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지역 후쿠오카 인문미식여행 2탄
타케오서 만난 패밀리레스토랑 ‘졸리모스트’
60년을 바라보는 노포 킷사텐 ‘코히샤노다’
길 가다 우연히 만난 밥이 맛있는 ‘누쿠이’
지난달 16일부터 1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다녀온 일본 규슈지방 인문미식탐방기 2탄이다. 이번 여행은 후쿠오카 텐진에 베이스캠프를 두고 가라쓰(唐津), 다케오(武雄) 등지를 오가며 일본 소도시 문화를 만끽했다. 숙소 텐진 마이스테이시호텔은 지하철역과 공항이 가까워 교통이 편리했다. 또 백화점과 각종 쇼핑센터, 음식점, 미술관 등 편의시설도 가까운 장점이 있다. 침실은 좁았지만 편안한 침대와 직원들의 친절로 불편함이 없었다.
정성 어린 호텔 조식 ‘긴노츠키’
무엇보다 호텔 1층 레스토랑 ‘긴노츠키’(銀ノ月) 조식이 매우 훌륭했다. 3일간 머물면서 첫날은 일식, 둘째, 셋째 날은 먹기 편하고 입맛에도 맞는 양식이 좋았다. 일식은 청어 구이 때문에 입안에서 비린내가 맴돌아 둘째 날부터 메뉴를 바꾼 것이다. 조식은 1만5000원 가량 되는데 구성이 알차고 네 종류가 준비돼 있어 선택의 폭이 다양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다음에도 후쿠오카를 간다면 이 호텔에서 머물지 않을까 싶다.
여행 3일차 긴노츠키에서 아침을 맛있게 먹고 규슈 소도시 타케오를 가기 위해 지하철로 하카타역으로 이동했다. 하카타역에서 JR 미도리 사세보선을 타고 타케오온센역(武雄溫泉驛)으로 향했다. 시간은 1시간 남짓 걸린다. 역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온천이 유명한 곳이다. 역 앞 바닥분수에서는 때때로 드라이아이스 냉각 기체가 뽀얗게 피어오르면서 온천 분위기를 낸다.
연간 100만명 찾는 타케오시도서관
이곳에 온 이유는 타케오시도서관과 수령이 꽤나 오래됐다는 녹나무를 보기 위해서다. 역에서 마을 구경을 하며 걸어서 도착한 타케오시도서관은 조형미 있는 외관을 가졌다. 2000년 준공한 것을 2013년 대대적으로 리뉴얼해 현재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독특한 외관과 마찬가지로 내부도 개방감이 좋은 2층으로 설계됐다.
시립도서관이지만 일본 대형 서점 체인인 츠타야를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에 전체적인 관리를 맡겼다. 도서관에는 책과 각종 굿즈를 파는 츠타야서점과 스타벅스가 입점해 있다. 그래서 도서관의 정숙함이 아닌 백색소음이 어느 정도 허용돼 편하게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이들과 복합공간을 이루면서 이용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었다. 개관 25주년인 지금 한 해 약 100만 명 이상이 이용하는 지역 명소가 됐다. 우리에게는 별마당도서관의 모티브가 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령 3000년의 신목 타케오 오쿠스
인근에는 타케오신사가 있다. 이곳에는 수령이 3000년으로 추정되는 거대 녹나무 타케오 오쿠스(大楠, 녹나무)가 유명하다. 신사를 지나 무성한 대나무 숲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길 끝에 압도적 크기로 버티고 서 있다.
높이 27m, 뿌리 둘레 26m, 나무 밑동 심재 빈 공간은 다다미 크기로 따지는 일본식 방 넓이 계산법으로 12畳敷(첩부)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다다미 한 장이 1.62㎡ 정도 된다고 하니 12첩부는 19.68㎡(6평)에 이른다.
1989년의 환경청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6번째 큰 나무로 인정됐다. 녹나무는 일본과 중국, 베트남, 대만 등지에서 자라며 우리나라에도 제주 등 남쪽 지방에서 발견된다. 제주도 서귀포시 도순리에 있는 녹나무 자생지가 천연기념물로 유명하다.
도서관 근처 쇼핑몰에 있는 레스토랑
도서관과 신사, 녹나무 등을 돌아보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됐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라이큐우켄(来久軒) 라멘이었지만 더운 날씨에 도보 이동이 부담이 됐다. 그래서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타케오도서관 길 건너편 복합쇼핑몰 유메타운타케오점 안에 있는 패밀리레스토랑 ‘졸리모스트’로 향했다.
물론 사전에 정해 놓은 B플랜이 아닌 현장에서 찾은 맛집이다. 소바, 함박스테이크, 그라탱, 돈가스, 카레, 오늘의 정식, 차와 디저트까지 없는 게 없을 정도로 다양한 메뉴를 자랑하는 곳이다. 마치 고급 김밥천국 같은 느낌이다. 더운 날씨 탓에 메마른 목젖을 생맥주 한잔으로 적시면서 기다리니 12명의 식사가 차례대로 제공됐다. 다양한 종류를 주문하다 보니 주방이 꽤나 바빴음 직도 한데 그런대로 대응이 좋았다.
음식 양은 대체로 풍성했고 맛은 준수했다. 특출한 맛집은 아니지만 타케오도서관을 찾는 이들에겐 제법 소중한 공간이 되겠다 싶었다. 복합쇼핑몰을 둘러보고 필요한 물품도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일행 모두 식사에 만족했고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자연과 어우러진 미후네야마라쿠엔
다음 행선지는 녹나무가 등지고 서 있던 미후네산(御船山)에 있는 인공정원 미후네야마라쿠엔(御船山楽園)이다. 산을 끼고 반대편까지 한참을 걸어야 했는데 근처에 경륜장이 나타나 놀랐다. 이런 소도시 골짜기에 경륜장이라니!
미후네야마라쿠엔은 제28대 다케오 영주 나베시마 시게요시(1800~1862)가 에도시대 후기인 1845년 50만㎡에 달하는 넓은 부지에 조성한 정원이다. 정원 곳곳에는 조명시설이 꽤 많이 설치돼 있다. 이는 팀랩(teamLab)의 ‘Digitized Nature’라는 프로젝트다.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사용해 ‘자연이 자연 그대로 예술이 되다’란 테마로 한 미디어 아트 프로젝트로 지금은 ‘A Forest Where Gods Live’란 주제로 야간에 펼쳐진다.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주간에 방문했고 꽃도 한송이 볼 수 없는 한 여름이라 푸른 초목과 기암괴석 정도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행 마지막 만찬은 계획은 요시즈카 우나기야였다. 하지만 지난 칼럼에서도 밝혔지만 전날 ‘부산테이’(釜山亭)을 예약했던 터라 아쉽게도 다음을 기약해야 했다. 요시즈카 우나기야는 메이지 6년(1873년)에 창업한 역사 깊은 장어 전문점이다. 독자적인 구이 기술을 사용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맛을 제공한다. ‘겉바속촉’ 장어로 유명하다.
창업자 도쿠안 신스케를 시작으로 현재는 7대째인 도쿠안 사야카가 가게를 이어받아 150년 이상 하카타의 식문화를 지탱해 왔다. 이런 장어집 역사를 뒤로하고 일행과 부산테이에서 만찬을 즐긴 후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이다. 조식은 호텔 레스토랑에서 양식으로 간소하게(?) 해결하고 하루를 옹골차게 즐기러 밖으로 나섰다. 일단 짐을 몽땅 싸서 호텔 프런트 앞에 맡기고 체크아웃을 했다. 이 호텔을 좋아지는 이유는 이런 작은 서비스가 매우 친절하고 진지하게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흠잡을 게 없었던 3박4일 호텔 일정이다. 호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체감하는 서비스는 컸다고 평가한다. 여행 후 구글맵에 후기를 몇 줄 적었더니 장문의 답장이 달렸다. 그 또한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온다.
레트로 분위기 강배전 하우스 커피 맛집
호텔을 나와 걸어서 첫날 가려다 못 갔던 커피 노포, 일명 킷사텐(喫茶店) ‘코히샤노다’ 다이묘 본점으로 향했다. 호텔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있다. 코히샤노다는 1966년에 오픈한 이후 59년째 이어오고 있는 후쿠오카 유명 킷사텐 중 하나로 사이폰 커피 맛집으로 유명하다.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맛보는 일본식 강배전 커피 맛은 레트로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점포에 들어서면 시그니처인 발굽형 카운터 테이블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바리스타들. 흰 유니폼과 사이폰이 겹치면서 경건함이 느껴진다. 커피와 함께 롤케이크와 구운 과자가 시그니처메뉴다.
백발이 성성한 노년의 손님들이 속속 자리를 채운다. 그들 손에는 신문도 들려 있다. 보기 드문 광경이다. 명성을 듣고 찾아온 우리 같은 여행자들도 많이 찾는다. 나올 때 보니 20대 한국인 여성 한 명도 웨이팅을 하고 있다. 커피가 맛있어 블렌딩 원두를 조금 사들고 왔다. 다음엔 조용히 공간을 즐기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24시간 숙성 정미로 밥맛 좋은 식당
츠타야서점과 오호리공원을 둘러보고 점심을 공원 근처 가오가오 솥밥을 가려했지만 이곳 역시 유명한 곳이라 12명이 들이닥치니 자리가 없다. 그래서 흩어져 자유식을 하기로 하고 구글맵을 검색하던 중 ‘nuku I’(ぬくゐ)란 맛집을 찾았다. 마침 12명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좌석이 준비돼 있었고 주방도 응대 가능하단 소릴 듣고 자리에 앉았다.
발효 요리를 중심으로 한 일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계절별 제철 식재료를 사용해 발효, 숙성, 효소의 작용에 의해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든다는 곳이다. 이곳 사장은 “굳이 산지를 따지지 않고 정말 맛있다고 생각하는 재료를 이용해 각각에 적합한 조리법으로 요리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특히 다양한 일본 술과 페어링이 강점이다.
이 식당은 특히 쌀에 고집을 가지고 있다. ‘24시간 숙성 정미’ 된 쌀을 사용하고 있다. 저온에서 천천히 정미해 쌀눈에 담긴 맛과 영양을 보존한다는 것이다. 낮에는 큰 솥을 이용해 밥을 하지만 밤에는 식당에서 특별 제작한 소형 가마솥에 테이블에서 지어 준다.
생선요리와 된장(미소) 정식은 차림새가 단정하고 맛이 깔끔하다. 마지막 식사는 후쿠오카 공항 내에서 시원한 우동 한 그릇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일식은 전반적으로 기호에 맞다. 그래도 삼겹살과 김치를 구워 먹던 부산테이가 가장 기억이 남는다. 역시 음식엔 스몰토크가 조미료 같은 존재다.