 이러한 국제적 노력에서 한 발짝 물러서는 결정이었다. 그들의 논리는 AI 혁신을 방해하는 과도한 규제를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과연 기업의 혁신 자유가 인간 존엄성보다 우선시될 수 있는가?


AI의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윤리적 논의가 뒤처지면 기술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통제하고 소외시키는 도구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AI를 개발할 때, 이 기술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먼저 질문해야 한다.


국제 협력의 약화 : AI 규범의 분열이 초래할 미래


미국과 영국의 선언문 서명 거부는 단순히 두 국가만의 선택이 아니라, 향후 AI 거버넌스의 국제적 협력 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현재 AI 거버넌스를 둘러싼 국제적 논의는 두 가지 상반된 접근 방식으로 나뉘고 있다.


하나는 EU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규제 강화 접근이다. 유럽연합(EU)은 AI 기술이 인류 전체의 공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보고, 윤리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AI 규제법(AI Act)이다. 이 법은 AI 시스템이 초래할 수 있는 차별, 개인정보 침해, 자동화된 의사 결정의 불투명성 등을 막기 위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이 책임을 다하도록 규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미국과 영국은 자유 시장 중심의 접근을 택하고 있다. 이들은 AI를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며, 기업이 주도하는 혁신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이에 따라, 강력한 규제보다는 자율적 혁신(Self-Regulation)을 강조하며, 기업들이 보다 유연한 환경에서 AI를 개발하고 적용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이처럼 상반된 접근 방식이 충돌하면서 AI 규범이 국제적으로 단일화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AI는 국경을 초월한 기술이지만, 각국의 규제가 서로 다르면 글로벌 기업과 연구자들은 어느 기준을 따라야 할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합의 없이 각국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AI 거버넌스의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두 가지 접근 방식이 충돌하면서, 국제적인 AI 규범이 단일한 방향으로 정립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AI는 국경을 초월한 기술이지만, AI에 대한 규제가 국가별로 다를 경우, 글로벌 기업과 연구자들은 어느 규범을 따라야 할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또한, 규제가 없는 국가에서 AI가 무분별하게 개발될 경우, 그 파장은 전 세계적으로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거나, 사회를 조작하는 도구로 악용될 위험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기술이 특정 국가에서 자유롭게 개발된다면 글로벌 사회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AI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가치다


미국과 영국의 AI 규제 회피는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AI 기술이 단순한 경제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요소라는 점에서, 글로벌 차원의 윤리적 고민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술의 미래는 단순한 혁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AI를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인간의 가치를 지키고 싶은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AI가 특정 기업과 국가의 이익만을 위한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인류 전체를 위한 공공선(Common Good)을 실현하는 기술이 될 것인가?


우리는 지금, AI 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가치를 선택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금, 우리는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제는 국가와 기업이 아닌, 인류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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