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열전]희수무레하고 슴슴한 맛을 찾아서
야외 온도가 섭씨 36도를 넘나든다. 하늘이 이글이글 타는 염천(炎天)의 계절이다. 폭염주의보(33도 이상)를 넘어 폭염경보(35도)가 다반사로 발효되는 요즘이다. 이럴 때면 한 겨울 살얼음 서걱거리는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메밀국수가 간절해진다. 시 한 구절 읽어보자.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녚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토속적인 우리말과 투박한 평안도 사투리로 지어진 시인 백석의 <국수>라는 시다. 무슨 말인지 해독불가 수준의 원시적(?) 언어지만 몇 번 곱씹으면 얼추 이해가 되는 결국은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가장 극적인 묘사는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이것이다. 예서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수다.
산멍에는 이무기의 평안도 사투리고 분틀은 면을 압착해 뽑는 목재 틀이다. 남정네 허벅지보다 굵은 통나무로 만든 이무기처럼 생긴 분틀에 메밀반죽을 넣고 누르고 밟고 올라타는 등 기를 써야 간신히 ‘이것’을 뽑아낼 수 있다. 힘들게 뽑은 면을 삶은 다음 타래를 만들어 육수 한가운데 앉히고 고명을 얹어 내오면 백석은 다시 노래한다.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 이 희수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 겨울밤 쩡하니 닉은 동티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댕추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르궅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참 맛있는 묘사다. 백석의 국수는 밀가루로 만든 것이 아니라 메밀로 만든 메밀국수다. 이것이 평양이란 지명과 결합한 것이 평양냉면이다. 농마국수가 함흥냉면이 되고 밀면이 진주냉면이 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백석의 또 다른 시 <북신>에는 ‘국수집에서는 농짝가픈 도야지를 잡어걸고 / 국수에 치는 도야지고기는 돗바늘 가튼 털이 드문드문 백엿다/ 나는 이 털도 안뽑은 도야지 고기를 물구럼이 바라보며 / 또 털도 안뽑는 고기를 시껌언 맨모밀국수에 언저서 한입에 끌꺽 삼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라는 구절이 있다. 거칠게 잡은 돼지와 수육 한 점을, 꺼칠하게 거피해 면색이 시커먼 면 위에 얹어 먹는 모습은 영락없이 요즘 평양냉면 집 풍경이다.
백석의 시에는 유독 국수가 많이 나온다. 지금으로 치면 평냉 마니아다. 일본에 있던 그는 1934년 귀국해 조선일보 계열잡지 <여성>에 입사했다. 1930년대라면 서울은 평양냉면 천국이던 시절이다. 그는 얼마나 많은 날을 평양냉면을 섭렵하기 위해 다녔을까. 퇴근길 냉면집으로 향하는 그의 잰걸음이 상상된다.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경성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입 까다로운 서울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해보려고 평양냉면 장사들이 일류 기술자-냉면의 맛은 그 기술 여하에 달렸습니다-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철 더군다나 각 관청 회사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36년 7월23일자 <매일신보>에 실린 냉면 관련 기사다. 당시 서울의 냉면집 상황을 잘 보여준다. 1920년대부터 서울 청계천 변에는 부벽루, 백양루, 동양루 등 평양냉면 집이 빠르게 늘어났다. 이들은 영업을 위해 평양의 냉면 기술자(면장)들을 적극적으로 스카우트해 왔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청계천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에 약 40곳의 냉면집이 성업했다.
도토리 키 재기하듯 여러 면옥이 아옹다옹하던 서울의 평양냉면 시장에 절대 강자가 나타난 것은 1940년대다. 해방과 함께 일제가 놓고 간 시내 적산가옥을 사들여 문을 연 종로구 주교동의 우래옥이 주인공이다. 우래옥 이후 지금의 평양냉면 강자들은 7․80년대 생겨났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실향민 증가와 그들이 생계를 위한 창업, 특히 1970년대 혼분식장려운동 등이 겹치면서 냉면이 호황을 맞았고 지금까지 여세를 이어가고 있다.
평양냉면이 굳건한 마니아층을 형성하면서 현대인들의 기호식품으로 떠오른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상차림과 선주후면(先酒後麵) 할 수 있는 수육과 만두 등 메뉴가 많다는 점, 그리고 연식이 오래된 점포에 담긴 수많은 스토리 등이 젊은 층까지 흡수해 단단한 소비층을 형성하고 있다.
메밀의 루틴 성분과 불포화지방산 등 영양학적으로 우수한 점도 웰빙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의 기호에 딱 맞아떨어졌다. 평양냉면의 대략적인 역사는 이렇다. 평양냉면은 역시 전통적인 노포가 맛도 저력 있다. 시내 몇 곳의 노포와 지방서 서울로 올라온 강자를 소개해 본다.
<유진식당>은 가성비 좋은 냉면 노포로 이름 나 있다. 원래는 국밥전문점으로 문을 열어 2대째 영업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평양냉면이 싸서 젊은 층 사이에서 유명세를 탔다. 돼지기름으로 고소하게 부쳐낸 녹두지짐과 냉면 육수를 위해 헌신하고 두 번째 사명을 부여받은 소 수육, 돼지수육 그리고 홍어찜 등 먹거리가 풍성하다. 점포가 좁아 대기 손님이 있기 때문에 안주를 계속 시켜야 눈치를 안 볼 수 있다.
1968년 지금 대표의 선친인 창업주 문용춘 옹이 낙원상가 골목에서 북한식 순대와 국밥전문점을 열었다. 문 옹은 실향민으로 낙원상가 인근에서 국밥전문점과 한식당 ‘대동강’을 운영하다가 1985년 폐업한 뒤 1988년 현 위치에 유진식당을 다시 열었다. 초기에는 실향민들 노년층이 많이 찾았고 지금은 젊은 층도 많다. 요즘은 점심 장사를 안 하고 오후 3시부터 문을 연다. 평양냉면(물 기준) 9,000원.
'유진식당'의 좁디좁은 매장이 싫다면 발품을 조금 더 팔아서 을지로3가 '을지면옥'으로 가보자. '을지면옥'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소위 평양냉면 양대 계열이라는 <의정부평양면옥>의 서울 진출 교두보다.
1.4 후퇴 때 월남한 평양 출신 김경필 할머니가 1969년 경기도 전곡에 문을 열었다. 의정부에 자리 잡은 것은 1987년부터로 이때부터 장충동파와 다른 계열인 의정부파 명성을 듣는다. 첫째 딸에게는 '필동면옥'을 열어줬고 '을지면옥'은 둘째 딸이 맡았다. 셋째 딸은 강남구 잠원동에 '의정부 평양면옥 강남점'을 열어 세 딸이 열심히 가업을 잇고 있다.
'을지면옥' 평양냉면의 특징은 소와 돼지고기 등을 적절하게 섞어 뺀 육수와 고명으로 대파를 송송 얹고 고춧가루를 뿌린 것이다.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고명 올라간 모양만 봐도 어느 면옥 냉면인지 단박에 알아맞히는데, 그런 측면에선 의정부 계열은 고춧가루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평양냉면 입문자들에게 선호되는 브랜드다.
한편 세운재정비촉진사업에 따라 얼마지 않아 <을지면옥>도 철거된다. 점포 바로 옆 블록인 3-1구역은 이미 재건축이 한창이다. 올 연말이면 함석판에 페인트로 쓰윽 쓴 ‘을지면옥’ 간판도 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그래서 꼭 한번 가보길 권하는 면옥이다. 평양냉면 1만2000원.
이 두 곳을 빼놓고 우리나라 평양냉면을 이야기할 수 없다. '우래옥'은 맛도 맛이지만 평양냉면 역사의 서사를 담고 있는 곳이다. '봉피양'은 서사는 떨어지지만 냉면을 향한 ‘의지’만큼은 대한민국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봉피양'은 송파구 방이동에 본점을 두고 있는 벽제갈비의 평양냉면 브랜드다. 일반인들에게는 벽제갈비보다 더 많이 알려진 효자 브랜드다. 광화문에 분점이 나와 있다. '우래옥'과 '봉피양'은 모두 진한 육향의 육수가 특징이다. 면식을 좀 한다는 이들은 보편적으로 ‘농후한 육향’을 선호한다.
특히 '우래옥'은 동치미 국물을 섞지 않고 고기 육수로만 맛을 내기 때문에 육향이 감미롭다. 매끈한 면 식감까지 결합되면서 가성비를 따지지 않을 땐 평판이 가장 좋았다. 우래옥은 자기그릇, 봉피양은 두툼한 방짜유기를 써서 냉면의 시원한 맛을 한층 더하고 있다. 두 면옥집 평양냉면 가격은 공히 1만4000원.
유서 깊은 평양냉면 집 대부분이 그렇듯이 남포면옥 역시 월남한 실향민이 창업한 곳이다. 진남포서 내려온 곽봉순 할머니가 1960년 대 무교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중구 다동 점포도 약 오십 년쯤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옥 두 채를 이은 곳이라 안으로 들어가면 무척 넓다. 2017년 내부 수리를 산뜻하게 했다.
입구에 들어서면 날짜별로 담근 동치미 독이 인상적이다. 이 동치미와 양지 육수를 섞어서 냉면육수로 사용한다. 육수가 일반적인 평냉 집과는 사뭇 다르다. 향신료로 쓰이는 채소 한 가지 맛이 도드라진다. 이는 직접 경험해 봐야 한다. 그래서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집이다. 과거엔 놋그릇을 썼는데 요즘은 우래옥과 같이 하얀 백자그릇에 담아낸다. 평양냉면 1만3000원.
경기도 판교에서 시작해 서울로 북진에 성공한 브랜드라서 소개한다. '능라도'는 평양냉면 신흥강자로 분류된다. 광화문점은 2019년 3월에 생겼다. 2015년 서울 입성 후 서서히 입지를 넓히고 있다. 서울에 매장을 여럿 가지고 있는 '봉피양' 입장에 '능라도'의 서울 확장은 꽤나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능라도'는 '남포면옥'과 함께 한때 미쉐린가이드 빕그루망에 뽑혔다. 미쉐린은 “최상급 한우, 몽골산 메밀만을 고집할 정도로 재료와 음식 품질에 대한 고집을 요리 맛 반영하고 있다”며 “고객들이 능라도의 다양한 음식을 접할 수 있도록 몇몇 요리는 작은 사이즈로 판매한다”고 평가했다. 평양냉면 1만3000원.
*본고(本稿)는 헌법재판소 사내보 용 칼럼이다. 헌재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을 다뤘기 때문에 등장하는 면옥이 제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