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의 독
첫 부사수와 일한 지 한 달 반. PD 경력 5개월 정도인 내 부사수는 전 직장에서의 기억이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다.
용기 내서 의견을 내면 그런 건 안 해도 된다, 필요 없다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직업이 자신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내게 덤덤히 말했다.
마음이 쓰였다. 같이 일하게 됐으니 기왕이면 좋은 기억만 남도록 해주고 싶었다. 나는 한 달 남짓 보낸 기간 동안 그에게 정해진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일만 줬다. 야근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퀀텀 점프를 목표로 하면 일에 질려버릴지도 몰랐다. 그게 걱정돼 아주 조금씩 업무를 늘려 나갔다.
오늘 대표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달째 야근이 일상이 된 나에게 대표님은 물었다. 부사수는 칼퇴하고 혼자 남아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솔직히 말하면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이유로 야근이 이렇게 잦은 건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대답은 이미 마음속으로 정했는데, 입밖에 내기가 망설여졌다. 갑자기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답은 이랬다.
’부사수가 천천히 적응할 수 있게, 제가 일부러 일을 많이 안 줬어요.‘
속으로 대답한 나에게 나는 말했다. ’되게 시건방지네. 결국 부사수가 일을 소화 못할 것 같아서 내가 일을 도맡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부사수의 적응 같은 건 사실 큰 관심이 없었고, 나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었다. 그리고 계속 모든 업무를 내 스타일대로 쥐락펴락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난 뭘 했나. 부사수의 잠재된 역량을 무시했던 걸까? 한참 필드에서 발 빠르게 뛰어야 할 사람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편히 쉬게 해 준 건 아닐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에 부사수를 이용한 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지나친 배려는 오히려 독이 되는 걸까? 아직 잘 모르겠다. 서로가 매일 더 발전하는 방법을 찾으려면 이런 과정을 겪는 게 당연한 걸 텐데, 참 어렵다. 사수는 처음이라...
24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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